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신재훈 칼럼니스트] 하회탈을 닮은 온화한 이미지의 LG가 달라졌다.
금성사 시절부터 삼성과는 영원한 라이벌이었지만 요즘처럼 직접적으로 상대를 독하게 공격한 사례는 드물다. 과거만 해도 삼성과 LG는 광고에서만큼은 가급적 싸우는 모습을 자제해왔다.
거의 모든 제품간 경쟁을 벌이면서도 서로 한걸음 떨어져서 각자의 목소리를 냈다. 삼성이 1등을 얘기하면 LG는 사랑해요 라고 얘기하는 것처럼 말이다.
제품 광고에 있어서도 삼성전자가 기능, 성능을 위주로 이성적인 광고를 하면 LG전자는 “여자라서 행복해요” 같은 감성 광고를 했다.
그랬던 LG가 2020년 초 신제품 노트북 “그램 17”의 동영상광고를 유튜브에 내보냈다.
“그램으로 따라오세요”편에는 과거에는 보지 못했던 독한 카피가 등장한다. “이정도 안되면 노트든 북이든 접어야죠?”라는 카피가 그것이다.
갤럭시를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지만 노트와 북에서 연상되는 갤랙시노트와 갤럭시북을 겨냥했다는 것은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경쟁사를 도발함에 있어 신의 한 수는 “접다”라는 단어의 사용일 것이다. “접다”가 가진 의미를 경쟁사가 아파할 만큼 절묘하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접다”라는 단어는 “종이를 접다”와 같이 실제로 뭔가를 접는 것을 의미하지만, “사업을 접다”와 같이 그만두다, 때려치우다 의 의미로도 쓰인다. 또한 접다 는 영어의 “fold”로 출시 당시 낭패를 보았던 갤럭시 폴더의 악몽까지도 연상시킨다.
스마트폰에 대한 전략적 판단 미스로 인해 경쟁 기업이 글로벌 탑브랜드가 되는 동안 존재감마저 희미해진 LG가 생활가전에서 만큼은 절대 밀릴 수 없다는 절박함과 강한 의지를 보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물론 젊고 도전적인 3세 경영자가 인화단결로 대변되는 순둥이 LG를 독종으로 바꿨을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라이벌 간의 광고전쟁은 싸움 구경만큼이나 재미있다.
경쟁광고의 핵심인 포지셔닝은 소비자의 인식상 경쟁 브랜드에 비해 특정 브랜드가 차지하고 있는 위치를 강화 하거나 변화 시키는 전략이다.
그렇다면 이전의 광고전략과 포지셔닝 전략의 가장 중요한 차이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자신만을 생각하지 않고 경쟁사, 경쟁 브랜드 등의 경쟁관계까지도 고려한다는 점이다.
많은 경쟁광고를 보면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사람에게도 남들과의 경쟁이 필요할까?” 경쟁은 분명 자신의 발전을 위해, 더 큰 성과를 얻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남과의 경쟁, 특히 나보다 잘 난 남과의 경쟁은 나를 초라하게 만들고 의기소침하게 만들 어 삶의 의욕을 꺾을 수도 있다.
언제 어디서건, 어떤 분야에서건, 나보다 더 잘난 사람들이 차고도 넘치기 때문이다.
유홍준 선생이 나의 문화유산답사기에서 “인생도처 유상수”라고 말한 것처럼 말이다. 나보다 잘난 남들과의 비교나 경쟁은 스트레스의 원천으로서 하면 할수록 나만 피곤해 진다.
그렇다고 나보다 못한 사람들과 비교하며 위안 삼는 것은 오히려 자신을 더 초라하게 만들뿐이다. 경쟁을 초월하여 나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태도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굳이 경쟁을 해야만 한다면 더 어리석었던, 더 옹졸했던, 더 불행했던 과거의 나와 경쟁하는 것이 그나마 더 바람직한 경쟁일 것이다.
그런 이유 때문일까?
사실 시장을 주도하는 강력한 1등 브랜드는 2, 3 등과 결코 경쟁하지 않는다. 그냥 도도하게 자신의 길을 걸어간다. 그들에게 있어서 유일한 경쟁은 1등 이었던 과거의 자신을 뛰어넘는 것이다.
경쟁광고는 1등과 대등하게 싸우는 것처럼 보임으로써 서로 같은 급의 경쟁자라는 이미지를 만들고자 애쓰는 2, 3등 브랜드의 처절한 몸부림일 뿐이다.
(현)BMA 전략컨설팅 대표(Branding, Marketing, Advertising 전략 및 실행 종합컨설팅) / 현대자동차 마케팅 / LG애드 광고기획 국장 / ISMG코리아 광고 총괄 임원 / 블랙야크 CMO(마케팅 총괄 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