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원된 다목적 무인차량 사업 ‘가위바위보’ 낙찰에 감춰진 진실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부터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방사청, 법규상 전자추첨 방식의 ‘가위바위보’ 낙찰자 선정 가능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최근 모 언론매체가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이 첨단 무인군용차 사업 낙찰자를 ‘가위바위보’로 정했다고 보도하자, 대부분 황당하다는 반응과 함께 수천억원 규모의 전력화 사업 수주로 이어질 수 있는 이번 사업을 주먹구구로 정한 것 아니냐는 논란이 제기됐다.
이에 방사청은 25일 입장자료를 통해 “다목적 무인차량 사업의 입찰 참여업체를 면밀히 평가했고, 관련 규정에 따라 투명하게 최종 낙찰자를 선정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신속시범획득 사업은 첨단 장비의 군 활용성을 평가하기 위해 소량을 획득하는 사업으로 군의 소요제기로 추진되는 사업과는 별개”라고 덧붙였다.
방사청은 지난 10월 19일 신속시범획득 2차 사업으로 선정된 12개 과제의 입찰공고를 통해 사업수행 업체를 모집했다. 군에서 요구하는 성능 기준만 만족하면 최저가로 입찰한 업체를 낙찰자로 선정하는데, 12개 과제 중 하나인 ‘다목적 무인차량’ 입찰에 현대로템과 한화디펜스가 참여했다. 그런데 평가팀이 검토한 결과, 양사 제품이 성능 기준을 만족한데다 가격도 모두 0원을 적어냈다.
결국 성능과 가격이 동일한 두 업체는 ‘국가계약법 시행령(제47조)’와 ‘국방전자조달시스템 전자입찰 유의서(제18조)’에 따라 전자추첨 방식의 ‘가위바위보’로 낙찰자 선정 절차를 밟게 됐고, 현대로템이 이겨서 최종 낙찰자가 됐다. 업계에서는 이번 사업에 선정되면 수천억원 규모에 달하는 추후 전력화 사업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신속시범획득 사업 포함이 문제…전력화 사업 영향 없는지 의문
하지만 방사청은 이번 신속시범획득 사업은 다목적 무인차량 2대만 도입해 시범 운용해 보는 것이어서 예산은 38여억원에 불과하며, 전력화 사업은 별도의 경쟁 입찰을 통해 다시 업체를 선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또 탈락한 업체가 민군협력 개발에 참여한 사실은 있지만, 민간 기술발전 속도가 빨라 신속시범획득 과제로 선정됐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일각에서는 민군협력 과제로 선행 개발이 이루어진 상태로 중장기 개발 로드맵까지 나온 제품을 신속시범획득 사업에 포함한 것이 더 큰 문제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군에서 이미 필요성이 인정돼 개발을 진행했던 제품에 대해 다시 국가 예산으로 시범 운용을 통해 필요성을 확인하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방사청은 전력화 사업이 이번 사업과는 별개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군의 소요제기를 반영하여 최신기술을 접목, 개발해야 함에도 마치 이를 분리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 양 주장하는 건 잘못”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군이 신속획득법령(OTA) 개정과 신속획득절차(MTA) 마련 등을 통해 필요한 무기를 신속히 개발해 전력화하는 것과는 전혀 맞지 않는 취지”라고 지적했다.
방사청 주장처럼 전력화와 별개라서 정말 영향이 없다면 왜 업체들이 0원이란 터무니없는 가격을 적어내면서 낙찰자로 선정되려했는지 의문이다. 이에 대해 장 박사는 “업체들이 제시한 신기술 아이디어를 채택한 후 사업을 선정하는 2단계 경쟁 입찰이 문제”라며 “처음부터 군의 소요를 기초로 방사청이 업체에게 공지하고 제안서를 받았더라면 ‘0원 입찰’은 없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 두 업체에 시범 운용 기회 줘야…법규상 공동·분담이행 방식 가능
그런데 정말 낙찰자에게 1원도 주지 않고 제품을 납품 받아 시범 운용해도 되는 걸까? 이에 대해 국가계약법은 입찰금액이 0원이어도 입찰무효 사유에 해당하지 않으며 무상계약이 인정된다고 한다. 그렇다면 이 사업은 비용도 들어가지 않으니 두 업체에게 모두 시범 운용의 기회를 주는 것이 신속시범획득의 취지에 부합해 보인다.
그것이 방위산업 육성 측면에서도 의미가 있고, 제안서 평가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부분이 시범 운용 간 나타날 수 있어 전력화 사업 경쟁 시 더 좋은 제품이 나오도록 유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동일한 조건의 두 업체에 기회를 같이 주는 것이 법규상 합당한지 검토해야 한다. 국방계약 전문가인 최기일 상지대 교수는 “공동이행 또는 분담이행 방식으로 가능하다”고 말한다.
또한 방사청이 ‘가위바위보’를 통해 낙찰자를 선정한 것이 현 법령상 문제가 없더라도 신속시범획득사업 도입 취지를 무색케 한다는 일부의 주장도 설득력을 얻고 있다. ‘0원 입찰’ 업체들이 고작 차량 2대를 군에서 시범 활용한 경험이 필요하지는 않으며, 그들이 진짜 필요한 것은 ‘실적’이다. 향후 전력화 사업 경쟁 시 제안서 평가에 매우 중요한 요소이기 때문이다.
■ 향후 ‘0원 입찰’ 막으려면 ‘경쟁적 대화에 의한 계약’ 적용 검토해야
즉 신속시범획득이란 새로운 제도가 도입됐으면 입찰 및 계약 방법도 이에 적합한 방식을 고려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제도가 달라져도 기존 계약 방식을 그대로 적용함으로써 업체들은 사업 수주에 필요한 ‘실적’을 쌓기 위해 과도한 출혈 경쟁에 내몰릴 수밖에 없고, 급기야 ‘0원 입찰’ 상황이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와 관련, 최기일 교수는 “지난 2018년 12월 국가계약법 시행령 제43조에 마련된 ‘경쟁적 대화에 의한 계약 체결’이 해법”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 계약은 시장에 존재하지 않는 혁신적 제품의 개발과 구매를 위해 최적의 제안업체를 낙찰자로 선정하는 방식으로 입찰가격보다 제안기술에 중점을 둬 첨단 무기체계와 관련된 방위사업에 적합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경쟁적 대화에 의한 계약은 사업 제안서를 제출한 업체 중 탈락한 업체에 대해서도 제안서 작성 비용 등 제반비용의 일정 부분을 15/1000 범위 내에서 균분하여 보상해주기 때문에 매우 합리적인 계약 방식이다”라고 설명했다.
방사청은 더 이상 현행 법령과 제도 뒤에 숨어 ‘가위바위보’ 낙찰에 감춰진 진실을 외면해선 안 된다. 이제라도 앞서 제기된 전문가들의 주장과 해법을 고려하면서 신속시범획득 사업의 근본 취지를 잘 살펴 가장 바람직한 대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앞으로도 ‘0원 입찰’ 사례가 계속 발생할 것이며, 이럴 때마다 방위산업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허물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