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후 칼럼] 선거, 누가 더 좋은 ‘하인(下人)’일까?

문성후 소장 입력 : 2021.03.31 08:38 ㅣ 수정 : 2021.03.31 08:38

유권자는 상술 경계해야, 정치인도 마케팅 하지만 반품은 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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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문성후 리더십중심연구소 소장] 정치인은 유권자의 표로 연명(延命)한다. 그들이 가장 두려운 것은 망각과 비호감이다. 유권자에게 기억되기 위하여, 비호감을 호감으로 바꾸기 위하여 오늘도 정치인들은 경조사에 참석하고 각종 행사의 축사를 낭독하고 있다. 유권자들도 손 한번 잡고 웃음 한번 나눈 정치인에게 호의를 가지고 표를 찍게 된다. ‘관계 중심적’인 우리나라에서는 정치인과 유권자의 스킨십은 약효가 오래간다. 필자도 정치인들 중 직접 만났던 사람들에게는 호감은 없어져도 친근감은 가지고 있다. 적군이 될 수는 있지만, 적어도 남은 아니다.

 

정치인은 유권자의 선택과 지지를 받기 위하여 선거 활동을 한다. 그 선거 활동이 진정성 있게 행해질 때는 고득점을 한다. 반대로 의정활동이 위선과 기만으로 범벅 졌을 때는 유권자들의 혹독한 뭇매를 맞는다. 여기서 유권자가 요구하는 것은 유권자의 ‘이익’ 그 이상이다. 유권자 자신과 정치인의 ‘일체감’이 더 중요하다. ‘코끼리는 생각하지 마’를 저술한 ‘조지 레이코프’는 이렇게 말했다. “사람들이 반드시 자기 이익에 따라 투표하지는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정체성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신의 가치에 따라 투표합니다. 그들은 자기가 동일시하고픈 대상에게 투표합니다.”

 

이 공연한 비밀들을 아는 ‘삐뚤어진 정치인’은 유권자에게 ‘밀착 쇼잉(showing)’을 하기 시작한다. 지지층이 극렬해질수록 정치인은 편안해진다. 마치 돈을 은행에 넣어두어 자는 동안에도 이자가 붙듯 그들이 대신 정치인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다. 유권자들은 자신에게 설사 불이익이 돼도 동질감을 느끼면 정치인의 팬덤이 된다. 정치인은 자신을 지지하는 팬덤을 콘크리트로 만들기 위해 쇼를 한다. 유권자에게 바싹 붙어서 보기 좋은 쇼를 한다. 

 

단순히 쇼만 하지는 않는다. 철벽도 쌓는다. 기업하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회사를 위해서라면 가족만 빼고 다 판다는 말이 있다. 정치하는 사람들은 정치를 위해서라면 가족도 파는 것 같다. ‘나는 몰랐다’, ‘가족이 한 일이다’, ‘우리 가족은 대화를 많이 안 한다.’, ‘가족끼리 사이가 안 좋아 무슨 일 하는지 모른다’ ‘문제가 많아 인연 끊고 산 지 오래다’ 등등 말이다. 모두 사실일 수 있다. 그런데 그 설명과 해명들이 유독 변명으로 들리는 이유는 그들이 불리할 때만 이런 가족사가 튀어나오기 때문이다. 

 

삐뚤어진 정치인은 궁색하고 민망한 변명 아니면 과도한 ‘오버액션’으로 지지층의 결집을 유도한다. 눈물은 기본이다. 단순하고 감성적인 ‘언어 프레이밍’으로 이슈를 왜곡해서 선점한다. 정치인은 그래서 연예인과 비슷하다는 풍자까지 있다. 두 직업 모두 남 덕분에 살고, 유행어가 있어야 하고, 남이 보고 싶은 것만 보여주어야 인기가 유지된다고 한다. (하지만 다른 점이 있다. 연예인은 남에게 기쁨을 주는데, 정치인은 슬픔과 고통을 더 크게 주기도 한다) 

 

국제정치컨설턴트협회의 초대 회장을 역임했던 ‘죠셉 나폴리탄’은 그의 저서 ‘정치 컨설턴트의 충고’에서 이렇게 말했다. “만일 유권자가 후보자 A가 정직한 후보라는 인식을 하게 된다면 그가 실제로 도둑질을 했다 해도 최소한 선거 캠페인에서는 그 혐의에서 벗어날 수 있다. 만일 유권자가 후보자 B를 사기꾼이라고 인식하고 있다면 4명의 추기경과 16명의 주교가 그의 정직함을 입증한다 해도 유권자는 그를 사기꾼이라 생각할 것이다”라고 하며 그래서 “‘퍼셉션(Perception)’이 ‘리얼리티(Reality)’보다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기업에서나 하는 마케팅을 정치인이 하고 있다. 기업의 마케팅은 소비자를 유인하기 위한 온갖 도구들을 활용한다. 소비자의 지갑을 여는 게 기업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물론 정치인도 유권자의 지지를 얻는 게 목적이다. 정치인은 자신이 지지의 객체 즉 상품 그 자체이기 때문에 더 그럴 것이다. 그러나 회사는 소비자가 잘못 산 물건은 즉시 교환하거나 반품할 수 있는 자유를 주고 있다. 소비자가 기업의 상술(商術) 덕분에 물건을 샀지만, 아니다 싶으면 언제든지 전화 한 통으로 교환 반품할 수 있게 해주고 있다. 정치인은 그렇지 않다. 정치의 소비자인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잘못 뽑은 정치인은 국가가 즉시 교환하거나 환불해 주지 않는다. 임기가 끝나는 몇 년을 기다렸다가 간신히 반품하거나 교환할 수 있다. 

 

그래서 매번 선거 때마다 유권자들은 정치인의 상술에 속지 말아야 한다. 눈 똑바로 뜨고, 귀 활짝 열고 그들을 샅샅이 보아야 한다. 덤을 주거나, 물건값 좀 깎아준다고 해서 잘못 사면, 안 사느니만 못하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가 바로 덤을 주거나 돈 좀 깎아주는 상행위다. 적극적으로 금권, 관권을 동원하는 선거 활동은 상술을 넘어서 ‘사술(詐術)’이다. 자신이 유권자에게 선택받고 싶다면 스스로가 얼마나 좋은 정치인인지 입증하면 될 일이다. 본인은 자격이 안 되면서 상대를 음해하고, 흠집 내는데 집중하는 것은 유권자에게 ‘나쁜 사람’과 ‘더 나쁜 사람’ 중 하나를 뽑으라는 폭정이나 다름없다. 자신이 쉽게 교환되지 않는 점을 악용하여 유권자를 기만하는 일이다. 

 

정치 컨설턴트 ‘딕 모리스’는 그의 책 ‘Vote.com’에서 ”대통령이란 우리 생활을 낫게 만들기 위해 이용할 수 있는 사람, 즉 진정한 의미의 충복인 것이다. (중략) 하인이 역할모델이 되겠는가“라고 하였다. 우리도 선거 날 ‘충복’을 선택해야 한다. 선거 날은 역할모델이나 성인군자를 뽑는 날이 아니다. 우리를 위해 죽어라 일할 ‘하인’을 찾는 날이다. ‘누가 더 좋은 하인일까’만 집중하자.

 

◀문성후 소장의 프로필▶ 리더십중심연구소 소장, 경영학박사, 미국변호사(뉴욕주), 산업정책연구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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