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창] 확증편향의 오류, 타진요와 디어마이펫

장원수 기자 입력 : 2021.03.26 13:54 ㅣ 수정 : 2021.03.26 14:18

  • 카카오스토리
  • 네이버밴드
  • 페이스북
  • 트위터
  • 글자크게
  • 글자작게
image
절찬리에 판매되던 당시, 유기견 보호소에 기부된 디어마이펫 사료들. 온라인 상에서 수많은 피해견주들이 등장했지만, 정작 이 곳에 기부된 2000박스가 넘는 사료를 먹고 문제가 된 유기견들은 나오지 않았다. 사진=디어마이펫

 

[뉴스투데이=장원수 기자] 지난 주말 저녁, 문득 켜놓은 TV에서 흘러나오는 소리를 듣다 갑작스레 와닿은 내용이 있었다. '복면가왕'에 출연한 힙합 그룹 에픽하이(EPIK HIGH)의 멤버 DJ투컷의 멘트였다.

 

“어느덧 에픽하이가 살아온 시간이 아닌 걸로 산 시간보다 길어졌다. 이 정도면 진짜 가족이기 때문에 평생 함께했으면 좋겠다.”

 

학창시절 즐겨듣던 ‘Fly’, ‘Love Love Love’ 등 불멸의 히트곡들을 남긴 대한민국 힙합계의 리빙레전드다운 연륜이 느껴진 발언이지만, 그 이면에는 깊은 상처를 극복한 골짜기 같은 시간도 있었다.

 

‘타진요’라는 세 글자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타블로에게 진실을 요구합니다’라는 제목으로 2010년 개설된 인터넷 커뮤니티로 날조된 가짜뉴스들로 여론을 선동했으며, 오늘날에는 ‘근거없는 의혹 제기’를 가리키는 표현으로 자리잡은 단어다. 미국의 명문 스탠포드 대학 출신인 에픽하이의 멤버 ‘타블로’를 학력위조 프레임을 씌워 여론몰이하고 온라인 조리돌림은 물론, 당사자와 가족들의 일상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집요하게 괴롭혔다.

 

그 결과 타블로의 부친은 간암이 재발하며 사망했고, 모친과 형은 직업을 잃었다. 무려 검찰이 처음부터 끝까지 직접 수사를 맡을 만큼 심각한 사건이었고, 대통령이 비서관 회의에서 언급하고 무려 대법원판결까지 가서 만장일치로 악플의 위해성을 인정한 사례다.

 

타진요가 양산한 수많은 가짜뉴스와 악플 사례들은 기사 10개를 써도 모자랄 판이지만, 이를 종합적으로 표현할 수 있는 사자성어로 ‘삼인성호(三人成虎)’가 있다. ‘세 사람이 말하면 호랑이를 만든다’는 뜻으로, 거짓말도 여러 사람이 반복해서 말하다 보면 진실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이 외에도 타진요는 인터넷 커뮤니티 특성상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 내는 자유로운 의견들에도 검열을 감행했다.

 

운영진들을 포함한 주류들의 주장과 선동에 맞지 않는 게시물들은 삭제하고, 게시자는 퇴장시키는 등 철저한 폐쇄성 하에 움직였고, 타블로를 옹호하거나 학력에 대해 증언한 동문들에 대해서도 원색적 비난 하에 무시해버리는 ‘확증편향’의 극치를 보여줬다.

 

스마트폰 보급률이 올라가며 온라인 여론이 급속도로 성장하는 가운데, 이러한 사례는 점점 더 자주 등장한다. 지난 2016년 론칭 이후 2달 만에 반려견 사료업계 1위를 차지한 ‘디어마이펫’이란 브랜드가 갑작스러운 부작용 논란이 일며 큰 피해를 보고 폐업에 이르렀는데, 그 이면에는 또 다른 ‘삼인성호’가 있었다. 

 

시작은 ‘남자친구의 반려견에게 디어마이펫 브랜드의 사료를 줬더니 죽었다’는 내용이었다. 조사 결과, 실제로 해당 반려견은 체리아이(눈물샘이 눈 바깥으로 튀어나와 붉은 체리처럼 보이는 것) 수술 과정에서 탈수 증상이 발견되어 사망에 이르렀는데, ‘사료는 어떤 것을 먹이느냐’는 문진 내용을 근거로 사료를 사망 원인이라 판단한 것이다.

