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0.12.28 10:24 ㅣ 수정 : 2020.12.28 10:45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이 발의한 ‘방위사업법 개정법률안’ 시장이 원하는 방향으로 조정돼야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지난해부터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방위산업진흥회와 국회 국방위, 서로 다른 방향 바라보며 입법 추진
[뉴스투데이=정원 변호사/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최근 방위산업진흥회를 중심으로 방산업체들의 염원을 담은 방위산업 계약에 관한 법률 제정이 추진되고 있다. 이 법은 방위산업의 특수성을 반영하여 일반계약에 비해 규제와 처벌을 완화하는 계약 방식을 별도로 구축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다. 그러나 방위산업을 보호 육성할 목적으로 추진되는 이런 노력과는 다른 움직임이 국회에서 진행 중이다.
지난 9월 14일 민홍철 국회 국방위원장이 대표 발의한 방위사업법 개정법률안이 국회 국방위 법률안심사소위에 상정돼 있다. 이 개정안은 의원 입법의 형식을 빌린 사실상 정부 입법안이란 점에서 국회 심의를 통과해 공포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방산비리행위 금지와 관련된 규제와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내용이 핵심이어서 정부와 시장이 정반대의 방향을 바라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개정안에는 과거 18, 19대 국회에서 별도 법률안(18대 국회 ‘방위사업에서의 원가부정행위 방지 등에 관한 법률안’, 19대 국회 ‘방위사업 원가관리 공정화에 관한 법률안’)으로 상정됐다가 폐기된 방위사업 원가공개 의무 및 처벌 강화 관련 내용과 함께 방위사업중개업의 등록제한과 취소를 강화하고 퇴직공무원의 취업 이력을 15년 동안 관리하는 내용 등이 포함돼 있다.
따라서 이 개정안이 방위사업 현실에 부합하면서 방위산업의 국내외 경쟁력을 강화하는데 도움이 되는 내용을 담고 있는지에 대해선 의문이 많다. 기본적으로 이 개정안은 방위사업이 불법과 비리가 판치는 적폐의 온상이고, 퇴직공무원과 방위사업중개업체 및 방산업체는 비용을 부풀리고 품질을 속이는 비리의 공범이란 인식을 토대로 마련된 것처럼 보인다.
■ 업체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계속 개정되는 ‘계약특수조건’이 문제
그러나 정작 방위사업이 처한 현실은 2014년 세월호 사건 이후 정부가 방위사업을 정치적 희생양 삼아 국면 전환을 시도함에 따라 지난 6년 동안 지속돼온 ‘방산비리 프레임’의 영향으로 심각할 정도로 위축돼 있다. 뿐만 아니라 적기 전력화와 다양한 연구개발 및 국산화를 통해 자주국방에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야 하는 방위사업청의 위상도 예전과 달리 많이 변질됐다.
최근 수년 간 방위사업청은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무기체계 연구개발, 원가검증, 품질보증 등과 관련한 절차와 기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근거 없는 감사 지적이나 비리 의혹이라도 제기되면 관련한 모든 책임과 비용 부담을 계약업체에게 일방적으로 전가하는 방향으로 업무를 처리해 오고 있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계약특수조건’이 업체에 일방적으로 불리하게 계속 개정되고 있는 점이다.
이로 인해 구조적·환경적 요인에 기인하거나 공공발주기관 영역의 명백한 잘못이 있었던 부분까지 모두 계약업체의 책임으로 돌려 각종 행정제재와 계약상 불이익을 부과한 사례는 부지기수이다. 이런 상황임에도 여전히 방위사업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토대로 규제와 처벌을 대폭 강화하는 법 개정이 이루어진다면 국내 방위산업은 더 이상 설 자리가 없게 될 것이다.
따라서 민홍철 국방위원장이 9월 14일 대표 발의한 방위사업법 개정법률안은 비리에 대한 처벌 강화에 초점을 둘 것이 아니라 부실과 비리가 발생하지 않도록 구조적이고 환경적인 제도 개선방안을 마련하고 이에 맞춰 관련 절차와 기준을 분명하게 정비하는 방향으로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이 개정안의 문제점을 하나씩 살펴보고자 한다.
