[아마존 뒤집기 손익계산 ①] 삼성의 ‘M&A 시계’를 멈춘 4가지 장벽
글로벌 기업 아마존은 공격적인 투자와 인수합병(M&A)을 통해 공룡기업으로 성장하고 있다. 20년전 인터넷 상거래업체로 출발했지만, 이를 기반으로 클라우드 등 IT산업 전반으로 지배력을 넓혔다. 게다가 미국 최대 유기농 체인인 홀푸드를 인수하고 영화산업 진출까지 넘보고 있다. 애플에 이어 시총 1조달러를 넘보는 다크호스로 떠올랐다.
한국에서라면 ‘문어발식 경영’의 전형으로 비판받고 정부에 의해 온갖 규제를 받았을 기업이다. 실제로 한국 대기업들은 ’아마존 뒤집기‘를 강요받고 있다. 전문화, 타업종 진출 금지 등과 같은 정부의 요구에 의해 발목이 잡혀있다.
하지만 4차산업혁명은 ‘융·복합시대’를 출산하고 있다. 업종을 넘나드는 ‘몸집 불리기’가 융복합 기술의 토양이 돼 국제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반면에 한국의 대표적 대기업들은 ①컨트롤타워 해체 ②경영권 승계 조사 ③일감몰아주기 규제 ④지배구조 개편 압박 등의 4가지 정부 규제에 손 발이 묶여 있다. 그 규제의 방향은 한마디로 ‘몸집 줄이기’이다. 이 같은 ‘아마존 뒤집기’의 손익계산서는 ‘글로벌 경쟁력의 상실’이다. <편집자 주>편집자>
서울대 경제학과 이근 교수,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문어발식 경영’이 생존전략”
삼성의 ‘몸집 줄이기’는 글로벌 경영트렌드의 정반대 지점 위치
[뉴스투데이=권하영 기자] 삼성그룹의 내년 전망 키워드는 ‘위기 대응’이다. 세계적인 저성장 기조와 경영 불확실성이 누적된 탓이다. 내년에도 대규모 투자나 연구개발이 녹록지 않을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중추 계열사인 삼성전자의 경우 올해에도 대형 인수합병(M&A)은 한 건도 진행하지 못했다.
그런데 같은 위기에 직면했을 해외 기업들의 사정은 달라 보인다. 세계 최대 IT 시장인 미국에선 ‘인수합병(M&A) 전쟁’이 벌어지고 있다. 글로벌 1위 전자상거래 기업으로 부상한 아마존이 주도하는 전쟁이다. 여기에 대응하는 알리바바와 월마트 등 경쟁업체들은 물론 구글, MS, IBM 등 이른바 IT 공룡들도 신사업 확장에 적극적이다.
이러한 온도 차이가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이근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는 뉴스투데이와의 전화통화에서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아마존처럼 업종을 넘나드는 적극적인 투자 전략이 트렌드인데, 우리나라에선 대기업의 ‘문어발식 확장’이란 부정적 인식이 여전하다”면서 “최근 우리 정부도 대기업의 각종 벤처 투자를 권장하고 있지만, 글로벌 기준에선 한참 못 미치는 것이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이 교수의 지적대로 기술과 산업 간 융복합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유망산업에 대한 공격적인 M&A 전략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 과거 국내에서 터부시됐던 대기업의 이른바 ‘문어발 경영’도 4차 산업혁명 흐름에선 재정립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삼성의 ‘몸집 줄이기’ 전략은 세계적인 IT기업들의 성장전략과 정반대 지점에 있는 셈이다.
①그룹 컨트롤타워 미전실, 정치적 압력으로 해체=종합전략의 실종
이와 관련해 복수의 재계 관계자는 최근 정부의 기업정책이 삼성을 비롯한 국내 기업의 ‘몸집 줄이기’를 부추기고 있다고 지적했다. 한 재계 관계자는 “현재 우리나라 대기업들은 문재인 정부의 ‘기업축소’ 혹은 ‘기업해체’에 버금가는 최악의 정책적 상황에 놓여 있다”면서 “특히 재계 1위라는 상징성을 가진 삼성의 경우 가장 최전방에서 정부와 정치권의 압박을 받고 있다”고 해석했다.
이와 관련해 첫째, 삼성은 그룹의 종합 전략을 지휘하는 컨트롤타워가 없다. 이 역할을 했던 미래전략실이 지난해 탄핵 정국 속에 해체됐기 때문. 재계 안팎에선 당시 미전실 해체가 사실상 정치적 압력에 의한 것이었다고 본다. 미전실에서 촉발된 부작용을 해소하는 것과 별개로, 기업의 경영전략을 기획하는 부서를 아예 없애버린 것은 과도한 처사였다는 지적이다.
