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동하지 않는 ‘GOP과학화경계시스템’ 전면 교체 필요하다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부터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편집자>
■ 북한 남성, 철책 상단 넘어 월남했지만 ‘광망 센서’ 작동 하지 않아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최근 북한 남성이 강원도 동부전선에서 우리 군의 철책을 넘어 월남했다. 이 남성이 통과한 철책 상단에 설치된 윤형철조망에서 눌린 흔적이 발견돼 철책을 위로 넘은 사실이 확인됐지만 해당 철책에 설치된 ‘GOP과학화경계시스템’의 광망 센서는 작동하지 않았다.
합동참모본부 관계자는 지난 4일 “3일 오후 7시25분께 아군 TOD로 미상인원이 GOP 철책을 넘어가는 것을 포착했지만 이후에 관측이 불가했다”면서 “철책을 넘을 당시 광망 센서는 울리지 않았다”고 말했다. 다음날 김준락 합참공보실장은 “어떤 원인에 의해 작동되지 않았는지, 기능상 문제가 있는지 전반적으로 살펴봐야 할 상황”이라며 합참 차원에서 점검해 조치하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이 사건으로 인해 그동안 간헐적으로 문제가 제기되다가 수면 하에 가라앉아 있던 ‘GOP과학화경계시스템’의 문제가 다시 부상했다. GOP과학화경계시스템 사업은 당초 2006년 시범사업을 거쳐 2015년까지 1731억원을 투자해 병력 위주의 GOP 경계체제를 편제장비와 과학화경계시스템 위주의 경계체제로 전환하기 위해 국내구매로 시스템을 확보하는 사업이었다.
하지만 2006년 5사단에서 실시된 시범사업부터 시험평가에서 ‘전투용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이후 보완계획을 마련하고 작전운용성능을 수정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다가 2011년 1차 사업이 시작됐다. 이 때 삼성에스원과 SK C&C가 구매시험평가에 참여했으나 2012년 10월 모두 ‘전투용 부적합’ 판정을 받았다.
■ 삼성에스원 및 SK텔레콤, 사업 수주해 ‘광망 감지 방식’으로 구축
이후 또 다시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은 결국 작전운용성능을 조정하여 2013년 이 사업을 다시 발주했다. 서부 및 중부전선의 GOP과학화경계시스템 사업은 삼성에스원이 수주하여 2015년까지 광망 감지 방식으로 구축됐다. 한편, 동부전선은 SK텔레콤이 2014년 수주하여 2016년까지 삼성에스원과는 조금 다른 광망 감지 방식으로 구축됐다.
이렇게 서부전선에서 동부전선에 이르기까지 GOP과학화경계시스템을 구축하는데 총 2427억원의 국가예산이 들어갔다. 그럼에도 이번 사건처럼 전혀 작동하지 않아 효과가 미미하다. 일각에서는 고장난 광망을 빨리 정비하지 않아 문제인 것처럼 말한다. 하지만 이 분야에 정통한 한 전문가는 “부분 정비는 거의 불가능하고 다른 방식으로 전면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GOP과학화경계시스템은 센서로 작동하는 감지시스템, CCTV를 이용하는 감시시스템 그리고 통제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감지시스템이 주 감시장치이고 감시시스템은 보조수단이다. 따라서 CCTV 운용상 문제도 일부 있지만 현행 과학화경계시스템이 실제 효과가 있으려면 감지시스템에 어떤 방식을 적용했느냐가 제일 중요하다.
삼성에스원이 적용한 광망 감지 방식은 한 가닥의 광케이블로 그물망을 만들어 철책을 덮는 형태다. 이 방식은 강풍과 혹한에 취약하고 동물들에 의해 훼손되는 등 설치 후 2년 정도 지나면 대부분 손상돼 기능이 발휘되지 않는다고 한다. 게다가 철책 상단을 넘거나 하단을 들추고 들어오면 경보가 울리지 않는다. 또 그물코에 달린 클립을 제거하고 통과할 수도 있다.
■ 광망 감지, 문제 많고 부분 정비 애로…‘장력 감지 방식’으로 교체해야
SK텔레콤은 클립을 제거해 통과하는 것을 막으려고 광케이블을 중간에 꼬아 매듭을 만드는 조금 다른 광망 감지 방식을 썼다. 하지만 이 때문에 삼성에스원보다 굵기가 가는 광케이블을 사용해 강풍과 혹한에 더 취약해졌으며, 경보가 울리지 않는 상황은 삼성에스원과 동일하다. 따라서 이번에 북한 남성이 철책 상단을 넘어오는데도 전혀 작동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 이 분야에 정통한 한 소식통은 “광망 감지 방식이 갖고 있는 문제를 보완하기 위해 나온 장력 감지 방식으로 교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방식은 철책에 지지대를 세우고 가로로 장력선을 설치하는 형태다. 장력선은 광망보다 훨씬 튼튼해 강풍이나 혹한에 잘 견디고 동물에 의한 훼손도 별로 없다. 즉 외부에서 일정함 힘을 가해 끊거나 벌어져야만 경보가 울려 오경보가 거의 없다.
그동안 장력 감지 방식은 당겨지는 힘 때문에 산악 지형에는 적합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최근에 나온 장력기술은 이 문제를 해결했다. 이 방식의 제품은 주로 영국, 이스라엘, 캐나다 등지에서 생산되나 국내에도 이에 못지않은 기술을 가진 회사들이 있다고 전해진다. 방사청과 육군의 실무자들도 이 사실을 알고 있지만 기존 방식을 바꿀 경우 오해를 살 수 있어 아무도 얘기를 꺼내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동안 일부 국회의원들은 사건이 발생하거나 국정감사 때 간헐적으로 GOP과학화경계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해왔지만 아직까지 개선되지 않았다. 국민의 힘 이채익 의원에 따르면, 2015년 9월부터 2020년 8월까지 이 시스템의 작동 오류 및 고장은 2749건이며, 이 중 동물과 강풍에 의한 것이 77.3%로 나타났다. 특히 광망 절단과 오경보 문제가 심각했고 정비가 원활하지 않은 문제가 부각됐다.
■ 후방부대 설치한 시스템도 작동 멈춰…전면 실사해 문제 제대로 밝혀내야
이와 같이 전방지역은 물론 후방지역에 있는 미사일 기지, 보급창, 공군기지의 울타리 경계를 위해 설치된 시스템도 대부분 기능이 발휘되지 않는 실정이라고 한다. 일부 부대는 오경보가 심해 아예 시스템을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런 상황인데도 청와대는 최근 북악산 북측면을 개방하면서 과학화경계시스템으로 기존의 광망 감지 방식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합참이 전비태세검열단을 보내 사건 현장의 GOP과학화경계시스템 문제를 진단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 의존하면 근본 원인과 해결책이 간과될 수 있다. 지금이라도 국방부와 방사청은 전·후방 지역에 구축된 과학화경계시스템의 전면적인 실사를 통해 문제를 대대적으로 짚어보고 실질적인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한때 이 사업을 담당했던 관계자들도 더 이상 오해를 살까 두려워하지 말고 제 목소리를 내야 한다. 국회의원들은 군의 답변만 듣지 말고 실제 과학화경계시스템이 구축된 전·후방 부대들을 방문해 현장에서 확인하고 관련 전문가들의 얘기도 직접 청취해야 한다. 이런 노력이 수반되지 않는다면 이 문제는 또 다시 생색만 내다가 이전처럼 관심에서 멀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