셀트리온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60대 창업' 선택
[뉴스투데이=한유진 기자] 셀트리온 서정진(63) 회장이 '제2의 인생'에 대한 계획을 구체화하고 있다. 19년전 창업해 글로벌 의약바이오기업으로 키워낸 셀트리온 경영일선에서 물러나 전혀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기업을 일궈낸 창업자가 60대 초반의 나이에 은퇴를 단행하고 또 다른 기업을 일궈내는 도전을 선택한 것은 유례를 찾기 힘들다. 한국재계의 관행을 깨는 패러다임 전환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연말 은퇴를 이미 선언했던 서 회장은 지난 6일 열린 ‘코리아 인베스트먼트 페스티벌 2020’에서 향후 계획 2가지를 밝혔다. 그는 우선 "오는 12월 31일 은퇴한 후 u헬스케어(u-healthcare)와 기업형 벤처캐피털(CVC)에 투자할 것"이라면서 “1월부터 스타트업 모임에 참여할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1월 신년회에서 서 회장은 “2020년 말에 은퇴하겠다”며 “은퇴 전까지 의약품 글로벌 직접 판매 체계 구축에 힘쓸 것”이라고 은퇴를 처음 언급한 바 있다. 서 회장이 꾸준히 언급해 온 은퇴 후 계획들이 구체화되고 있는 것이다.
■ 은퇴 후 u헬스케어 사업 진출 선언 / 기존 직원 한 명도 데려가지 않을 예정
서 회장이 진출을 선언한 ‘u헬스케어(U-healthcare)’는 유비쿼터스와 원격의료 기술을 활용한 건강 관리 서비스다. 시간과 공간의 제한없이 의료 서비스를 제공받을 수 있는 게 가장 큰 특징이다.
이미 올해 초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JP모건 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서 서 회장은 셀트리온의 신사업은 "인공지능(AI) 원격진료다"라고 밝힌 바 있다. 표면적으로 보면 의약품 사업과 성격이 다른 영역에 진출하겠다는 이야기이다.
하지만 유헬스케어는 떠오르는 산업영역이다. AI와 빅데이터가 결합돼 맞춤형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게 핵심 경쟁력이다. 이 시장에 성공적으로 진출할 경우 셀트리온은 '종합 헬스케어그룹'으로 성장한다.
셀트리온은 바이이시밀러 기업에서 코로나19를 계기로 바이오신약 기업으로 진화중이다. 유헬스케어까지 더해지면 AI와 바이오산업의 최강자로 부상할 수 있다. 이것이 서 회장의 원대한 구상인 것으로 풀이된다. 셀트리온에서의 이선후퇴는 더 큰 기업가적 야망을 성취하기 위한 도약의 자세라고 볼 수 있다.
서 회장은 미국은 땅이 넓어 이동이 쉽지 않고 비싼 만큼 집에서 진료를 볼 수 있는 시대가 올 것이라는 판단을 했다고 한다. 이러한 미래 구상이 ‘u헬스케어’ 진출의 계기가 됐다고 한다.
서 회장은 셀트리온과 단절된 기업을 설립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는 ‘코리아 인베스트먼트 페스티벌 2020’에서 “19년 전 창업한 정신으로 돌아가 유헬스케어 스타트업 기업을 세울 것”이라며 “기존 직원은 한 명도 데려가지 않을 예정”이라고 말했다.
■ 은퇴 후 두 마리 토끼 잡기, 전문경영인체제 도입하고 지주회사 설립해 지배력 강화
서 회장은 일전에 “샐러리맨 생활부터 그룹 총수 자리까지 와보니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나갈 때를 아는 것”이라며 “최근 들어 다른 회사의 회장님들을 만날 기회가 잦은 데 은퇴 후에는 전문경영인에게 회사를 맡기는 것이 맞다고 생각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서 회장은 자신의 은퇴 후 경영은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두 아들에게는 이사회 의장을 시켜 소유와 경영이 분리되도록 하겠다고 꾸준히 밝혀왔다. 아직 30대인 자녀들을 위한 경영권 승계작업은 하지 않겠다고 여러 차례 강조한 상태다.
때문에 은퇴 후 두 아들에게 경영을 맡기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 최근 일련의 셀트리온그룹 지배구조개편도 이같은 결정의 연장선으로 추측된다.
