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사주가 지지한 우리금융 '손태승 연임', 그 속에 담긴 3가지 ‘시장혁신'과제
[뉴스투데이=변혜진 기자]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이 25일 열린 우리금융지주 주주총회에서 연임에 성공함에 따라 국민연금 뿐만 아니라 금융감독원과의 전선에도 상당한 변화기류가 형성되고 있다. 우선 국민연금과 글로벌 의결권 자문사인 ISS가 손 회장의 연임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지만 결국 다수 주주들은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줬다. 국민연금은 효성 주총에 이어 우리금융 주총에서도 자신의 반대표가 거듭 무력화되자 ‘개혁 명분’마저 퇴색한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공감받지 못하는 개혁론이 지속될 경우 국민적 피로감만 누적될 뿐이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의 입장도 곤란해졌다는 평가이다. 서울행정법원은 지난 20일 해외금리 연계 파생결합펀드(DLF) 사태와 관련해 금융감독원이 손 회장에 대해 취한 문책경고 ‘효력정지 신청’을 수용했다. 금감원은 행정법원 결정에 불복해 금명간 서울 고등법원에 즉시 항고장을 낼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정작 다수 주주가 손 회장 체제를 지지함으로써 금감원의 즉시항고 명분이 약화됐다는게 금융권 안팎의 해석이다.
금융당국의 제재에도 손 회장의 연임이 의결된 것은 결국 시장개입을 앞세우는 정부의 금융권 혁신논리와 시장논리의 정면대결에서 후자가 승리한 것이다. 따라서 금융권 안팎에서는 손 회장의 연임은 격변기에 직면한 금융시장의 혁신방향과 관련해 3가지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는 분석을 낳고 있다.
■ DLF사태 책임론? 정부의 ‘금융권 혁신논리’ 이긴 ‘시장논리’
손 회장 연임이 던진 가장 강력한 메시지는 “정부 주도의 금융권 혁신논리보다 시장논리에 충실해야 한다”는 주주들의 입장이 확인됐다는 점에 있다. 국민연금(지분율 7.89%)이 손 회장 연임에 반대하면서 내세웠던 주 논리는 DLF사태에 대한 책임론이었다. DLF사태가 우리금융의 기업가치를 훼손했고 이에 대해 손 회장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금융당국 역시 은행의 내부통제 부실을 용인한 최고경영진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이는 수수료 등 금융사 가격 개입을 통해 ‘시장 안정화’를 꾀하는 금융혁신 정책 기조와 맥을 같이 한다.
그러나 금융권은 문제 해결도 시장논리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는 분위기이다. DLF사태는 과도한 실적주의가 낳은 참사임에는 분명하지만, 우리은행은 최대 피해의 80%까지 보상하는 안을 마련하는 등 적극대응하고 있다는 사실에 무게를 둬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연금을 제외한 다수 주주들이 시장논리를 택한 것은 주총 결과에서 나타난다. 지분율 24.58%인 6대 과점주주(IMM PE·푸본생명·키움증권·한국투자증권·한화생명·동양생명)와 우리사주 6.42% 등은 손 회장의 연임에 찬성표를 던졌다. 우리금융의 최대주주(17.25%)인 예금보험공사도 찬반비율을 감안하면 손 회장의 손을 들어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 목적에 대한 근본적 의문 제기돼
손 회장 연임 결정은 국민연금이 다수주주로 있는 금융기관에 대해 스튜어드십 코드의 차원에서 의결권을 행사함에 있어서도 ‘국민이익’을 우선시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금융주는 최근 수년 간의 실적 개선에도 불구하고 금융환경의 급변으로 인해 대세적으로 하락국면을 면치 못하고 있다. 게다가 코로나19라는 대형 악재까지 터지면서 심각한 국면이다. 이는 주주이익의 상실일뿐만 아니라 국민연금이 책임지고 있는 ‘국민 노후’의 위기이기도 하다. 때문에 국민연금이 투자한 금융기관들의 실적과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권리를 행사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실적개선과 무관해보이는 국민연금의 의결권 행사가 누구를 위한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익 극대화를 추구하는 다수 주주들이 손 회장 연임을 지지한 것은 그러한 선택이 우리금융지주의 가치를 높일 수 있다는 경제적 계산을 했다는 의미로 보인다.
■ 손태승호 실적개선·혁신경영에 대한 기대감도 남겨진 과제
그동안 실적개선에 대해서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손 회장은 재임기간 동안 1조 9041억원(2019년 3분기 누적순이익)으로 경상기준 사상 최대실적을 견인한 바 있다. 이는 중소기업 중심의 대출성장 및 핵심예금 증대를 통한 수익구조 개선과 건전성 비율 개선으로 안정적인 대손관리가 강화된 결과다.
지난해 3분기 순영업수익도 2018년 동기대비 3.4% 증가한 6조9417억원을 기록했다. 비이자 이익은 1.3% 감소한 반면, 이자이익은 전년대비 4.3% 증가했고 수수료이익도 3.1% 증가했다.
뿐만 아니라 손 회장은 자산운용사 2곳(우리자산운용, 우리글로벌자산운용)과 부동산신탁회사(우리자산신탁)을 인수합병(M&A)하면서 비은행 사업 포트폴리오를 다각화하는 노력을 펼쳤다. 이를 통해 다양한 수익원을 확보하려는 것이다.
이에 더해 수익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우리금융의 글로벌 부문을 강화하기도 했다. 우리금융에 따르면, 지난해 글로벌 부문의 3분기 누적순이익은 2240억원을 달성하며 전년대비 15.8% 상승했다. 주주들은 이러한 손 회장의 실적경신 경험과 혁신경영 노력을 높게 산것으로 보인다.
손 회장이 DLF논란에서 자유롭지 못한 상황에서 혁신과 실적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아내야 한다는 것은 주주들의 지지가 남긴 또 다른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