곳간 닫으라는 관치금융에 은행 투자자만 속앓이 한다
[뉴스투데이=박혜원 기자] 새해에도 주식시장은 활황세다. 머잖아 ‘버플(거품) 붕괴’가 올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지만, 아직까지는 새로 유입된 개미 투자자들의 관심이 뜨겁다. 5일 기준 코스피는 3129.63을 기록했다. 전날 정부가 공매도 금지를 5월까지 연장하면서 폭락장도 당분간 유예됐다.
이처럼 ‘빚투(빚내서 투자)’해서라도 주식시장에 진입해야 한다는 작금의 열띤 분위기와 달리, 최근 ‘탈출’을 도모하고 있는 집단이 있다. 바로 은행 투자자들이다.
지난해부터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은행권 ‘이익공유제’에 더해 최근 금융당국이 ‘은행권 20% 배당제한’ 권고를 내리면서다. 일각에서는 이를 두고 자율경영을 침해하는 ‘관치금융’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 이익공유제·배당제한은 관치금융의 전형…최대 피해자는 투자자들/ 최대실적 낸 KB금융 배당성향은 6%p 감소
이익공유제 요구는 은행을 ‘코로나19 특수’를 누린 업종으로 보는 데서 비롯된다. 쉽게 말해 “많이 벌었으니 양심껏 곳간을 열어라”라는 압박이다. 2월 임시국회에서 이익공유제를 법제화하는 ‘상생연대 3법’이 논의될 예정이다.
이익공유제 참여대상으로 지목된 업계가 반발하는 대표적인 이유 중 하나는 ‘주주가치 훼손’에 있다.
지난달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발표한 ‘이익공유제의 5가지 쟁점’에서도 주주의 재산권 침해 우려 문제가 언급됐다. 배당을 통해 주주에게 돌아가는 기업 이익의 일부가 아무 관련이 없는 기업이나 소상공인에게 돌아갈 경우 주주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침해한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 금융당국은 “곳간을 닫으라”는 정반대 주문을 했다. 이 역시 투자자들에게는 악재다.
지난달 금융위는 은행계 지주회사들을 대상으로 올해 배당성향을 오는 6월 말까지 20% 이하로 낮추라고 권고했다. 코로나19 위기에 대비한 자본관리가 필요하다는 이유에서다.
지난해 4대 은행지주사 배당성향은 25~27%였다. 20% 제한 권고를 따르면 올해 배당금은 6500억원가량 줄어들 전망이다.
실제로 지난 4일 실적을 발표한 KB금융은 4분기 당기순이익 3조 4552억원으로 역대 최대 실적을 냈지만, 배당성향을 20%(주당 1770원)으로 전년 대비 6%포인트 낮췄다. 관련 기사 댓글에는 “은행주가 배당을 빼면 무슨 경쟁력이 있다는 거냐”는 볼멘소리가 나왔다.
■ 혁신 절실한 은행권 발목 잡는 금융감독기관, '자율성' 보장해야
전경련은 이익공유제가 궁극적으로 “기업의 이윤 추구 동기와 성장·혁신 동력을 약화한다”고 지적했다.
역설적으로 현재 은행권은 시대에 발맞춘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업계다.
올해 주요 금융사 회장들은 신년사에서 일제히 ‘디지털 혁신’을 강조하고 나섰다. 특히 손태승 우리금융그룹 회장은 “디지털 넘버원이 되려면 모든 임원이 사고방식을 대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통 금융사를 바짝 추격하는 빅테크·핀테크 기업에 대한 위기감과 조바심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관치금융이란 비판이 나오는 이유는 다른 데 있지 않다. 정치권의 지속된 개입이 은행 성장을 저해한다는 국민적 판단에서 비롯된다. 디지털을 필두로 전환의 변곡점에 서있는 은행권에 경영 자율성을 보장해 힘을 실어줄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