지난달 25일 셀트리온그룹은 셀트리온, 셀트리온헬스케어, 셀트리온제약 3사의 합병 계획을 밝혔다.
3사 합병을 위한 첫 단계로 셀트리온헬스케어의 최대주주인 서 회장이 보유한 지분 35.5% 가운데 24.3%를 현물출자해 셀트리온헬스케어홀딩스를 설립했다. 서 회장은 신설법인 셀트리온헬스케어홀딩스의 지분 100%를 보유하면서 실질적인 지배력을 유지한다.
회사는 적격합병 요건이 갖춰진 후 즉시 셀트리온홀딩스와 헬스케어홀딩스의 합병을 추진해 2021년 말까지 셀트리온그룹의 지주회사 체제를 확립한다는 방침이다.
이렇게 될 경우 셀트리온그룹에 대한 서 회장의 지배력을 더욱 강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경영인 체제 도입과 지배력 강화라는 두마리 토끼를 잡겠다는 구상인 것이다.
셀트리온은 “이번 합병 발표는 소유와 경영의 분리 및 지배구조 강화를 위함”이라고 밝혔다.
셀트리온그룹은 이번 헬스케어홀딩스 설립을 통해 지주회사 체제를 확립함으로써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 전문 경영인체제를 확고히 할 수 있게 됐다. 지주회사체제는 지주회사가 계열사들 주식을 갖고 계열사간 지분 보유를 차단함으로써 지배구조 투명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이다.
또한 이번 3사 합병을 통해 단일 회사에서 개발과 생산 및 유통, 판매까지 동시에 이뤄지기 때문에 거래구조 개선을 통한 비용 절감 및 사업의 투명성이 제고되는 효과도 기대되는 부분이다.
■ 기업형 벤처캐피털에 2조원 투자 추진 / 청년 창업가 육성은 또 다른 은퇴 계획
서 회장은 후배 양성을 위해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탈 설립을 통해 2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서 회장은 “중소벤처기업부와 산업은행의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이 만들어지면 2조원 가량을 투자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기업주도형 벤처캐피털(CVC)는 대기업이 전략적 목적으로 독립적인 벤처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을 말한다. 지난 7월 정부는 대기업 지주회사들도 앞으로 기업형 벤처캐피탈을 만들 수 있도록 규제를 풀기로 결정했다.
서 회장은 “정부가 기업형벤처투자회사(CVC) 방향을 잡으면 5000억원짜리 스타트업 펀드를 만들 것”이라고 밝히기도 했다.
서 회장의 스타트업 기업에 대한 애정은 오래됐다. 서 회장의 셀트리온은 이미 미래에셋대우와 함께 2000억원 규모의 스타트업 펀드를 조성해 스타트업 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지난 6월 열린 넥스트라이즈2020 기조강연에서 서 회장은 강연을 듣던 한 창업가를 일으켜 세워 “자금이 부족하면 6000만원까지는 도와주겠다. 찾아오라”며 격려하기도 했다. 열정에 불타는 청년 창업가를 키워내는 건 그의 또 다른 은퇴계획인 셈이다.
■ 은퇴 후에도 도전장 던지는 기업가 정신/60대 창업자의 성공 역사 쓸까
서 회장의 은퇴 후 행보에 주목하는 이유는 셀트리온의 주력사업인 바이오의약품, 제약이 아닌, 전혀 새로운 분야인 u헬스케어와 CVC 영역으로의 도전이기 때문이다.
과감한 도전정신은 서 회장의 인격적 본질이라고 볼 수 있다. 삼성전기에서 평범한 회사원으로 시작해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의 눈에 띄어 대우자동차 상임경영고문을 지냈던 그는 그룹 해체로 2000년 실직을 경험했다.
하지만 바이오시밀러(복제약) 사업이 유망할 것이라는 정보를 듣고 서 회장은 2000년 셀트리온의 전신인 넥솔을 설립했다.
자동차산업에서 고배를 마시고 전혀 새로운 영역에 도전장을 던져 대성공을 이룬 것이다.
서 회장이 AI와 빅데이터산업에서 성공을 거둘 경우, 60대 창업자 역사에 새로운 기록을 더할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