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사들, 부동산PF ABCP 규제에 골머리 앓는 까닭은

변혜진 기자 입력 : 2020.05.22 05:00 ㅣ 수정 : 2020.05.22 05:00

증권사·시공사·시행사 등 부동산PF 관련업계 위축 우려…“현실적인 규제 수준 나와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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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변혜진 기자] 최근 금융당국이 증권사들의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Project Financing)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Asset-Backed Commercial Paper) 시장에 본격 규제를 예고하면서 증권사들이 골머리를 앓고 있다.

 

업계는 금융당국이 제시한 규제안이 증권사는 물론 시행사·시공사 등을 포함한 부동산PF 관련업계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입장이다. 증권사는 향후 의견 수렴과정에서 금융당국과 현실적인 규제 수준을 합의해야 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손병두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이 18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자산유동화 제도 종합개선방안’ 관련 업계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사진제공=연합뉴스]

21일 금융업계에 따르면 지난 18일 금융위원회에서 ‘자산유동화제도 종합 개선방안’을 발표하면서 증권사들의 부동산PF 유동화증권 발행 등에 대해 규제 강화를 예고했다.

 

특히 부동산PF 유동화증권 중에서도 증권사들이 집중발행해온 ABCP에 대한 규제 필요성을 적시했다. 부동산PF ABCP는 자산유동화증권(ABS·Asset-Backed Securities)의 구조와 기업어음(CP)의 구조를 결합시킨 것으로, 대부분 3개월 만기의 단기 유동화증권에 해당한다.

 

코로나19 사태로 ABCP 등의 차환이 어려워지고 금리 상승 등의 문제가 발생하면서 리스크 관리 강화 필요성이 대두되자 금융당국이 칼을 빼든 것이다.

 

하지만 업계에서 현재 금융당국이 내놓은 규제 강도 및 규제안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따라 향후 업계의 의견 수렴을 통한 조정이 필요할 전망이다.

 
[표=뉴스투데이 / 자료=한국예탁결제원]

■ 증권사들, 부동산PF ABCP 발행↑…코로나 여파로 차환 발행↓, 단기자금시장 경색으로 이어져

 

증권사들이 그동안 부동산PF ABCP 발행을 늘려온 이유는 발행 절차·자금 조달의 편리성과 유동성 공급, 낮은 금리 등의 장점 때문이었다.

 

증권사 관계자 A씨는 “일반 채권들은 만기가 길고 발행도 복잡하지만 부동산PF 유동화증권은 대상자산이 정확한 부동산을 기반으로 한다”며, “특히 ABCP의 경우 짧은 만기로 유동성 공급을 늘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부동산PF 자체도 장기 프로젝트다보니 ABCP 발행으로 자금이 원활하게 도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B씨 역시 “자산유동화증권의 경우 발행할 때마다 유동화전문회사(SPC·Special Purpose Company)를 설립해야 하지만 ABCP는 한번 설립해도 발행이 가능하다”며 발행 편리성을 장점으로 꼽았다.

 

단기물로 발행하면서 낮은 금리로 비용을 낮출 수 있어 수익성이 좋은 것도 한몫했다. 물론 그만큼 만기가 1~3년으로 긴 ABS에 비해 리스크도 높다. 만기가 PF 프로젝트의 현금흐름보다 짧아 차환발행이 무산될 수 있다. 이 경우 매입확약 등으로 신용 공여를 제공한 증권사가 자금을 고스란히 부담해야 한다.

 

다만 ABS의 안정성에도 ABCP로 발행이 몰린 것은 2006년부터 정부가 부동산 관련 유동화 규제(자산유동화법)를 강화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AA등급 정도로 신용등급이 높은 시공사·건설사가 보증한 재개발 PF 등으로 ABS 발행이 한정됐다.

 

이에 따라 증권사들은 ABCP 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한국기업평가에 따르면 증권사들이 지난해 발행한 부동산PF ABCP는 22조1083억원으로, 2018년 대비 12.4%(2조4404억원)가량 늘어난 수치다.

