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재훈의 광고썰전 (2)] 아! 옛날이여
뉴그랜저 티저광고에 담긴 착시현상
[뉴스투데이=신재훈 칼럼니스트] 올해 초 오래된 흑백영화 같은 한편의 광고가 나의 눈길을 끌었다.
철도 길에서 한 무리의 아이들이 놀고 있다.
“이 다음에 성공하면 뭐할까?”라고 한 아이가 묻는다.
때마침 1993이라는 자막과 함께 철도 건널목으로 옛날 각 그랜저 한대가 지나간다.
그것을 보고 다른 아이가 답한다. “그랜저 사야지”
더 뉴그랜저의 티저 광고다.
후속 광고는 “2020 성공에 관하여” 라는 캠페인 테마 하에 각기 다른 사람들의 성공에 대한 생각들이 그려진다. 광고에서 묘사되는 성공은 대충 이런 것이다.
임원이 되어 회사차를 받는 것 / 회사를 떠나 자신만의 비즈니스를 시작하는 것 / 자가용을 타고 폼 나게 고향집에 내려가는 것 / 열심히 운동해서 실제 나이보다 젊어 보이는 것.
크게 성공한 사람들이 보기에는 성공이란 단어를 쓸 수 없는 하찮고 작은 성취에 불과하겠지만, 동시대를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 꿈꾸는 각자의 소박한 성공을 이야기 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소박한 성공조차도 물질적이고 외향적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지만, 성공의 의미가 개인에 따라 서로 다르게 해석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서 과거 획일화된 성공과는 많은 차이를 보여준다.
이는 마치 과거의 거창한 행복에서 “소확행” 이라는 개인의 일상과 개성이 반영된 소박한 행복의 개념이 생겨난 것과 같은 맥락이라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랜저 광고를 보고 있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왜일까? 그랜저와는 어울리지 않는, 한마디로 남의 옷을 빌려 입고 있는 듯한 느낌이랄까?
이는 광고 표현의 문제라기 보다는 과거 그랜저의 영광에 대한 광고주의 지나친 집착이 만들어낸 과욕의 결과인 것이다. 그랜저는 에쿠스가 나오기 전까지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최고급 승용차였다.
그랜저를 타는 사람들은 남 눈치 보느라 외제차를 탈 수 없는 고위 공직자, 정치인, 정부투자기관 및 기업체 대표, 의사 변호사 등 고소득 전문가 등 한 마디로 돈과 권세를 가진 사람들이었다. 따라서 그랜저를 타는 것은 그 시절 가장 확실한 성공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2020년 지금은 그때와 사정이 많이 다르다. 그랜저를 탄다고 성공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발에 차이는 게 고급 외제차고, 같은 회사에서도 그랜저보다 그레이드가 높은 차들이 나온다.
그 잘나가던 그랜저가 지금은 외제차에 치이고 같은 회사의 더 고급차에 치이는 애매한 포지션의 차가 된 것이다. 격세지감(隔世之感)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매출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문제라면 너무 잘 팔려서 문제다. 2017년 이후 3년간 판매 1위다. 올해도 이미 8월까지 10만대가 넘게 판매 되어 4년연속 판매 1위가 확실시 되고 있다.
부자가 타는 차에서 아저씨가 타는 차로 다시 젊은 오빠들이 타는 차로 이제는 엄마들이 타는 차가 되었다. 과거 소나타가 그랬던 것처럼 이제는 국민차가 된 것이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광고에서 굳이 현실과 맞지 않는 성공이란 단어를 주제로 하는 대신 실제로 그랜저를 타는,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고 열심히 살아가는 이 땅의 평범한 사람들을 대변하는 가치를 주제로 하는 것이 더 낫지 않았을까?
그랬다면 지금보다는 그랜저와 더 잘 어울리고, 더 많은 공감을 얻는 광고가 되지 않았을까?
광고에 대한 공감은 메이커의 의지를 관철하기 위한 일방적인 주장보다는 소비자의 보편적 인식을 바탕으로 광고적 Insight를 찾아낼 때 생겨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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