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꾸로 읽는 경제] 기업은행장 인사논란에 강제소환된 독극물 관치론
기업은행장 논란이 소환한 독극물 관치
야당시절 극렬 반대하던 관치에 대한 유혹 되풀이 우려
[뉴스투데이=정승원기자] 26대 IBK기업은행장으로 임명된 윤종원 신임 행장이 ‘낙하산 인사반대’라는 노조의 반발에 막혀 임명 나흘이 지나도록 출근하지 못하고 있다. 기업은행 노조는 본점 1층에 투쟁상황실까지 설치하며 출근반대 투쟁을 벌이고 있고, 윤 행장은 본점 대신 서울 종로구 금융연수원에 임시 사무실을 마련하고 원격 업무를 시작한 것으로 전해졌다.
행시 27기로 기획재정부와 국제통화기금(IMF),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등 국제기구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낙하산’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이유는 바로 직전까지 청와대 대통령비서실 경제수석을 지냈기 때문이다.
더욱이 기업은행은 정부가 지분 53%를 가지고 있음에도 윤 행장 이전까지 조준희, 권선주, 김도진 전 행장 등 3대 연속 내부 출신 행장을 배출한 관행이 자리잡아온 은행이라는 점에서 청와대 경제수석 출신인 윤 행장의 임명은 은행 안팎에서 매우 이례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시절 낙하산 인사나 관치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태도를 보였고 취임 직후에는 여야 4당 대표 오찬에서 이혜훈 당시 바른정당 대표가 “공기업 등 남은 공공기관 인사에 부적격 낙하산 인사, 캠프 보은 인사를 하지 않겠다고 약속해 달라”고 하자 “그런 일(낙하산 인사, 캠프 보은 인사)은 없게 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밝혔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야당시절 “정부는 좋은 관치도 있고 나쁜 관치도 있을 수 있다고 강변하겠지만, 관치는 독극물이고 발암물질과 같은 것”이라며 낙하산 인사에 극렬하게 반대했었다.
청와대는 노조의 반발이 거세지자 “기본적으로 문재인 정부의 국정철학을 잘 이해하고 있는 분”이라며 윤 행장을 옹호했다.
기업은행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을 중시하는 문재인 정부 입장에서는 그 역할이 매우 큰 핵심은행으로 꼽힌다. 국책은행인 까닭에 기업은행 행장은 금융위원장이 제청하고 대통령이 임명한다.
금융위원장의 제청에 따라 대통령이 윤 행장을 기업은행장에 새로 임명한 것에 절차상의 문제는 없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문재인 정부가 수차례 밝혔던 관치와 낙하산 인사에 대한 부정적 입장을 고려하면 이번 인사는 윤 행장의 경영능력과 상관없이 시장에 던지는 의미가 크다.
어떤 정권이든 정권 초기의 결연한 각오는 시간이 지날수록 희미해지고 관치와 낙하산 인사에 대한 유혹이 커지게 마련이다. 이명박 정부 때 금융가를 쥐락펴락했던 이른바 고려대 출신 위주의 4대 천왕 논란이 있었고 박근혜 정부에선 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인 '서금회‘가 위세를 떨쳤다.
이런 관행을 적폐로 규정하며 개혁의 기치를 내건 문재인 정부가 임기의 반환점을 돈 시점에서 과거의 발언들을 뒤엎고 신흥 관치, 낙하산 인사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는 비판을 받는 것은 아이러니다. 보수정권이든 진보정권이든 대통령이 임명할 수 있는 자리에 대한 유혹을 떨쳐 버리기 힘든 것은 결국은 ‘믿을 사람은 내 사람뿐’이라는 편가르기의 나쁜 관행이 되풀이 되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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