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이 지목한 고소득층의 '대출절벽 시대' 대응전략, 저성장 경제위기 조짐?
[뉴스투데이=이채원 기자] 올해 가계저축률이 10%를 상회할 것으로 예상되는 것과 관련해 한국은행이 흥미로운 분석을 제기, 눈길을 끈다. 한국은행이 지난 달 29일 발표한 ‘코로나19 위기에 따른 가계저축률 상승 고착화 가능성’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국내 가계저축률이 10%를 넘을 가능성이 높다. 매년 6월마다 발표되는 가계저축률이 실제로 10%를 넘어서면 이는 지난해(6.0%)보다 4%포인트 높아진 수치로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13.2%) 이후 처음보이는 두자릿수다.
이 같은 현상에 대해 한국은행은 두 가지 분석을 내놓았다. 첫째,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의해 소비가 위축된 결과라는 설명이다. 둘째, 고소득층이 '대출절벽 시대'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저축을 늘리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중 첫째 원인은 상식적이다. 둘째 원인이 흥미로운 대목이다.
한국은행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부동산 시장 안정을 위해 은행대출을 조이자 고소득층이 미래를 위해 자본축적을 하는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 결과 가계저축률이 이례적으로 급등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한국은행은 이러한 상황이 계속되면 저성장·저물가·저금리 현상이 심화 된다는 우려를 제기했다. 일반적으로 가계저축률이 늘어나면 저축이 투자수요 및 소비보다 늘어나고 저성장·저물가·저금리 현상이 심화 된다. 이는 주로 소비가 감소하는 경제위기에 찾아오는 현상이라는 게 한국은행의 진단이다.
■ 한은 관계자, "경기 악화 속 가계저축률 증가는 주로 고소득층에서 발생"
즉 보고서는 " ‘금융기관으로부터의 대출이 제약될 경우 가계의 부채축소 및 미래 소비여력 확보를 위한 저축이 증가할 수 있다"고 밝히고 욌다.
한은은 가계저축률 증가에 대해 코로나19에 따라 대출 및 소비가 줄면서 자금이 저축으로 향한 것이라고 진단했다. 또한 경기부진으로 미래 예상 소득이 감소하고 신용제약이 증대되면서 불안감에 가계의 저축 성향이 높아진다고 밝혔다.
하지만 저신용자들은 당장의 생계가 어려운데 자금을 저축으로 돌릴 여유가 없다. 고신용자들이 대출규제를 의식, 여유자금을 저축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성립된다.
이와 관련 한은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경기악화 속 가계저축률 증가는 주로 고소득층에서 이뤄지는 현상이 맞다”며 “대출의 규제가 계속 시행되면 어디에 쓰기보다 여유자금을 모아두려는 현상이 나타나고 가계저축률 증가로 이어지며 앞으로 이러한 사태가 장기화 된다면 저성장·저물가·저금리 현상이 심화될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 5만원권 환수율 하락도 가계저축률 상승과 동반돼 / 은행권, ‘예금증가가 호재만은 아냐, 대출규제로 은행의 밥줄 막혀’
한은이 지난 30일 밝힌 ‘코로나19 이후 5만원권 환수율 평가 및 시사점’에서 5만원권의 환수율이 빠른 속도로 하락하고 있다고 지적한 것도 가계저축률 상승과 관련된 현상이다.
올해 1월부터 10월까지의 5만원권 발행액은 21조9000억원으로 이중 환수액은 5조6000억원으로 나타났다. 25.4%에 불과한 수치로 전년동기 대비 39.4%포인트가 낮다. 또 이번 환수율은 5만원권을 처음 발행한 2009년 6월 이후 가장 낮다.
고소득층이 저축을 늘릴 뿐만 아니라 집에 고액권을 쌓아놓은 '화폐퇴장' 현상도 심화되고 있는 셈이다.
가계저축률 증가는 기본적으로 은행권에게는 호재다. 은행에 자금이 쌓이면 은행의 사업자산이 늘어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부작용도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은행도 이 돈을 가지고 굴려야하는 사업이니까 예금이 증가한다고 해서 항상 좋은 것만도 아니고 예금과 대출의 비율을 정하는 예대율이 있으니까 상황마다 다르다”며 “특히 요즘에는 고소득자 대출규제로 신용도나 수익성이 좋은 고객들을 끊어내야 해서 은행 입장에서도 밥줄이 끊기는 현상이다”고 말했다. 대출규제가 심해지면 고소득층 저축이 늘어나도 은행의 대출이자 수익은 줄어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