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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의 심호흡

삼성전자 이재용 사면의 정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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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 편집인
입력 : 2021.02.18 07:17 ㅣ 수정 : 2021.02.18 09:28

이재용의 ‘옥중경영’은 한국사회의 자기모순, 그의 결정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사면 해줘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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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구속수감 중인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17일 일반접견이 가능해지면서 ‘옥중 경영’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 부회장이 짧은 면회를 통해 삼성전자의 최고경영자(CEO)들을 만나 평택공장 증설과 미국 오스틴 파운드리 공장 투자결정을 내리게 될 것이라는 관측이다.  

 

사실 글로벌 공룡기업들과의 4차산업혁명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으려면 이 부회장의 적극적 역할이 필수적이다. 인공지능(AI), 시스템반도체, 전장사업 등에 대한 투자가 과감하고도 신속하게 이뤄져야 한다. 

 

■ 법무부 '취업제한' 통보했지만, 박범계 장관이 허가하면 '옥중경영' 가능

 

이를 위한 실탄은 충분하다. 삼성전자는 지난 연말 기준 현금 보유액만 104조원에 달할 정도이다. 하지만 이 부회장의 부재는 걸림돌이다. 삼성전자의 비즈니스모델(BM)혁신의 방향을 전반적으로 조율하면서 투자를 주도할 의사결정권자는 이 부회장뿐이라는 데 이견이 없다. 김기남 부회장을 필두로 한 삼성전자의 전문경영인들이 책임질 사안이 아니라는 게 냉정한 현실이다. 수십년 동안 진행돼온 삼성그룹의 오너경영체제의 본질이 그렇다.  

 

법무부가 이 부회장에 대해 ‘취업제한 조치’를 통보했다고 하지만 박범계 법무장관의 허가를 받으면 옥중경영은 가능하다. 이 부회장이 신청하고 박 장관이 허가하면 된다는 게 법무부의 입장이다. 박 장관 마음먹기에 달렸다.    

 

하지만 옥중경영이 이뤄진다면 역설적으로 ‘한국사회의  자기모순'이다.  

 

이 부회장의 결정이 삼성의 미래에 그토록 중요한 변수라면 옥중에 가둬놓는 것은 국가적 손실이다. 이 부회장의 의사결정이 필요하다면 한국경제를 위해서 문재인 대통령이 삼일절 특별사면복권을 검토하는 게 맞다. 

 

■ 문재인 대통령, 이재용 사면에 대한 '정의론'적 고찰 필요 

 

단 사면이 정의로운지는 충분히 고민해봐야 한다. 우선 ‘최대다수의 최대이익’을 기준으로 삼는 공리주의 정의관으로 따져보자. 이 부회장에 대한 사면은 ‘법집행의 형평성 상실’이라는 비판을 낳을 수 있다. 이는 손실에 해당된다. 반면에 삼성의 추가적인 성장과 이를 통한 일자리와 부의 창출은 이익이다. 문 대통령은 이 같은 사면의 이익과 손실 중 어느 것이 더 큰지를  따져봐야 한다.    

 

공동체주의 정의관은 ‘미덕’에 포상하고 ‘악덕’을 징벌하는 것이다. 이 부회장의 경우는 86억여원에 달하는 횡령 및 뇌물공여행위가 악덕이다. 이에 대한 징벌이 판사의 실형선고였다. 

 

이에 비해 ‘미덕’은 일자리 창출이다. 이 부회장은 3년간 4만명을 채용하겠다는 약속을 지난 연말을 기점으로 이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다른 대기업들이 정기공채를 폐지하고 수시채용으로 전환하고 있지만 삼성그룹은 대규모 정기공채 제도를 유지하고 있다. 이는 삼성그룹 경영을 책임지고 있는 이 부회장의 미덕이다. 사면은 그 미덕에 대한 포상이자, 격려이다.  

 

■ 21세기는 공리주의 정의론으로 무장한 '국가주의' 판치는 세상 / 정의 외치며 자국 글로벌기업 때려 잡는 건 한국뿐

 

이 같은 관점은 궤변이 아니다. 글로벌 현실이다. 21세기는 공리주의 정의론으로 무장한 ’신국가주의‘가 판치는 세상이다. 각국 정부는 자국의 글로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온갖 특혜를 제공하고 있다. 

 

19세기 영국의 벤담과 밀이 주장했던 공리주의 정의론이 21세기에 전성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일자리와 부의 창출이라는 최대다수의 최대이익을 실현하기 위해서 기업을 지원하는 데 전력투구하고 있는 게 냉혹한 현실이다.  

