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희철 칼럼니스트 입력 : 2020.06.08 18:12 ㅣ 수정 : 2020.06.23 10:04
기쁜 일 고된 일 다 함께 겪는 '우리'는 전우애로 굳게 뭉쳐진 방패들
[뉴스투데이=김희철 칼럼니스트] 군가 ‘전우’의 가사에는 “겨레의 늠름한 아들로 태어나 조국을 지키는 보람찬 길에서 우리는 젊음을 함께 사르며 깨끗이 피고 진 무궁화 꽃이다. 한가치 담배도 나눠 피우고 … ”라는 구절이 있다.
남자들이 술자리에서 즐겨 부르는 군가 ‘전우’의 가사처럼 “한가치 담배도 나눠 피우고 기쁜 일 고된 일 다 함께 겪는 우리는 전우애로 굳게 뭉쳐진 책임을 다하는 방패들”이었기에 군생활 동안 만난 전우들은 평생을 함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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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락을 같이했던 전역자·후배 전우들과 함께 나눈 정(情)/묵묵히 감수하는 아내에게 고마움 느껴
중대장을 18개월 정도 근무할 때 즈음 고비가 찾아왔다. 중대의 일꾼으로 성실했던 김충한 상병이 전투일일결산을 위해 매복용 실탄을 점검 중 훈련용 크레모아 뇌관이 터져 얼굴에 파편상을 입어 의무대로 입실했다.
그는 일년 전에도 가스통 폭발로 화상을 입어 후송을 다녀온 병사였다. 연대에서는 병력 관리를 잘 못했다고 경고장을 하달했다. 중대장 근무 1년만에 선봉중대가 되어 한층 사기가 올라있던 즈음에 발생한 사고로 중대의 분위기가 가라앉고 어수선했다.
헌데 8개월전에 전역한 홍성천·배영환 예비역병장이 민가에서 한시간 떨어진 예상동 부대까지 면회를 와서 중대원들을 격려하는 바람에 다시 분위기는 즐거운 병영생활로 바뀌어갔다. 고마운 전우들이었다.
전방 격오지에서 신혼살림을 하던 필자에게도 개인적으로 사관학교시절 각별히 아꼈던 후배가 관사로 찾아와 오랫만에 회포를 풀며 소대장과 중대장 근무의 노하우를 전수하느라 즐거운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하지만 아내는 신혼살림 속에서도 남편의 술상을 준비해야하는 피곤함의 연속이었다. 묵묵이 감수하는 그 모습에서 고마움을 느꼈다.
어떤 후배는 전방에서 보기 힘든 어항을 선물해주어 가족의 지루함을 달래주어 고맙기도 했지만 필자가 총각시절 선배집에 쳐들어가 신세를 졌던 것을 되갚고있는 셈이라 생각하니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어떤 휴일엔 수색대대 중대장으로 근무하는 김광우 동기에게서 연락이 와서 오토바이를 타고 한시간 달려 민촌 관사에 갔다. 그곳에는 서울 육사에 근무 중인 고장호, 김권희와 인접 3사단의 유종렬, 선종률 그리고 같은 사단에 있는 한황진, 강성묵, 김선권도 참석해 오랜만에 동기들과 기울이는 한잔 술에 전방 오지의 외로움을 달랠 수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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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사관사관학교 학부과정’에서 ‘제1군 야전 중대장근무 성공사례’ 강의
1986년 5월, 육군 제3사관사관학교출신 중·대위들의 학부과정에서 ‘야전부대 지휘관 초빙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필자가 ‘제1군 야전중대장 체험담’을 교육하라는 지시를 전화로 받았다.
사단은 일주일 뒤의 강의라 미처 공문으로 지시를 못했다. 때문에 필자는 사단에 직접 들어가 위 사진과 같이 상급부대 공문의 강의 내용을 적으며 확인했다. 그런데 더 황당하게도 3일 뒤 작전참모에게 강의 내용을 검토받으라고 했다.
자대로 복귀해 대대장에게 보고하고, 중대장 부임전 고등군사반(OAC)과정에서 공부하는 방법과 중대장 근무요령 및 실제 사고 및 대침투작전 성공 사례 등을 준비해서 사단 검토를 받았다.
중대장 기존임무를 수행하면서 강의 준비 및 상급 검토는 힘들었지만 그래도 같은 계급의 후배들인 학부과정 540명에게 ‘제1군 야전중대장 체험담’을 통해 필자의 노하우를 전수할 수 있다는 것에 보람도 느꼈다. 게다가 이번 교육 덕택에 중대장근무를 시작한 지 18개월째 만에 얻는 첫 휴가로 고향집과 처가에도 들려 인사도 할 수 있었다.
