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리뷰:구직자들] '진짜인간'과 '인공인간'이 갈등한다고? 그들은 모두 소외된 존재

염보연 기자 입력 : 2020.11.19 18:37 ㅣ 수정 : 2020.11.21 16:48

버려진 인공인간과 아들을 사랑하는 진짜 인간 간의 소통 방식 형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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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구직자들 포스터
 
[뉴스투데이=염보연 기자] 독립영화 ‘구직자들(감독 황승재)’을 관람했다. 독립영화를 상영관에서 보는 건 처음이어서 설레는 마음으로 상영관을 찾았다. 관람 전 살펴본 줄거리 소개는 대략 이러했다.

 

인간들은 인구 감소로 도시가 사라져가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공 인간’을 만들었다. 하지만 그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면서 ‘진짜 인간(원본)’들의 일자리가 점점 줄어든다. 아픈 아이의 비싼 병원비를 감당해야 하는 진짜 인간(정경호)은 원본에게 버려진 젊은 인공 인간(강유석)을 우연히 만나게 되고, 함께 일자리를 찾아 나선다.
 
줄거리를 보니 ‘진짜 인간’과 ‘인공 인간’ 사이에서 벌어지는 일자리 쟁탈전이 주내용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실제 내용은 달랐다. 진짜 인간과 인공 인간이 공통적으로 겪는 소외와 고독의, 그리고 일자리 부족의 문제를 다루고 있었다.

■ ‘진짜 인간’과 1+1으로 태어난 ‘인공’의 일자리 찾기/신분은 다르지만 동일한 '사회적 소외'에 처해

영화는 200년 후의 미래를 그리지만, 인구 감소로 쇠락하던 도시를 과거의 모습으로 복구했다는 설정이기 때문에 거리의 풍경이 오늘날과 똑같다. 딱 한 가지 추가된 SF적인 요소는 ‘인공인간’이라는 존재뿐이다.

 
인공인간은 인구 감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 정책으로 사람 한 명당 ‘1+1’으로 만들어진 추가분이지만, 원본에게 버려지면 생체실험용으로 쓰이고 폐기될 정도로 기본적인 인권도 없다. 그들은 도시를 되살리는데 기여했지만 ‘진짜 인간’의 일자리를 위협한다는 이유로 원망을 사고 있다.
 
주인공은 사회의 변두리에 몰린 중년의 ‘진짜 인간’이다. 그는 한때 IT 회사에 근무하며 결혼도 하고 아이도 가졌지만, 세상의 급격한 변화와 함께 안정된 자리를 잃고 안 해본 일 없이 고된 일자리를 전전했다. 그런 힘든 삶을 견디게 해주는 것은 사랑하는 아들이다. 그는 희귀병에 걸린 아들의 병원비와 약값에 버는 돈을 모두 쏟아부으면서 막막한 삶을 살고 있다.

동행자인 ‘인공’은 원본에게 버려진 ‘인공 인간’이다. 보호단체 덕분에 생체실험용으로 쓰일 위기에서 벗어나 시설에서 보호받을 수 있었다. 먼저 세상에 나간 친구에게 “인간들이 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이 참 좋은 거라더라“라는 말을 듣고 사회로 나왔다. 자신이 잘하는 게 무엇인지,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도 모르지만 순수하고 긍정적이다. 평범하게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가지고 행복하게 사는 것이 꿈이지만, 주인공에게 “요즘은 진짜 인간도 그렇게 못 산다”라는 핀잔을 듣는다.

 
우연히 마주친 그들은 함께 일자리를 찾아 떠돈다. 하지만 가는 곳마다 불황에 신음하고 있어 변변한 일자리를 찾지 못한다.
 
진짜 인간의 필요에 의해 만들어졌지만 버려진 인공인간과 경제적 하층계급인 진짜 인간이 동일하게 겪게 되는 사회적 문제점을 고발하는 것이다. 일자리 부족과 이로 인한 사회적 소외가 그것이다.
 
영화는 또 다른 의문을 제기한다. 이미 사랑하는 존재를 가진 진짜인간 주인공이 ‘인공’보다 더 불행하고 희망도 가지지 못하고 있다. ‘인공’이 이 점을 지적하면서 둘은 갈등을 겪기도 한다.

■ 사람의 쓸모란 무엇일까? 사람은 왜 사는 걸까?/질문을 던지지만 해답은 제시 안해/이야기를 들어주는 존재의 가치 암시

대량생산된 부품의 잉여분처럼 세상을 떠돌아다니는 구직자들이 넘쳐나는 시대다. 막연히 ‘미래에는 더 나아지겠지’ 생각하지만, 영화 속에서는 암울하게도 200년이 지나서까지 사람들이 똑같은 괴로움 속에 살고 있다.

 
도시를 배회하는 두 인물의 여정 중간마다 일반인 인터뷰 영상이 흘러나온다. 황승재 감독은 영화를 위해 일반인 100명을 인터뷰했다고 밝혔다. 영화는 러닝타임이 지나면서 일자리, 사랑, 인생, 죽음 등 다양한 주제를 언급하고, 영화 속 인물들이 앞서 대화한 내용을 토대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인터뷰 대상은 영화 제목처럼 구직자도 있고, 경쟁에 밀려 일감을 찾지 못하는 고용주도 있고, 학생부터 노인까지 다양하다. 어디를 봐도 지금 시대를 사는 일반인들이지만, 어차피 200년 뒤에도 비슷한 세상이기 때문에 미래인을 구분할 필요는 없다.

살아남기 위해 끊임없이 자신의 쓸모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에 살아가는 그들은 각자 입장에서 인간의 가치에 대해 말한다.

누군가는 고용주의 기준으로 사람의 쓸모를 평가하는 현실을 비판하고, 누군가는 사람들이 자신의 가치를 과대평가하는 것이 문제라고 말한다.

영화는 누가 맞는지 답을 내려주지는 않는다. 그저 여러 사람의 입을 빌려 관객 스스로 다양한 생각을 해보게 한다.

일자리가 사라진 이유가 과연 인공인간 탓일까? 인공인간은 버려지면 생체실험 재료로 쓰일 만큼 기본적인 인권도 없다. 주체적으로 빼앗을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책임이 있는 대상은 애초에 인공인간을 과잉생산한 주체들일 것이다. 부품을 넘쳐나게 만들어 각자를 싼값으로 떨어뜨리고, 남은 잉여분의 삶을 책임지지 않았다.

거리에 늘어선 건물들은 까마득히 높고 커다랗다. 그에 비하면 도시를 떠도는 주인공과 인공은 개미처럼 작게 보이고, 암담한 현실을 스스로 바꾸기는 불가능해 보인다.

사실 사람들의 욕망은 순수하다. 그들은 단지 사랑하고 행복하고 평범하게 살고 싶다. 분명 그러했는데, 세상의 구조가 그 욕망을 덫으로 만들어버린다.

‘미래를 향한 희망’, ‘사랑’, ‘꿈’ 등은 힘겨운 오늘을 버티게 하는 힘이지만, 동시에 삶을 소모하게 하는 허상일 수도 있다.

영화는 결말부까지 이런 팍팍한 상황에서 등장인물들이 벗어날 방법을 직접 알려주지는 않는다. 다만 누군가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지켜봐 주는 존재가 있다는 것만으로 조금은 따뜻해질 수 있다는 암시를 준다. 그것이 이 영화가 만들어진 이유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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