④ 골목상권 논쟁의 해법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검증
정용진 신세계 그룹 부회장의 ‘초저가 전략’은 일종의 혁신이다. 온라인 쇼핑이 대세로 굳어진 유통업계에서의 생존법이면서 동시에 ‘소비자주의’라는 철학을 담고 있다. 막대한 비용을 들여 스타를 기용한 광고를 제작, 살포해 얻어내는 ‘브랜드’가치를 포기하고 품질과 가격으로 승부하겠다는 실험정신이 뚜렷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골목상권’ 침해논쟁의 새로운 타깃이 되고 있다. 하지만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이라는 공리주의적 관점에서 보면 그의 ‘노브랜드’는 '최대다수의 최대행복'에 해당된다. 양극화시대에 다수의 소비자가 낮은 가격에 고품질의 상품을 구매하는 ‘쾌락’을 얻을 수 있다면, 소수의 동네상인들의 ‘고통’은 감수할만하다. 그 고통은 다른 방법으로 해결돼야 한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의식에서 노브랜드 기획을 착안했다. <편집자 주>편집자>
‘노브랜드 입점=대기업 횡포’는 '왜곡된 프레임'
골목상권은 피해보고 중소기업과 소비자는 혜택보는 '딜레마적 현상'
‘노브랜드 상생 스토어’ 는 딜레마 해결할 대안될까?
[뉴스투데이=강이슬 기자 / 김연주 기자] 브랜드가 아닌 퀄리티로 승부하는 ‘노브랜드’의 탄생으로 다수의 소비자는 제품의 퀄리티와 가격 두 마리 토끼를 잡을 수 있게 됐다.
그러나 골목상권은 위기를 느끼고 있다. 대기업의 유통혁신에 소비자들은 골목상권으로부터 등을 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현상을 두고 '대기업의 횡포' 혹은 '재벌의 탐욕'이라는 비판이 가해지고 있다.
이는 '왜곡된 프레임'이다. 노브랜드의 확장으로 인해 이마트라는 특정 대기업만 이익을 보고 나머지는 손해를 본다는 인식을 강요하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는 싼 값에 물건을 구매하는 소비자와 유명 브랜드가 아니지만 대형 유통 채널에 상품을 공급할 수 있는 중소기업들은 수혜자이다.
반면에 동네상권 상인들은 피해자이다. 매출이 줄어 생계가 어려워질 수 있다. 소비자들이 더 저렴하고, 품질 좋은 제품을 찾아 나서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이다. 골목상권이 살아남을 방법을 찾지 못한다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따라서 노브랜드를 '재벌의 탐욕'이라고 단선적으로 정의할 수 없다. '딜레마적 현상'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이처럼 균형 잡힌 인식을 토대로 노브랜드와 골목상권이 상생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는 게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노브랜드가 운영하는 ‘상생스토어’는 확장 가능한 상생 모델로 평가된다. 전통시장 안에 노브랜드 매장과 카페, 아이들 놀이터를 마련해 전통시장 활성화를 함께 도모한다는 전략이다.
노브랜드 상생 스토어는 전통시장과 논의 후 판매하는 품목이 겹치지 않도록 의논해 판매 상품을 정한다. 보통 공산품, 가공식품 위주다.
그간 시장을 이용하려면 두루마리 휴지, 치약 칫솔 등 각종 생필품을 한꺼번에 살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노브랜드가 입점하면 전통시장에서도 모든 것을 한꺼번에 살 수 있게 된다.
더구나 시장을 돌아다니다가 쉴 수 있는 쉼터, 아이들의 놀이터와 각종 문화 프로그램까지 더해지면서 20~40대의 젊은 층의 전통시장 이용은 늘어날 것으로 보고 있다.
현장 취재해보니, 상생스토어별로 시장상인들 평가 엇갈려
경동시장 상인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생겼지만 젊은층 유입 별로 없어"
구미선산 청년상인대표, "상생 스토어 생기니 젊은 사람뿐만 아니라 노인층도 늘어"
지역상권 활성화 시킨 상생스토어 분석과 확장이 남겨진 과제
그렇다면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입점은 정말 골목상권, 전통시장의 활성화에도 일조하고 있을까. 그렇다면 상생스토어는 노브랜드가 처한 딜레마를 해결할 단초가 될 수 있는 셈이다.