■ 비리행위 먼저 명기하는 법률 없어…방산업체 지정취소 남용 위험도
개정안 제3조에는 방위사업비리행위라는 용어를 사용하면서 관련 행위를 대대적으로 나열하고 있다. 방위사업비리행위라는 용어를 법률에 직접 명기하는 것은 방위사업이 비리사업임을 확정하는 것이다. 이처럼 비리행위부터 먼저 명기하고 시작하는 법률은 유례를 찾아보기 어렵다. 굳이 비리행위 관련 규정을 별도로 만들려면 금지행위 같은 제목 하에 ‘아래와 같은 행위를 하여서는 아니된다’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해외는 물론 국내 중개 및 대리 행위까지 포함하는 방위사업중개업에 대한 등록과 취소를 강화하는 내용 역시 해당 규제 수위를 최소화할 필요가 있다. 영업의 자유에 대한 침해 소지가 있을 뿐만 아니라 방위사업중개업의 긍정적 효과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방산비리행위에 대한 처벌과 제재를 강화하고 방산업체 지정취소 사유를 대폭 확대하는 내용도 신중한 검토와 재고가 필요하다. 현행 처벌과 제재도 이미 과다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행위 책임에 비례하는 최소한의 내용으로 통제돼야 한다. 특히 방산업체 지정취소는 주요 방산물자의 생산 차질과 직결돼 있어 남용되어선 안 되며, 방산물자 및 업체 지정 제도에 대한 근본적 개선이 검토될 필요가 있다.
게다가 방위사업 수행의 투명성 확보라는 애매한 근거로 퇴직공무원의 취업 이력을 15년간 관리하는 개정안 6조 또한 부정적이다. 이는 기본적으로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문제가 있을뿐더러 취업 이력의 수집 및 활용 여하에 따라 직업 선택의 자유 등 위헌 시비를 낳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 협력업체 원가자료 제출 실효성 의문…시장이 원하는 제도 나와야
개정안 제46조에는 특히 계약업체, 수급업체(재하수급업체 포함)까지 원가계산에 관한 자료 제출 의무를 규정하고 있다. 방위사업청 계약특수조건을 통해 사실상 시행되고 있는 내용의 법적 근거를 확보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개별 기업의 영업 자료를 침해할뿐더러 정부와 계약관계를 형성하지 않는 협력업체에 대한 자료 제출의 실효성에 의문이 있다. 현재 실무상 원가계산 자료 제출에 따른 책임과 부담은 계약업체에 집중되고 있다.
협력업체와 가격협상을 통해 확정계약으로 하도급 계약을 체결했음에도 해당 협력업체를 둘러싼 크고 작은 논란이 발생하게 되면 방위사업청은 해당 협력업체에 대한 원가검증을 진행하고 필연적으로 원가부정에 따른 부당이득금 및 가산금이 존재한다는 결과를 도출해낸다. 이를 통해 계약업체인 체계업체는 1년 혹은 2년의 입찰참가자격 제한처분은 물론 방산업체 지정취소, 방산원가 산정 시 이윤율 삭감 등 엄청난 불이익을 부담하게 된다.
방위사업청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고 방산원가 이윤율 삭감 등과 관련된 규정을 개정하는 한편 지난 연말 방산하도급 표준계약서 제정 과정에서 향후 협력업체와 체결한 확정계약은 원가산정 대상으로 삼지 않겠다고 분명히 밝혔다. 하지만 지금도 확정계약에 대한 원가검증은 계속되고 있다. 원가부정에 대한 선례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방위사업청 원가 업무 담당자들 중 누구도 먼저 ‘이건 아니다’란 판단과 결정을 내리지 않기 때문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방산비리 프레임이 계속 유지되는 한 대한민국의 자주국방은 구호에 불과하다는 사실이다.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미래 세대의 안녕과 번영을 담보하려면 국가안보가 튼튼해야 한다. 이를 위해선 이제라도 정부가 시장의 상황을 잘 살펴서 시장이 절실히 바라는 방위사업 정책과 제도 개선에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