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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의 JOB채(56)

자본의 법칙을 깬 이재용의 삼성전자가 공정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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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태희 편집인
입력 : 2021.03.21 06:51 ㅣ 수정 : 2021.03.21 06:51

L기업의 영업이익은 200~300배 늘었지만 고용은 오히려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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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2기 삼성전자 정기주주총회가 열린 17일 오전 경기도 수원시 영통구 수원컨벤션센터 앞에서 경제개혁연대 및 참여연대 관계자들이 이재용 부회장 취업제한에 대한 이사회의 명확한 입장 및 대응 등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한국의 산업화를 이끌어온 대기업 L사의 최고경영자(CEO)를 지낸 A씨와 ‘일자리’에 관해 대화를 나눈 적이 있다. 10여년 전 방문학자 비자를 받아 미국 스탠포드 대학에서 연수하던 시절이다. A씨도 같은 대학의 방문학자였다. 

 

“L사는 놀라운 속도로 성장해왔는데 일자리는 좀 늘었느냐”는 질문에 A씨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내가 입사했던 1970년대에 비하면 매출이나 영업이익은 200~300배 정도 증가한 것 같다. 하지만 고용인원은 오히려 줄어든 것 같다”고 솔직히 고백했다. 

 

■지옥에 떨어진 단순노동자와 꽃길을 걷는 CEO/유능한 CEO의 절대과제는 인력감축

 

일자리 감소가 A씨 책임은 아니다. ‘자동화’가 범인이다. 생산, 마케팅, 인사 및 노무관리 등 기업활동의 전분야에서 급속한 자동화가 이뤄짐에 따라 인간의 단순노동이 불필요해진 데 따른 결과물이다. 단순 반복업무, 저숙련기술, 창의적이지 못한 직무 등은 자동화에 의해 대체된 것이다. 단순노동자는 밥줄이 끊기는 지옥을 피하기 어렵다. 구조적 비극이다.  

 

반면에 A씨와 같은 최상위급 인력은 꽃길을 걷고 있다. 자동화가 대체할 수 없는 전문성과 통찰력, 분석력을 지닌 인간은 돈다발 세례를 받는다. 그 돈다발의 양은 갈수록 증가한다. 

 

1970년대 한 기업의 직원 평균연봉과 CEO연봉의 격차는 10배 미만인 경우가 많았다. 50년의 세월이 흐른 현재 국내 주요 대기업에서 직원과 CEO간 연봉격차는 50배를 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심한 경우 200배 차이가 나기도 한다. 스톡옵션까지 따지면 격차는 더 커진다. 미국 실리콘밸리의 일류 ICT기업의 CEO와 직원 간의 연봉 격차는 수백 배에 달한다는 게 정설이다. 

 

연봉격차만 커지는 게 아니다. 유능한 CEO일수록 일자리를 줄인다. 직원과의 연봉격차가 큰 CEO라면 작년보다 올해, 올해보다 내년에 더 적은 직원으로 회사를 굴려서 더 많은 매출과 영업이익을 달성해야 한다. 자본이 CEO에게 부여한 절대과제가 불필요한 인력감축이다. 자동화가 대체할 수 없는 능력을 가진 인간집단의 정점에 선 CEO는 자동화가 대체가능한 인간을 가급적 최대한 일터에서 쫓아냄으로써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하게 된다. 

 

자본은 그런 CEO에게 더 많은 포상을 내린다. 그 포상으로 인해 직원과 CEO와의 연봉 격차는 더 커진다. 

 

■스탠포드대 방문학자인 CEO의 뉴욕거주 이유, “와이프가 쇼핑을 좋아해서” 

 

필자는 A씨에게 연봉을 물어보지는 않았다. 하지만 A씨의 자기자랑을 통해 추정할 수 있었다. A씨는 미국 서부 캘리포니아주 팔로알토 지역에 있는 스탠포드 대학 방문학자였지만 동부인 뉴욕에서 부인과 거주하고 있었다. 그 이유를 묻자 A씨는 “와이프가 쇼핑을 좋아해서 뉴욕에서 산다”고 답했다. 사실 실리콘밸리는 고급문화를 즐기거나 명품 쇼핑을 즐기기엔 뉴욕에 비해 열악하다. 

 

대신에 뉴욕은 집값과 물가가 높기로 악명 높은 도시이다. 당시 뉴욕도심의 경우 당시 방 2개짜리 아파트 월세가 1만5000달러를 넘었다. 스탠포드가 위치한 팔로알토는 실리콘밸리역에서도 소문난 부촌이지만 방 2개 아파트 월세는 3000달러 안팎에 그쳤다. 당시 스탠포드대학 방문학자로 와 있던 한국인은 법조인, 교수, 언론인 등이었다. 그들의 부인들도 대부분 쇼핑을 즐겼지만 뉴욕거주는 언감생심이다.  