 

실제로 해당 반려견의 사망 원인은 전혀 밝혀지지 않았다. 익명을 요구하며 취재에 응한 한 수의사는 “부검은 물론, 조직검사만 해도 사망 원인을 알 수 있다”며 “확인되지 않은 상황에서 심증만으로 반려견의 죽음 원인을 판단하는 것은 심정은 이해하나 굉장히 위험한 일”이라고 소견을 전했다.

 

SNS상에 게재된 해당 내용은 반려견 보호자들의 감정에 호소하며 전파를 독려,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여기에 동조하는 사례들 역시 고개를 들었는데, 게중엔 난치병을 앓던 자신의 반려견이 죽자 1주일 전부터 먹인 디어마이펫의 사료 때문이라는 내용도 있었다. 원색적인 욕설로 임하던 해당 내용 게시자는 브랜드 폐업 이후 진행된 소송 시 ‘반려견의 사망시점과 사료 급여 시점이 우연히 일치했을 뿐, 객관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다’고 꼬리를 내리기도 했다. 

 

디어마이펫은 당시 사료 성분을 검사할 수 있는 모든 기관에 회수된 사료와 공장에서 채취한 사료를 전수조사했지만, 84개 성분에서 유해요소는 발견되지 않았다. 더불어 검사 기관에서도 ‘유해성분이 없는 상황에서 출시한 지 2달 된 사료로 이런 상황이 발생하는 것은 이해가 어렵다’라는 견해까지 밝혔지만, 확증편향된 여론은 전혀 받아들이지 않았다.

 

물론, 당시 스타트업이었던 브랜드의 투박한 사과문도 문제였다. 정확한 검사 결과도 없는 상황에서 온라인상에서의 마녀사냥식 여론에 겁먹고 ‘사료로 인한 부작용 사례가 발생해 당분간 판매를 중단한다’, ‘피해를 입은 고객분들을 직접 만나 사과하고 진단/치료 비용을 배상하겠다’는 식의 내용을 자사몰 홈페이지에 올린 것. 어떻게 보면 진정성 있는 태도라고도 생각할 수 있겠지만, 이는 조사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자신들의 제품에 하자가 있다는 것을 인정한 부분이며, ‘비용 배상’이란 단어는 후술할 블랙컨슈머들의 가장 좋은 먹잇감이 됐다.

 

반려견을 키우지도 않은 자칭 ‘견주’들이 무수히 등장했고, 제품을 한 차례라도 샀던 소비자들도 진단서나 사망 확인서 없는 환불/보상 세례를 퍼부었다. 비상 체계로 24시간 운영되던 콜센터 직원들은 증빙 자료를 요구하는 순간 욕설에 시달렸고, SNS상에서도 ‘검사 결과가 있지 않느냐’, ‘정확한 원인을 좀더 알아봐야하지 않겠냐’ 등 자정적 댓글들에 대해 게시자들은 ‘알바’, ‘가짜뉴스’로 매도하며 확증편향의 극을 달렸다. 

 

결국 디어마이펫은 환불 비용 및 불매에 시달리며 폐업을 결정했고, 검증되지 않은 사실을 게재하며 인터넷 여론을 주도한 초기 게시자들과 악플러들에 대한 소송을 진행한다. 놀랍게도 앞서 언급했던 첫 게시자는 소송 내용에 대해 어떠한 반론도 제기하지 않아 혐의가 모두 인정됐으며, 다른 게시자들 역시 모두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이미 사라진 브랜드를 되살릴 순 없었고, 이는 확증편향이 낳은 또 다른 피해사례로 보인다.

 

에픽하이가 10집 활동을 한창 하는 가운데, 아직도 온라인상에서 일부 ‘타진요’들이 활동을 재개했다고 한다. 부정적인 마인드는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는 말처럼, 이들 역시 자신들이 내린 확증편향을 지우고 싶지 않은 듯하다. 타진요와 디어마이펫 사례에서 보듯이 근거없는 선동과 가짜뉴스는 개인에게는 그 주변인들까지, 기업에게는 존폐와 생존의 여부에까지 이를 수 있다. 이 지면을 빌어 그 당시 힘들었을 타블로 가족들과 에픽하이, 그리고 몇 년 전 좌절했을 스타트업 관계자들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해 본다.

 

 

댓글 (0)

- 띄어 쓰기를 포함하여 250자 이내로 써주세요.

- 건전한 토론문화를 위해, 타인에게 불쾌감을 주는 욕설/비방/허위/명예훼손/도배 등의 댓글은 표시가 제한됩니다.

0 /2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