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는 총수부재인데 국가지원받는 TSMC는 올해 초대형 투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8일 국정농단 파기환송심에서 징역 2년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사법부의 결정에 대해 '한국경제 타격론'이 거세지고 있지만 '정의로운 판결'이라는 평가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미국과 중국의 글로벌 공룡기업들이 강력한 경쟁자인 삼성의 충격으로 '반사이익'을 얻게 됐다는 점이다. 한국사회는 이재용 구속이 누구를 위한 정의인가라는 '실용주의적 질문'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보영 기자]삼성전자는 메모리 반도체 부문에서 압도적 글로벌 1위이다. D램과 낸드플래시 부문에서는 따라올 기업이 없다. 하지만 경기에 따라 부침이 심하고 수익성도 떨어진다. 시스템 반도체야말로 수익성과 안정성을 겸비한 선진국형 반도체 산업이다.
삼성전자 이재용 부회장은 이 같은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불모지였던 시스템 반도체 분야, 특히 파운드리(위탁생산) 산업에 대한 대대적인 투자를 주도해왔다. 이 부회장이 2018년 2월 고법의 집행유예판결로 석방된 뒤 집중적인 투자가 이뤄졌다. 그 결과 최단기간에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글로벌 1위인 대만기업 TSMC를 추격하는 2위 기업으로 부상했다.
이재용의 구속은 이 같은 혁신성장 드라이브에 상당히 제동이 걸렸음을 의미한다. 이 부회장은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수립, 2030년까지 총 133조원의 투자로 ‘초격차’를 만들고자 했다. 133조원 중 연구개발(R&D) 분야에 투자되는 금액은 73조원, 생산 인프라(파운드리 설비)에는 60조원이 투입된다. 업계에 따르면 연구개발에 투자되는 73조원에서 약 40조원이 파운드리 R&D에 투자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이 파운드리 사업부문에만 100조원 규모의 투자를 단행하는 것이다.
그동안 거둔 파운드리 사업부문 경영 성과 및 반도체 슈퍼사이클에도 불구하고 삼성전자는 비상경영체제 속 보수적인 전략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됐다. 삼성의 총수 부재로 TSMC의 독주체제가 견제받기보다는 심화되는 구도가 형성됐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이는 TSMC가 만세를 부르는 이유이다.
■ 삼성전자는 총수구속 vs. 대만정부와 미국금융자본이 손잡고 키우는 TSMC는 '미소'
글로벌 반도체 시장의 약 70%를 차지하고 있는 시스템 반도체 중 파운드리(위탁생산) 부문은 삼성전자가 가장 주력하는 사업이다.
이 부문에서 세계 1위는 대만의 TSMC로, 시장 조사업체 트렌드 포스에 따르면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매출)은 지난해 4분기 기준 TSMC가 55.6%를 차지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16.4%에 불과하다. 격차가 큰 2위다. 그러나 삼성전자의 성장세를 보면 말이 달라진다.
TSMC가 1987년 파운드리 생산을 시작으로 35년의 업력을 갖고있는 것과 달리 삼성전자는 이보다 약 20년정도 후인 2005년에 처음 사업을 시작했다. 2010년만 해도 삼성전자는 파운드리 부문 세계 10위, 점유율 1.4%에 불과했으나 2016년 단숨에 4위로 올라섰다. 이후 2017년 시스템직접회로(LSI) 사업부 내 파운드리 팀을 별도 사업부로 승격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키워간 삼성은 2년만인 2019년 세계 2위로 치고 올라왔다.
세계 1위 파운드리 기업인 TSMC는 대만 정부 및 미국 금융자본이 손을 맞잡고 키우고 있는 기업이다. 대만 행정원 국가발전기금이 TSMC 지분 6.68%를 소유하고 있고 미국 씨티은행도 약 20.6% 지분으로 최대주주에 올라있으며 이러한 자본력과 네트워크로 애플,인텔 등 글로벌 기업을 고객사로 두고 있다.
■ 100조투자 계획 짰던 삼성전자는 시계제로 vs. TSMC올해 30조 신규투자, 지난해 2배
게다가 지난 14일 4분기 실적발표에서 TSMC는 올해 설비투자로 한화 약 30조원에 달하는 금액을 투입할 것이라고 밝히며 1위 굳히기에 나선 모습이다. 월스트리트저널(WSJ) 등 14일 외신 보도에 따르면 "TSMC 올해 설비에 투자하는 금액은250억달러∼280억달러 (한화 약 27조∼31조)로 지난해 172억달러(한화 약 19조원)에 두 배에 가까운 금액"이라며 "그들이 삼성전자를 따돌리고 업계 1위를 굳히려는 움직임으로 보인다"고 보도했다.
TSMC가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는 반면 삼성전자는 이 부회장의 부재로 투자에 소극적일 수 밖에 없는 실정이다. 삼성전자의 올해 비메모리 시설 투자 금액은 12조원으로 지난해보다 2배정도 증가한 금액이지만 TSMC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더욱이 10나노 미만의 미세공정이 가능한 업체는 삼성전자와 TSMC가 유일해, 삼성전자가 경영리스크로 주춤한 사이 격차는 더 벌어질 수도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2030년까지 100조를 투자한다는 청사진도 계획대로 실천될지 불투명해졌다.
■ 파운드리 현장경영 집중해왔던 이재용은 감옥에 / "반도체 슈퍼싸이클인데 이 부회장의 발빠른 대응 불가능해져" / TSMC와 삼성전자 격차 커질 듯
삼성전자가 비상경영 체제에 돌입했다고 하지만, 차세대 반도체 생산장비 EUV(극자외선) 기기가 1대당 1500억~2000억원인데다 조단위의 투자가 진행되다 보니 이 부회장의 결단력은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이에 따라 이재용 부회장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 (코로나19)의 세계적 대유행과 사법리스크로 불확실성이 가중되는 상황에서도 시스템 반도체 비전 2030을 실현시키고 '초격차' 확보를 위해 적극적인 경영 행보를 보여왔다. 지난해 10월 네덜란드 EUV 장비 제조 기업 ASML 본사를 직접 방문해 EUV 장비 공급 확대 협력 방안을 논의하고 장비 계약을 체결한 일화도 유명하다.
그러나 18일 실형 선고로 인해 이 부회장의 옥중경영이 현실화 된 만큼, 업계관계자들은 TSMC와의 격차 좁히기는 물론 파운드리 반도체 시장에서의 시장선점 경쟁에서도 밀리는 것이 아니냐는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19일 통화에서 “슈퍼사이클로 수요가 공급을 넘어서는 상황까지 직면한 가운데 투자설비 확보부터 대형 M&A까지 이 부회장의 발빠른 경영대처 및 신사업 추진이 어렵게 됐다”며 “이 부회장이 앞으로 1년 6개월 수감생활을 보내는 동안 삼성전자의 시장 대응도는 낮아질 수 밖에 없을 것 ”이라고 우려했다.
이 관계자는 “TSMC는 유일한 경쟁자였던 삼성전자가 주춤하는 사이 파운드리 시장을 완전히 점령할 수도 있다”고 안타까움을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