 

자국의 글로벌 기업을 때려잡는 데 열중함으로써 ’법과 정의‘가 살아 숨쉬는 나라를 만들겠다는 국가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중 한국뿐이라고 해도 전혀 과장이 아니다. 

 

유럽연합(EU)국가들은 미래차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하기 위해 전기차배터리 기업에 사실상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중국 역시 전기차배터리 기업에 대한 보조금을 지급해왔다. 뿐만 아니라 외국 게임사의 중국진출시장 면허인 판호도 거의 발급하지 않아, 중국 게임사의 시장 독점을 유지시킨다.   

 

■ 트럼프와 팀 쿡은 애플 이익 위해 국법 어기며 공개 야합

 

미국은 더 심하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중국을 때려잡기 위해 보복관세를 매기면서 애플에게는 노골적으로 특혜를 부여했다. 지난 2년 동안 중국서 생산된 상품이 미국으로 수입될 경우 막대한 관세를 부과하는 조치를 시행하면서 애플에게는 보복관세 유예기간을 부여했다. 애플의 아이폰은 대부분 인건비가 저렴한 중국에서 생산되는 탓에 고율의 관세를 고스란히 물어내야 할 처지였다.  

 

애플의 CEO 팀 쿡은 트럼프를 만나 특혜를 간청했다. 특히 보복관세를 맞을 경우 삼성전자의 갤럭시와의 가격경쟁에서 아이폰이 치명적인 불이익을 안게 된다는 점을 강조했다. 

 

트럼프는 팀 쿡의 요청을 흔쾌히 수락했다. 트럼프는 이 같은 사실을 공개하면서 “애플이 (보복관세를 부과받지 않는) 삼성전자에 비해 불이익을 받게 할 수는 없다”면서 “팀 쿡은 수백만달러짜리 로비를 했는데 내가 공짜로 들어줬다”는 취지의 발언을 하기도 했다. 

 

한국의 사법논리를 적용하면 트럼프와 팀 쿡은 지엄한 국법을 어기는 야합을 통해 삼성전자측에 불이익을 준 혐의로 실형을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검찰이 이러한 정경유착을 겨냥해 수사에 착수했다는 소식은 없다. 

 

이처럼 ‘미국의 국익’을 위해서라면 ‘실정법’은 무시할 수도 있다는 게 트럼프의 정치철학이다. 이로 인해 트럼프가 미국의 글로벌 지도자 위치를 상실케 했다는 비판을 받는다. 트럼프가 대선불복이라는 초헌법적 주장을 포기하지 않고 미 의사당 불법난입을 사주하는 충격적 사태를 주도했던 것도 잘못된 정치철학에서 비롯됐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 공화당 지지층의 여론을 주도하는 것은 트럼프이다. 왜 그럴까. 미국의 국익을 최우선한다는 전제가 미국사회의 주류인 백인 중산층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이다. 공화당이 지배하고 있는 미 상원에서 트럼프 탄핵안이 부결된 것도 트럼프의 ‘미국 제일주의’ 정치철학의 위력이 만들어낸 부정의(不正義)의 전형이다.  

 

■ 문 대통령, '동서화합' 대신 '국가경제' 위한 사면 단행한 첫 대통령 될 수 있어

 

내년 4월 임기가 만료되는 문 대통령도 박근혜·이명박 전 대통령의 사면을 검토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불어민주당 이낙연 대표가 총대를 멨다가 낭패를 봤다. 이 대표는 언론과의 신년인터뷰에서 ‘전직 대통령 사면론’의 애드벌룬을 띄웠다가 여권 지지층이 등을 돌려 지지율이 급락했다.  

 

문 대통령은 지난 1월 18일 신년기자회견에서 “두 분의 전임 대통령이 수감돼 있는 사실은 국가적으로 매우 불행한 사태이지만 지금은 사면할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라면서 “비록 사면이 대통령의 권한이지만 선고가 끝나자마자 돌아서서 사면을 말할 수 있는 권리는 없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한국적 정치풍토에서 역대 대통령들은 정권 재창출을 위한 ‘동서화합형’ 사면복권을 검토하거나 실시해왔다. 국가경제를 살리기 위한 기업인 사면을 화두로 삼은 적이 없다. 정치 행위에선 관행적 명분이 가장 중요하다. 문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들을 제외한 채 이재용 부회장을 중심으로 삼은 특사를 단행하기에는 어색한 구조이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이 부회장을 사면한다면 ‘정치공학’ 대신 ‘국가경제’를 명분으로 삼아 사면을 단행한 첫 대통령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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