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이 ADD에 주문한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 분위기 조성’의 전제조건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부터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편집자>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3일 대전의 국방과학연구소(ADD)를 찾아 신형 탄도미사일 현무-4와 다기능위상배열(AESA) 레이더 개발 성공을 축하하면서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 분위기를 만들어달라고 주문했다.
■ 단기과제 매달려 ‘성공률 90% 이상’은 ADD 연구와 맞지 않아
문 대통령은 “연구라는 것은 국방과학 연구뿐만 아니고 모든 과학의 연구 또는 기초연구까지도 수많은 실패를 거듭해 가면서 그 실패를 딛고 발전해 가고 드디어 성공에 이르게 되는 것”이라며 “그래서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 분위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실패가 용인되지 않으면 금방 성공할 수 있는 단기 실적 과제에 매달리고 ‘성공률이 90%가 넘는다’고 자랑하게 되는데, 그것은 원천기술을 고도화해 나가는 연구와는 맞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실패한 경험조차 자산으로 삼아 나가는 분위기를 꼭 만들어 주기 바란다”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 방위사업청은 이미 지난 2017년 방위사업법 제46조의2(성실한 연구개발 수행의 인정)를 신설하여 핵심기술 연구개발에 성실수행인정제도를 적용해 왔다. 또한 지난 3월 국회를 통과한 국방과학기술혁신 촉진법에는 핵심기술은 물론 협약 방식의 무기체계 연구개발도 포괄하는 ‘국방연구개발’ 전반에 성실수행인정제도를 적용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마련됐다.
따라서 문 대통령의 이번 언급은 제도의 미비를 지적했다기보다 ADD가 무기체계 적용 소요가 없더라도 도전적이고 창의적인 기술 개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도록 힘을 실어주려는 목적이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그런데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 분위기를 조성하려면 우선 그동안 국방연구개발의 성공률이 90% 이상이라고 평가하게 된 성공 기준부터 살펴봐야 한다.
■ 성공률 98.4%에 활용률 35.9%…성공 기준 살피고 활용률 높여야
현재 국방연구개발은 평가위원들이 과제를 평가한 종합점수가 80점 이상이면 성공한 것으로 판정한다. 그동안 평가위원들이 온정적으로 평가하는 경향이 있어서인지 2012년 이후 ADD가 착수한 61개 과제 중 60개가 성공 판정을 받았다. 과제 성공률이 무려 98.4%에 이른다.
반면, 국방연구개발에 성공한 과제들이 무기체계에 적용된 실적은 매우 낮은 편이다. 감사원이 ADD에 대한 기관운영감사 결과 2012∼2017년 사이 종료된 무기체계 연계형 기술과제 92건 가운데 무기체계에 적용된 실적이 있는 과제는 33건으로 35.9%에 불과하다.
국방연구개발은 최종적으로 무기체계에 적용할 목적으로 수행된다. 만약 개발 성공의 기준을 무기체계 적용 여부로 판정했다면 성공률이 낮아서 오히려 문제라고 지적될 수도 있다. 이런 상황은 미래 첨단무기체계 확보를 위해 도전적 기술 개발에 나서야 하는 동시에 개발 결과물의 활용률을 높이는 것도 시급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 기술보다 무기 개발에 관심…성실수행 판정 기준 주관적 요소 많아
이 분야에 정통한 한 예비역 장성은 “모두들 무기 개발에만 관심이 있고 기술 개발에는 관심이 없다”면서 “개발된 결과물을 언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 명확하게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실패를 용인할 테니 도전적인 기술을 개발하라고 독려하면 개발된 결과물의 활용률은 더욱 낮아질 수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럼에도 현재 정부는 소요가 결정되지 않거나 소요가 예정되지 않은 무기체계에 적용할 목적으로 혁신적이고 도전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미래도전국방기술개발사업’에 매년 1,000억원 이상의 예산을 투자할 계획이다. 이 사업에 대한 예산투자 성과를 과연 어떻게 평가하고 입증할 것인지가 관건이다.
또한 실패 용인에 따른 일부 연구자의 도덕적 해이나 평가위원의 온정적 평가가 우려된다면 성실 수행 여부를 객관적으로 판정할 수 있는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 현재 방위사업법 시행령(제61조의3)에 연구수행 방법 및 과정이 체계적이고 충실하게 수행되었는지 여부 등 판정 기준이 제시돼 있지만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부분이 많다.
■ 성실수행 평가에 연구노트 활용…무기체계 도전적 개발은 부적절
유형곤 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은 “성실한 연구인지 아닌지 구분하려면 연구노트에 연구과정을 충실히 작성하도록 의무화하여 연구자가 자신이 개발한 결과물의 가치를 입증하게 하는 방법이 있다”고 말했다. 그는 “타 부처는 과기정통부가 정한 연구노트 지침에 따라 국가연구개발사업 간 연구노트를 작성하고, 성실수행 여부 평가에 활용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문 대통령이 언급했듯이 실패한 경험도 자산으로 축적되려면 실패한 연구결과물을 기반으로 하는 후속연구계획 또는 결과물 활용계획 등이 마련돼야 한다. 이런 계획들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지 성실수행 여부 평가에 포함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또한 일정한 시간이 경과한 후 그 계획이 실제로 진행되는지 별도로 조사하여 평가할 필요성도 제기된다.
한편, 협약 방식의 무기체계 연구개발도 이제 성실수행인정제도가 적용된다. 하지만 양산을 전제로 명확한 군 소요에 기반한 무기체계 개발이 도전적으로 수행되는 것은 부적절하다는 의견이 많다. 유 센터장은 “업체 주관 무기체계 개발이 확대되기 때문에 성능, 기간, 비용을 합리적으로 설정하고 국가정책사업 지정, 진화적 개발방식 적용 등 업체가 안정적으로 개발할 여건을 마련해 주는 노력이 우선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결론적으로 문 대통령이 당부한 실패를 용인하는 연구 분위기 조성은 ADD 연구원의 사기 진작을 위해서는 의미가 있다. 하지만 투자된 예산 이상의 연구 성과를 창출하고 일각에서 지적하는 연구원의 도덕적 해이 우려를 해소하려면 현행 법규에 누락된 취약점을 면밀히 살펴서 지속적으로 보완해 나가는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