 

이처럼 21세기의 ‘신(新)양극화’는 ‘최상층과 중산층 간의 양극화’이다. A씨의 뉴욕거주는 신양극화가 안긴 선물이다. 그의 부(富)는 본인이 인식하고 있듯이 상당 부분 고용감축을 토대로 삼고 있다. L기업의 매출과 영업이익의 증가에도 불구하고 인력이 늘어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었기 때문에, 대주주는 A씨에게 천문학적인 보수를 지급했을 것이다. 

 

최근 현대자동차 직원들이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의 타운홀 미팅에서 ‘성과급 증액’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 회장은 적극적인 검토를 약속했다고 한다. 하지만 실현하기 어렵다. 기업은 영업이익을 나눠먹고 사는 조직인데, 현대차는 영업이익에 비해서 직원 수가 많다. 대한민국 빅5 기업중 직원 수가 가장 많은 곳이 현대차이다. 

 

■‘자본의 법칙’=직원을 줄여야 부인과 뉴욕에 거주할 수 있다

 

요컨대 유능한 CEO일수록 자본의 법칙에 충실해야 한다. 가급적 직원을 줄이고, 살아남은 직원과 CEO만 성과급 잔치를 벌일 수 있다.  L기업이 매출과 영업이익이 증가하는 속도에 맞춰 인력을 증원했다면, A씨의  연봉은 급상승할 수 없었을 것이다. 자본의 법칙이 작동돼야, CEO가 미국 연수를 가면 부인과 뉴욕에 살 수 있다. 

 

삼성전자가 최근 2021년도 대졸신입사원 정기공채를 시작한 것은 ‘자본의 법칙’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정기공채는 정기적으로 대규모 인력을 채용하는 방식이다. 필요한 부문의 인력만 소규모로 뽑는 수시채용과는 지향점이 다르다. 

 

정기공채는 산업화시대의 산물이다. 대량생산체제와 고도성장이 확고할 때 주요 대기업이 매년 수천명씩 인재를 뽑아들일 수 있었다. 

 

정권의 정당성(legitimacy)이 부족했던 박정희, 전두환 정부가 대기업에게 많은 특혜를 부여하는 대신에 ‘대규모 공채’를 요구했던 측면도 있었다. 일자리를 늘려서 정치적 권위주의에 대한 국민의 불만을 다독였다. 대기업은 정권의 보호와 특혜를 제공받는 대신에 일자리를 더 늘렸다. 정경유착이 가동시켰던 선순환구조였다.   

 

이 점에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으로 2년 6개월의 실형을 살 게 된 것은 상징적인 사건이다. 한국을 지배해온 정경유착 구조의 완전한 붕괴를 의미한다. 이 부회장은 현직 대통령의 압력을 받아 공익재단 기부와 스포츠선수 지원을 행했다. 그 결과 뇌물 및 횡령죄 판결을 받았다. 과거의 기준에 비춰보면 재판거리도 안됐던 행위가 법의 처벌을 받게 된 것이다. 

 

■정경유착이 ‘감옥행’을 부르는 21세기, 권위주의 시대의 산물인 정기공채는 저물어

 

이제 어떤 정권도 기업에게 요구할 수 없고, 어떤 기업도 정권의 요구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이런 사회적 분위기와 한국 대기업들의 정기공채 폐지는 무관치 않다. 철저히 효율성의 논리에 충실하게 인력을 뽑는 방식은 수시채용이다. 당장 월급 값을 뽑아낼 수 있는 인재만 채용하면 된다. 자본 입장에서는 수시채용이 공정성이다.  공정성은 상대방이 희생할 때 느끼는 가치평가이다.  수시채용은 인간의 고용축소라는 희생을 낳고 그 희생은 자본의 이익을 극대화한다. 

 

매년 한 두차례씩 미리 정해놓은 채용 목표에 맞춰서 사람을 뽑는 것은 기업 입장에서 비효율의 극치이다. 이렇게 뽑아놓으면 그중에서 불필요한 인력도 상당수 발생하기 마련이다. 

 

국내 빅3 대기업집단 중 삼성그룹을 제외한 나머지 그룹들이 수시채용으로 전환했거나 전환중인 것은 효율성의 관점에서 지극히 당연하다. 

 

■대다수 그룹이 '효율성' 위해 수시채용으로 전환 중...삼성은 정기공채 제도 유지

 

반면에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의 주요계열사들은 올해 상반기 정기공채를 시작했다. 오는 22일까지 원서접수를 받고 7월에 수천명의 최종합격자를 발표할 예정이다. 