마침 3사관사관학교에 후배 정한기 대위(육사39기)가 교관을 하고 있어 사전 정보를 얻기 위해 강의 하루전에 영천에 미리 도착해서 복지회관에 여장을 풀었다. 정후배와 저녁을 하면서 당시 학교에서 강조되는 사항과 주요 직위자의 특징 등을 파악했다.
강의 당일 교수부장을 만나니 예상했던 바와 같이 강의시에 추가요구사항이 있었다. 최초 ‘야전부대 지휘관 초빙교육’ 프로그램에서 필요했던 것은 학부과정 학생들에게 중대장을 성공적으로 하기위한 체험담 교육이었는데 당시 강조되던 ‘신좌경사상’에 대한 비판이 추가되었다.
야전에서도 ‘신좌경사상’에 대한 비판이 강조되어 교관 경연대회도 개최하고 지휘관이 직접 교육하도록 강조하여 이미 배경지식을 갖고 있는 터라 별 걱정은 안했다.
사전 대화를 나누던 교수부장은 새롭게 강조되던 ‘신좌경사상’에 대한 비판에 관련된 필자의 설명에 안심이 되었는지 중대장 근무시에 꼭 필요한 내용이라며 강의시간을 4시간으로 증가시켰다.
사실 정훈참모부에서 하달된 교육자료만 가지고는 부대원들을 이해시키기 보다는 오히려 ‘신좌경사상’을 알려주는 꼴이 될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침 중대에 학생운동을 하다가 입대한 김찬석 상병(현 청주대교수)에게 자문을 구했고 그의 지식을 역이용하여 비판하도록 준비시켜 직접 강의하니 병사들에게는 더 효과가 있었고 필자도 그를 통해 지식을 배양할 수 있었다.
덕분에 강의 도중 학부과정의 학생들의 두 눈이 반짝거리며 주시하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하루전에 도착해 후배 정대위를 통해 습득한 정보로 학교에서 강조하는 사항과 교수부장 및 주요 간부의 별명을 활용하니 학생들의 웃음과 함께 한 호흡이 될 수 있어 강의는 성공적으로 마무리 되었다.
3사관사관학교 학부과정의 강의를 성공적으로 마치고 중대로 복귀하니 낮 익은 글씨의 손편지 등기가 도착했다. 당시 중대장으로 근무하는 지역인 예상동에서 소대장 시절에 모셨던 대대장 유제현 대령(육사23기)의 정(情)이 듬뿍 담긴 글이었다.
“가족과 부하의 나쁜 버릇은 장점이 되도록 애정으로 감싸주고, 교육도 시간 떼우기 보다는 성과위주로 하며, 바쁜 가운데에서도 미래를 위해 틈틈이 공부하라”는 조언과 함께 자신이 근무하며 지휘했던 지역에서 또다시 근무하는 필자에게 부하들과 부대 발전에 보태라며 10만원을 동봉해 주셨다.
보내준 위문금을 어떻게 활용할까 고민하다가 병사들이 이발할 때 용이하도록 당시 처음 판매한 ‘전동 바리깡’을 구입해서 대대장 존함을 새겨서 중대 이발병에게 전달했다.
최전방 오지에 전역한 병사들이 다시 찾아오고 동기, 후배들이 고생한다며 위문도 왔으며 모시던 상관이 격려의 손편지와 함께 금일봉까지 보내오니 필자 뿐만 아니라 중대원들과 가족도 사기가 치솟아 천정을 깨는 순간이었다.
헌데 호사다마(好事多魔)라는 사자성어처럼 좋은 일만 있지는 않았다. 시간이 흘러 중대장직을 후배에게 물려주고 사단작전 장교로 전보됐다. 후임자는 필자가 3사관사관학교 학부과정에서 ‘야전 중대장근무 성공사례’를 교육했던 후배였다. 그런데 그 후배는 6개월 뒤에 오토바이 사고로 운명을 달리했다.
인간사 새옹지마(塞翁之馬)라고 했다. 정(情)으로 수행한 중대장직을 3사관사관학교에서 교육했던 인연이 닿은 후배에게 물려주었는데 그는 멋있게 중대장직을 수행하다가 불의의 객이 되었다.
부하, 전역자, 선후배, 동기들과 좋은 정도, 아픔도 결국에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이다. 즉 희로애락이 있는 현실세계의 모든 것은 매순간마다 생멸, 변화하고 있다. 거기에 모순이 있고 고(苦)가 있다.
이 모든 만남과 ‘야전 지휘관 초빙교육’의 소중하고 아픈 정(情)이 아련한 추억으로 다가온다.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현재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알에이치코리아,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