 

그러나 코로나 여파로 부동산 시장이 위축되면서 증권사들은 지난 4월 신규 부동산PF 유동화증권(ABS, ABCP 등 포함)을 단 한건도 발행하지 않았다. A 증권사는 300억원 규모의 ABCP 중 250억원을 다시 사들였다. 투자 수요가 없어 차환 발행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이처럼 증권사들의 매입약정 이행이 증가하면서 자금수요가 급증해 CP 금리까지 급등했다. 1%대를 유지하던 CP 금리는 3월 26일 2.04%, 4월 2일에는 2.23%까지 올랐다. ABCP 시장이 받은 타격이 단기자금시장 경색으로 이어졌다는 뜻이다.

 

■ 금융당국, “비등록유동화 증권인 ABCP도 제재해야”…선제적 리스크 관리

금융당국에서는 자산유동화법의 규제를 받지 않는 비등록유동화 증권, 즉 ABCP에도 제재를 가해 선제적으로 리스크를 관리하고자 하는 것이다.

 

금융당국이 제안하는 방안은 ABCP 기초자산의 질적 관리와 기초자산과 증권의 만기를 일치시는 두 가지다. ABCP를 발행하는 증권사에 5%의 신용위험을 지도록 함으로써 신용도가 낮은 기초자산을 제외토록 하고, 만기 일치 ABCP 등에 대해 공모시장 진입을 유도하는 방안이다.

 

특히 손병두 금융위 부위원장은 지난 18일 모두발언에서 “부동산PF ABCP의 기초자산은 2~3년 이상 장기인데 만기 3개월 내외 단기증권으로 발행돼 자금조달과 운용의 ‘미스매치’가 생긴다”며 “이는 심각한 위험요인이 될 수 있어 미스매치 해결을 위한 구체적 방안을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단기 자금조달과 장기 운용 간 만기 불일치로 인한 차환위험, 즉 유동성 위험을 미리 차단하겠다는 금융당국의 의지가 엿보이는 대목이다.

■ ABCP 제재…증권사 부동산PF·IB, 시공사·시행사 등 업계 전반 타격↑

업계는 금융당국의 제재 수준이 현실적이지 않을 뿐더러 부동산 PF 관련 업계 전체를 위축시킬 수 있다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A씨는 “증권사가 상당부분 수익을 올린 부동산 PF는 물론 투자금융(IB·Investment Banking) 역시 부동산을 대상자산으로 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번 금융당국의 제재는 결국 PF 자체를 하지 말라는 것으로 현재 실정을 전혀 반영하지 못한 탁상공론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C씨 역시 “ABCP의 기초자산인 부동산 자체가 기본 3~5년으로 장기 투자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단기로 자금조달을 나눠서 운용하는 것”이라며, “자금조달과 운용 만기를 일치시키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밝혔다.

 

이에 더해 A씨는 “증권사의 부동산 PF 쏠림현상을 규제하려다 관련 건설사·시공사·시행사 등 업계 전반을 크게 위축시킬 수 있다”고 덧붙였다.

 

부동산 PF로 영세 시행사들은 저비용·저신용으로도 수익을 얻을 수 있었으며, 시공사 역시 우발채무만을 부담해 자금을 직접 조달해야 하는 부담을 줄일 수 있었다.

 

하지만 ABCP 규제로 부동산PF 시장이 위축되면 관련 시공사·시행사 역시 줄줄이 타격받게 된다.

 

업계는 관련 대안에 대해서는 금융당국과의 논의가 이뤄진 후 구체적인 가이드라인이 나와봐야 알 수 있다는 입장이다.

 

A씨는 이번 규제로 증권사들이 ABS나 기타 부동산 PF 유동화증권 발행으로 돌릴 가능성에 대해 “그럴 수도 있지만 현 상황에선 장담할 수 없다”고 답했다.

 

다만 이 관계자는 “부동산PF 우발채무 규제도 결국 증권사 한곳만 해당됐던만큼 규제를 자산별로 세분화해서 적용하는 등 관련 기준이 나온다면 ABCP 규제의 영향도 제한적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한편 최근 정부지원으로 단기자금시장 경색이 조금씩 풀렸지만 증권사들이 4월에 올스탑됐던 ABCP 발행에 적극적으로 나서기에는 어려울 전망이다. 정부 규제에 전면 대치하는 행보를 보이기에 부담스럽다는 입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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