 

영민한 경영으로 소문난 삼성이 시류를 거슬러 역주행하는 이유는 한 가지이다. 이재용 부회장의 소신 때문이다. 

 

이 부회장은 지난 1월 26일 임직원들에게 보낸 옥중 메시지를 통해 “투자와 고용 창출이라는 기업의 본분에도 충실해야 한다”면서 “나아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삼성으로 거듭나야 한다”고 강조했다.이 부회장은 지난 2018년 8월 8일 “향후 3년간 180조원을 새로 투자하고 4만명을 채용한다"고 발표한 바 있다. 그 약속을 지키겠다는 점을 상기시킨 것이다. 

 

이처럼 고용창출을 기업의 본분으로 규정한 것은 ‘현명한 CEO의 법칙’을 정면으로 부정한 것이다. 정기공채를 폐지하고 수시채용으로 전환하는 게 현명한 CEO이다. 

 

삼성전자를 포함한 삼성 계열사들이 이번에 뽑는 수천명의 신입사원 전원이 ‘인재’일 가능성은 희박하다. ‘인재 제일주의’라는 삼성의 모토에 부합하는 사람도 있고, 미달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공정성은 자기희생의 산물...이재용의 ‘고용철학’은 자본의 공정성 높여

 

하지만 인간입장에서 볼 때, 정기공채가 자본의 ‘공정성(equity)’을 높여준다. 수시채용보다 훨씬 많은 신입사원을 채용하기 때문이다. 

 

경제학적 관점에서 공정성은 조직내에서 한 개인이 자신의 공헌과 그에 따른 보상의 비율을 비교하고, 그 비율이 다른 사람과 동일한 경우 '공정성'을 느낀다.  마찬가지로 기업이 창출하는 영업이익을 자본과 인간간에 배분하는 비율이 타당하다고 판단할 때, 인간은 자본의 공정성을 느낀다.  영업이익을 자본이 독식하지 않고 인간에게 충분한 보상을 하고 채용을 증가시킬 때, 그 자본은 공정성을 갖게 되는 것이다. 

 

동일한 영업이익을 거둘 때, 정기공채를 하는 기업은 자본의 이익을 줄이고 인간의 이익을 늘려주므로  공정성을 확보하게 된다. 이처럼 공정성은 자기희생의 산물이다. 나의 이익을 극대화하면서 내가 공정하다고 주장하는 것은 궤변에 불과하다.  

 

이재용의 채용전략은 실제로 자본의 공정성을 강화하고 있다. 삼성전자의 사례만 봐도 선명하게 드러난다. 삼성전자가 벌어들인 영업이익 1억원당 직원 수를 비교해보면, 삼성전자의 자본은 인간고용을 위해 자신의 이익을 희생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된다. 

 

삼성전자의 최근 5년간 사업보고서를 살펴보면, 영업이익의 증감은 변동폭이 큰 데 비해 채용인원은 꾸준한 증가세이다. 이에 따라 영업이익 1억원당 고용인원을 계산해보면 전반적인 증가세가 유지된다. 

 

삼성전자의 영업이익(연결재무제표 기준)과 직원수는 2016년 29조 2406억원과 9만 3200명이다. 2017년엔 53조 6450억원과 9만 9784명, 2018년엔 58조 8866억원과 10만 3011명, 2019년엔 27조 9685억원과 10만 5257명, 2020년엔 35조 9938억원과 10만 9490명이다. 

 

4년만에 직원 수가 1만 6290명 늘었다. 17.5%의 증가율이다. 영업이익이 감소하는 시기에도 직원 채용은 꾸준히 늘려왔다. 

 

지난 5년 간 영업이익 1억원당 직원수는 0.319명, 0.186명, 0.175명, 0.379명, 0.304명 등이다. 영업이익이 줄어도 직원 수는 꾸준히 늘려온 결과물이다. 이 같은 삼성전자는 인간 입장에서 볼 때 공정한 자본이다.  

 

한국은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같아... 자본가 이재용의 공정성에 무관심

 

그러나 참여연대, 경제개혁연대 등 한국의 시민단체들은 이 부회장의 경영권 박탈을 요구하고 있다. 소위 국정농단 사건으로 실형선고를 받았기 때문에 구속 상태에서도 법무부의 취업제한 통보가 실행돼야 한다는 주장이다.  물론 형 집행이 종료된 이후 5년 동안 취업제한이 발효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삼성준법감시위원회는 19일 회의에서 결론을 유보했다. "취업제한 절차 진행과정에서 위법행위가 발생하지 않도록 삼성전자에 권고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무책임한 눈치보기식 입장 표명이다. 

 

한국사회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와 같다. 자본가로서의 이재용은 ‘공정성’을 추구하고 있지만, 정의를 외치는 세력 중 누구도 관심을 갖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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