현재 전국에는 8개의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있다. 2016년 8월 당진어시장점을 시작으로 2호 구미선산봉황시장점, 3호 안성맞춤시장점, 4호 여주한글시장점, 5호 서울경동시장점, 6호 대구 월배시장점, 7호 안동구시장점이 문을 열었다. 가장 최근에는 올해 5월 제천중앙시장점이 문을 열었다.
기자는 이 중 서울에 위치한 유일한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인 '서울경동시장점'을 직접 방문했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가장 성공적으로 안착한 지역으로 꼽히는 '구미선산봉황시장점'에 대해서는 청년상인대표와 전화 인터뷰를 실시했다.
지난 17일 일요일 낮 2시 40분경. 기자는 취재를 위해 경동시장에 들렀다. 지하철 1호선 제기동역에서 경동시장 방향으로 쭉 걸어갔다. 걸어가는 동안 20~30대 젊은 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약 100m 구간에서 기자가 본 사람 중 20~30대로 보이는 사람은 단 두 명이었다.
북적거리는 사람들을 비집고 걸어간 끝에 기자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경동시장점에 도착했다. 내부에 들어서자 각종 약제 상가들이 즐비했다. 가게에선 인삼과 꿀, 옷 등을 판매하고 있었다.
이 매장들은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생겨나면서 함께 들어온 상가이다. 상인들에 따르면 이들은 동대문 등 다른 시장에서 장사를 하다 1년 전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생기면서 이곳으로 가게를 옮겨왔다.
옷 장사를 하는 한 상인은 “작년까지만 해도 이곳을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았다”면서도 “홍보가 잘 안 되는지 지금은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와 이곳 상점을 찾는 사람들이 많이 줄었다”고 답했다.
상가들을 지나 건물 안쪽에 있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매장에 들어갔다. 매장에 있는 손님은 10명 내외였다. 가족 단위로 묶으면 6팀 정도였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방문이 전통시장 이용으로 이어지는지 확인하기 위해 매장에서 상품을 구매 중인 한 부부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들은 “이 근처에 살아서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를 종종 방문한다”면서도 “시장에는 한 번도 간 적이 없다. 시장은 복잡하고 덥기 때문”이라고 답했다.
같은 건물에 자리한 키즈카페 쪽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이곳은 아이들이 놀 수 있는 놀이시설과 넓은 카페가 있었다. 카페에는 어린아이를 데리고 온 가족 단위 고객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약 5가족 내외였다.
이곳에서는 매주 아이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진행된다. 아이를 데리고 온 한 주부는 “아이들을 데리고 매주 이곳에 온다”며 “오늘은 국제 장기자랑 프로그램이 있었고, 곧 방패연 만들기가 진행된다”고 답했다.
그는 이어 “매주 아이들을 데리고 이곳에 오다 보니 시장에서 하나씩 사게 된다”며 “예전에는 근처 대형마트만 이용했었는데, 아이들 프로그램 때문에 경동시장을 이용하기 시작했다”고 답했다.
건물에서 나와 다른 상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 맞은편에서 20년 동안 장사를 하는 한 상인은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생겼다고 해서 뭐가 변했는지 잘 모르겠다”며 “젊은 사람들의 방문이 늘었는지도 잘 느끼지 못하겠다”고 답했다. 근처 다른 상인을 인터뷰해봤지만, 대답은 같았다.
서형원 경동시장 주식회사 대표는 “소비자들이 처음에는 노브랜드 상생스토어만 방문했지만, 방문을 거듭할수록 시장 물건들을 하나씩 사기 시작했다”며 “상인들이 아직은 체감하지 못할 수 있지만, 장기적으로 봤을 때는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상인들과는 온도 차이가 나는 입장이다.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의 성공사례로 꼽히는 구미선상봉황시장점은 좀 더 긍정적인 반응이다. 24년 동안 아무도 들어가지 않던 빈 건물을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채우자, 함께 건물에 입점한 다른 상가를 찾는 이들도 많아졌다.
김수연 구미 선산시장 청년상인 대표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생긴 이후 시장 자체가 밝아졌다”며 “시장에 활기가 도니 젊은 사람뿐 아니라 나이가 드신 분들도 더 많아졌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노브랜드 상생스토어의 입점에 따른 효과는 지점마다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확실한 것은 전통시장에 작지만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것은 공통된 현상이다.
어떤 지역의 노브랜드 상생스토어가 지역상권을 다시 활성화시키는 지에 대한 면밀한 연구를 통해 장기적으로 공존의 모델을 구축해나가는 게 남겨진 과제인 셈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