삼성그룹뿐만 아니라 여러 계열사를 두고 있는 대기업이라면, 각 계열사별 의견을 조율하고 종합 정책을 짜는 컨트롤타워가 필수적이다. 하지만 삼성 입장에선 컨트롤타워를 다시 세우는 데 신중할 수밖에 없다. 과거 미전실에 덧붙여진 정치사회적 논란으로 인해 여론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② 이재용 경영 승계 논란의 끊임없는 확대 재생산=글로벌 경쟁의 족쇄
둘째, 이 부회장의 경영 승계 관련 논란이 끊임없이 확대생산되고 있는 점도 문제다. 최근 삼성바이오로직스의 회계부정 의혹을 수사하던 검찰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승계를 정조준하며 삼성물산 압수수색에 들어갔다. 삼성바이오로직스의 분식회계가 이 부회장의 상속을 유리하게 하기 위한 사후정당화였다는 참여연대의 주장을 고스란히 받아든 수사다.
2008년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 논란에서 촉발된 이 부회장의 상속 문제는 당시 특검 수사를 통해 이렇다 할 증거를 찾지 못하고 종결됐지만, 의혹은 여전히 재생산되고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벌들의 불법, 편법 상속을 분명히 처벌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최근 들어서는 시민단체들의 의혹 제기만으로 너무나 쉽게 표적 수사를 강행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고 지적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그룹의 동일인(총수)”이라고 인정했지만, 이 부회장의 위치는 불안정하다. 기업은 ‘이윤’을 추구하고, 시민단체는 ‘정의’를 명분으로 삼는 단체이다. 정의가 이윤을 지나치게 압도하는 한국적 상황은 삼성그룹의 글로벌 경쟁에 족쇄가 되고 있는 실정이다.
③ 무분별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삼성의 ‘무장 해제’ 요구
셋째, 정부 당국의 무분별한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도 삼성그룹엔 치명타다. 최근 정부는 공정거래법 개정을 통해 총수일가의 사익 편취를 막겠다는 명분으로 일감 몰아주기 규제 강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기업과 기업간에 꼭 필요한 비즈니스 관계에서조차 ‘마구잡이’식으로 일감 몰아주기 딱지를 붙이고 있다는 비판도 만만치 않다.
삼성의 경우 최근 김상조 위원장의 관련발언으로 IT서비스 계열사 삼성SDS 주가가 폭락하기도 했다. 김 위원장은 대기업들의 일감 몰아주기 해소를 명분으로 SI(시스템 통합)·물류·부동산관리·광고 등 비주력 계열사 매각을 촉구했고, 그 대상으로 지목된 삼성SDS 매각 논란이 불거진 것이다. 삼성SDS는 삼성전자에 대한 내부거래율이 70%에 달한다.
그러나 삼성그룹의 주력 IT기업인 삼성전자와 IT서비스 계열사인 삼성SDS의 관계를 단순한 ‘일감 몰아주기’로 해석할 수는 없다. 쉽게 말해 기술력이 취약한 계열사나 경쟁사에게 맡길 수는 없는 노릇이다. 특히나 고도의 기술 협력과 정보보안이 중요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엔 내부거래가 필수적인 경우도 다반사다.
이는 아마존처럼 탐욕스럽게 타자의 영역을 침범하는 기업이 승자가 되는 글로벌 시장의 생리에 비춰볼 때, 한국 정부가 사실상 삼성에게 ‘무장해제’를 요구하는 형국이다.
④ 비주력계열사 매각 등 지배구조 개편 압박=미소짓는 글로벌 경쟁기업
넷째, 같은 맥락에서 삼성그룹은 비주력 계열사 매각 및 금산분리 등 대대적인 지배구조 개편을 요구받고 있다. 김상조 위원장은 삼성그룹 지배구조 문제에 관해 “이재용 부회장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연내에 마무리돼야 한다”고 데드라인까지 정한 상태다.
그러나 지배구조 개선 작업은 총수 일가의 경영권 방어와도 직결되어 있어 쉽지 않은 문제다. 재계에 따르면 삼성그룹은 이미 순환출자 해소 및 계열사 재정비를 위한 다양한 시나리오 검토에 착수한 지 오래다. 그 일환으로 삼성생명의 삼성전자 지분 일부와 삼성SDI 보유 삼성물산 지분 등을 매각했지만, 정부가 요구하는 수준에 도달하려면 연내 마무리는 어려워 보인다.
미국와 중국의 기업들이 자유롭게 투자하고 인수합병 하는 동안에 삼성은 있는 계열사도 팔아치워서 몸집을 줄이라는 정치권력의 집요한 요구에 시달리고 있다. 그리고 그 요구는 오히려 아마존과 같은 글로벌 공룡기업의 이익을 대변하는 행위가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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