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하이닉스 성과급 대란 일주일 만에 해결한 최태원의 ‘소통경영’
[뉴스투데이=이서연 기자] 지난달 28일 SK하이닉스가 PS(초과이익 분배금) 규모를 연봉의 20%(기본급의 400%)로 정한다고 밝히자 임직원들이 강한 불만을 제기하며 ‘성과급 대란’이 일어났다. 전년보다 실적이 크게 뛰었음에도 삼성전자 반도체 부서의 절반에 그치는 데다 산정 방식 역시 투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4년차 직원이 이날 전임직원에게 보낸 내부 항의 메일이 외부에 공개되고 노조가 이례적으로 피켓 시위에 나서는 등 상황은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이에 1일 최태원 SK회장은 빠르게 반응했다. 이 연봉 30억 반납을 선언하며 해결의 신호탄을 쏘아올렸다. 자신이 받은 연봉을 반납해 SK하이닉스 임직원들에게 나눔으로써 논란을 종식하고 사기를 북돋우겠다는 것이다.
SK하이닉스에 따르면 최 회장의 30억 반납 발언은 1일 SK하이닉스 경기도 이천 본사에서 열린 M16 준공식에서 나왔다.
최 회장은 “최근 사내에서 성과급 관련 불만이 나오고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며 나름대로 고심을 해봤다”며 “지난해 제가 SK하이닉스에서 받은 연봉을 전부 반납해 임직원들과 나누겠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총수 굳이 계열사 내 논란에 관여할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최 회장은 골치아픈 사안에 스스로를 개입시키는 이례적인 선택을 했다.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은 다음 날인 2일 역시 향후 성과급 내용에 대해 “투명하게 소통하겠다”며 임직원들에게 고개를 숙였다. 최 회장이 직접 나섰는데 이 사장이 침묵을 지킬 수 없는 상황이었다.
이 사장은 이날 구성원들의 요청에 답변하는 형식의 사내 메시지를 통해 “지난주 초과이익분배금(PS) 지급 공지 이후 여러분께서 느끼신 불만에 대해 가슴 아프게 생각한다”며 “충분히 미리 소통하지 못했던 점, PS가 기대에 부흥하지 못했다는 점에 대해서도 대표 구성원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사과했다. 이어 “지난해 PS는 더 큰 미래의 파이를 키우기 위한 중장기 인프라 투자가 고려돼 결정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사간 오해를 풀고 신뢰를 다시 쌓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라며 “올해부터는 향후 성과급 내용을 미리 공지하고 투명하게 소통하겠다”고 덧붙였다. 이 사장은 “올해는 경영진과 구성원이 합심해 좋은 성과를 내 기대에 부응하는 성과급을 지급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도 했다. 간곡한 사과였지만 실제 내용은 "지난 일은 묻어두고 올해부터 바꿔보자"는 메시지였다.
결국 이석희 사장의 사과에도 사태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이에 사측은 기존입장을 전면 수정해 노조 측 의견을 100% 수용했다.
사측은 지난 4일 △PS산정방법의 개선 △임직원들에 대한 사주 매입권리 부여 △사내 복지포인트 추가지원 등 대안을 제시하며 노조와 합의에 이르렀다.
사태가 불거진 지 불과 일주일 만에 빠른 결단력과 적극적인 ‘소통경영’을 보여주었다는 평이다. 특히 노조의 요구에 PS산정 방식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등 합리적인 기준을 근거로 ‘모호성’을 해결했다는 점에서 유의미한 사례가 될 것이라는 해석이다.
회사 측은 “최 회장이 최근 불거진 성과급 논란에 대해 이전부터 고민을 해왔고 공감하고 있다”며 “본인의 연봉을 반납함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지를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SK하이닉스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최태원 회장의 연봉 30억 반납 깜짝 선언에 모두들 놀랐다”면서 “고위 관계자들과 내부회의를 거쳤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하루 만에 기존 입장을 전면적으로 수정해 노조 측 의견을 100% 수용한 것은 최 회장의 강력한 의지가 반영된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 같은 전향적 결정 이후에도 직원들의 내부 동요는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성과급 발표 직후 직장인 익명 커뮤니티 앱 ‘블라인드’의 평점은 1점대로 떨어지기도 했다.
이에 이석희 사장은 지난 4일 오후 늦게 구성원들에게 다시 한 번 사과를 전했다. PS 논란에 대한 사과와 제도 개선 의지를 담은 장문의 메시지다. 5일 SK하이닉스에 따르면 중앙노사협의회에서 합의안이 도출된 이후 발표된 사측의 입장과는 별도의 입장문이다.
이 사장은 “송구함과 함께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고 운을 뗐다. 그는 “‘사랑하는 회사가 이렇게 무너지는 게 아프다’는 이야기, ‘입사할 때 기쁨과 감사함은 사라지고, 회사에 대한 믿음이 점점 줄어든다’는 이야기까지, 원칙만을 우선한 이번 PS 지급이 여러분 마음속에 이렇게 깊은 상처가 될 줄 몰랐다”고 덧붙였다.
이 사장은 “지금껏 여러분 마음을 제대로 헤아리지 못하고 충분히 소통하지 못했던 점에 대해 CEO로서 다시 한번 진심으로 사과한다”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구성원과 회사의 신뢰다. 신뢰를 쌓기 위해 구성원께서 회사에 바라는 점은 공정함과 투명함이라는 점을 분명히 알게 됐다”고 강조했다.
또한 “PS 지급 기준을 개선하고 상반기 중으로 우리사주를 지급하겠다”며 “위로와 격려의 의미를 담아 하이웰 포인트도 특별 지급하겠다. 마지막으로, 구성원과의 소통 방식 수준과 체계를 혁신하겠다. 앞으로 구성원과 소통 전반에 대한 개선 방안을 마련하고 비록 더디 가더라도 구성원 존중에 입각해 이해와 공감을 이루겠다”고 언급했다.
마지막으로 그는 “익명게시판에 한 구성원이 남긴 말이 기억난다”며 “‘신뢰는 주는 것이 아니라 행동으로 받는 것’이라는 짧지만 그 말을 가슴에 담아 제가 앞장서 실천해 나가겠다”고 했다.
최 회장의 성과급 반납, 이 사장의 두 차례에 걸친 사과, 노조요구 수용등을 SK하이닉스 직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지는 아직 지켜봐야 하지만, '소통경영'의 의미있는 사례로 남을 것임은 분명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