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CJ그룹 이재현 회장은 글로벌 문화기업을 지향해왔다. 이 회장은 지난 25년 동안 300여편의 영화에 투자해왔다. 그 전위대가 CJ ENM(대표 허민회)이다.
CJ ENM이 투자와 배급을 맡았던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지난 2월 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돌비극장에서 개최된 제92회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작품상, 각본상, 감독상, 국제영화상 등을 수상해 4관왕이 됐다. 이는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이정표이다. 세계 영화시장의 지배자인 ‘헐리우드’를 꺽은 것이다.
CJ ENM은 이제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포식자인 미국기업 넷플리스를 정조준하고 있다. 넷플릭스는 SK브로드밴드 통신망을 공짜로 큰 소리치는 베짱영업을 하고 있지만 안타깝게도 국내 소비자들에겐 인기만점이다.
넷플릭스가 인기를 끌수록 트래픽이 많아지는 SK브로드밴드가 “최소한의 망 사용료를 부담해달라”고 하자, 넷플릭스는 지난 4월 서울지방법원에 SK브로드밴드를 상대로 '채무부존재 확인' 민사소송을 냈다. “우리는 너에게 돈을 줄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웬만하면 불매운동이 벌어질 상황이지만 현실은 정반대이다. 한국인은 넷플릭스에 열광 중이다.
민족감정을 망각하게 만드는 넷플릭스의 힘은 무엇일까, 콘텐츠이다. 넷플릭스가 서비스하는 다양하고 재미있는 영화콘텐츠를 즐기는데 정신이 팔린 한국인들은 넷플릭스가 SK브로드밴드가 거액을 들여 설치해놓은 통신망에서 땅 짚고 헤엄친다는 사실을 잊게 된다. 적수가 없는 한국시장 상황이 넷플릭스의 오만한 태도를 부채질하는 셈이다.
이 점에서 CJ ENM이 JTBC와 손을 잡고 만든 OTT인 ‘티빙(tving)’은 희망을 던지고 있다. 넷플릭스 ‘응징자’가 될 싹이 보인다. 17일 시장조사업체인 닐슨코리아클릭에 따르면, 티빙의 활성이용자(MAU) 수는 지난 해 5월 124만5217명에서 지난 5월 254만2374명으로 2.04배가 늘었다. 물론 넷플릭스의 성장세는 더 무섭다. 같은 기간 동안 252만8084명에서 637만4010명으로 급증했다. 1년 새 2.5배가 된 것이다. MAU는 1개월 동안 1번 이상 서비스를 실제 사용한 사람 수이다.
그러나 KBS, MBC, SBS 등 공중파 3사가 SKT와 손잡고 지난해 11월 ‘한국의 넷플릭스’를 표방하며 출범시킨 OTT ‘웨이브(Wavve)’에 비하면 티빙의 파괴력은 기대할만하다. 웨이브의 MAU는 출범 당시에 402만3722명이었으나 지난 5월 기준 346만4579명에 그쳤다.
티빙이 2.04배 증가하는 동안에 웨이브는 13.9% 역성장한 것이다.
모바일과 웹을 합친 통합 순이용자 수에서는 티빙이 웨이브를 앞섰다. 지난 5월 기준 티빙의 이용자 수는 394만700명으로 집계됐다. 전월 대비 9% 정도 증가한 수치이다. 웨이브는 이 기간의 이용자 수가 393만9000명으로 전월 대비 4% 줄었다. 티빙의 이용자 수가 웨이브보다 1700명 더 많았다.
국내 OTT중에서 누가 넷플릭스를 따라잡느냐의 게임에서 일단 다윗인 티빙이 골리앗인 웨이브를 제친 것이다.
티빙의 힘은 기생충과 마찬가지로 콘텐츠에 있다. 티빙이 국내 OTT 중 정상의 위치에 오른 데는 CJ ENM이 제작한 '사랑의 불시착', '하이바이마마', '슬기로운 의사생활', '대탈출3' 등 드라마와 JTBC의 '이태원클라스', '부부의 세계' 등이 상당한 기여를 한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이들 인기 드라마는 웨이브에서 볼 수 없다. 국내 드라마 시장의 권력이 공중파 3사에서 CJ ENM의 tvN이나 JTBC로 넘어가고 있는 것과 티빙의 왕좌 등극은 인과관계를 형성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웹상에서는 “tvN이나 JTBC 드라마를 볼 수 없는 OTT가 말이 되느냐”는 웨이브 이용자들의 불만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다.
가성비도 티빙이 우위이다. 티빙은 CJ ONE 회원의 경우 월 최저가 5900원으로 즐길 수 있다. 넷플릭스와 웨이브의 베이직 최저가는 각각 9500원과 7900원이다.
맛있고 값싼 음식점이 결국은 맛집으로 살아 남듯이 OTT시장에서도 값싸고 재미있는 콘텐츠를 제공하는 ‘맛집’이 왕좌를 차지하기 마련이다. 현재로선 넷플릭스가 ‘1등 맛집’이라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티빙은 '2등 맛집'이다. 격차는 크다. 넥플릭스의 5월 기준 MAU는 티빙보다 383만명이나 많다.
하지만 토종 OTT 티빙이 무서운 성장세를 유지한다면 넷플릭스의 대항마가 될 가능성은 엿보인다. 만약에 티빙이 넥플릭스를 일시적으로라도 꺽는 시점이 발생한다면, 기념비적 사건이다. '기생충'이 헐리우드 영화들을 제치고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것과 어깨를 견줄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