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로 본 청년취업대란 (11)] ‘인구론’은 옛말, ‘전화기’ 대척점에 선 ‘협문’이 진짜 취업난
인문계열 학과생 ‘협문’과 ‘광문’으로 나뉘어 / 심각한 취업난 드러냈던 ‘협문’ 이 비난 대상으로 전락?
[뉴스투데이=윤혜림 기자] 인문계 졸업생의 취업난이 갈수록 심해지면서 ‘인구론(인문계 졸업생의 90%가 논다)’, ‘문송합니다(문과라서 죄송합니다)’ 같은 신조어는 이제 옛말이 됐다.
최근 대학가에서는 인문계열 학과를 ‘협문’과 ‘광문’으로 구분하고 있다. 여기서 협문은 ‘협의의 문과’를 줄인 말로 문사철 등 인문계열 학과와 사회과학 중 정치외교학 등 비(非)상경계열학과를 의미한다. ‘광의의 문과’를 줄인 ‘광문’은 경영·경제 등과 같이 이과만큼 수학이 필요한 상경계열 학과를 통칭한다.
협문이라는 말은 3년 전부터 대학가와 입시 관련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쓰이고 있다. 처음 협문은 ‘좁은 의미의 진짜 문과’를 뜻하는 의미로 쓰였으나, 최근에는 취업률이 저조한 인문·사회계열 학과를 조롱하는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인문계 졸업생들의 심각한 취업난을 호소하는 신조어의 의미가 부정적으로 전환되고 있는 셈이다.
최근 고려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박현주 미래에셋대우 회장을 두고 ‘선배도 손절하는 협문’이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오며 논쟁을 벌이기도 했다. 박 회장은 고려대학교 교육학과에 입학했고, 복수전공으로 경영학을 공부했다. 그러나 박 회장이 본 전공인 교육대학에는 기부하지 않고, 복수 전공인 경영대학에만 기부했다는 것이다.
실제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의 LG-POSCO 경영관에는 박 회장의 기부로 만들어진 박현주 라운지가 있었고, 고려대학교 홈페이지상에서도 박 회장을 ‘경영78’ 졸업생으로만 소개하기도 했다.
이렇듯 협문은 소위 취업 깡패로 일컬어지는 ‘전화기(전기전자·화학·기계공학과)’의 대척점에 확고하게 자리 잡고 있다. 실제 대기업에서 신입사원 10명을 뽑으면 1명 정도가 문과생인데 그마저도 ‘협문’은 희소하다는 것이다.
몇 년 전부터 수험생 커뮤니티 오르비에서도 협문과 광문 간 논쟁이 벌어지곤 했다.
한 커뮤니티 이용자는 ‘협문이나 광문이나 거기서 거기 아니냐? 어차피 인문계열이잖아’라며 협문과 광문을 나누는 게 의미 없다는 게시글을 올렸다.
이에 ‘협문스러운 문과는 답도 없다. 수학을 못 해서 할 수 없이 가는 학과다 보니 시험 기간에 일주일만 빡세게 해도 4.0은 걍 넘는다. 취업에 필요한 재무, 경제, 통계 등을 안 배우니 취업할 때도 인적성에서 걸러지는 거 ㅇㅇ’라는 댓글이 달리기도 했다.
경제학과를 졸업한 직장인 김 모씨(26)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지난번 미팅 때 경제학을 졸업하신 분을 만났는데, 직장에서 R-Studio와 같은 통계 프로그램을 배우는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고 하셨다”며 “근데 나는 이미 학부에서 그 프로그램을 배우고 나왔다고 하니 요즘엔 그런 것도 배우고 나오냐며 놀라시더라”고 전했다.
이어 그는 “같은 학과여도 과거와 달리 아무래도 취업 때문에 현실에서 쓸 수 있는 것도 많이 배우다 보니 광문을 더 쳐주는 것 아닌가 싶다”는 입장을 취했다.
‘협문’이면서 동시에 ‘광문’인 박현주 회장이 ‘광문’에게만 기부금을 낸다는 지적은 갈수록 심해지는 ‘협문’의 자존감 상실과 무관치 않다는 분석도 제기된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대기업에서 10명을 채용하면 그중 1명만 문과이고 그 1명도 대부분 ‘광문’이라고 보면 된다”고 말했다.
‘협문’이라는 신조어는 한국사회에서 전통적인 인문학 전공자들이 겪고 있는 고된 삶의 전망을 고스란히 표현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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