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후의 ESG 칼럼] ESG, 방아쇠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 (上)
50여명의 CEO가 ESG를 '지속가능경영'의 핵심원리로 제안
[뉴스투데이=문성후 ESG중심연구소 소장] ESG는 기업의 비재무적 성과를 평가하는 지표이자, 기업이 추구하는 경영 가치이다. SK 최태원 회장은 보아오포럼에서 “ESG는 ‘있으면 좋은’ 선택이 아니라 최소 요구 조건이자 기업의 생존이 달린 문제‘ 라고 말했다. 국내 기업들은 ESG를 아예 경영 목표로 삼고, ESG 위원회도 설치하고, 자사가 얼마나 ESG 경영을 하는지 매일 홍보하며, 사외이사로 ESG 전문가(?)들을 모시고 있다. 그런데 잠시 숨을 돌려 생각해보자. 무어든 정신없을 때는 ’기본으로 돌아가야(Back to Basic)‘ 살펴보아야 한다. ESG는 우선 어떻게 시작되고 강하게 촉발되었을까?
ESG는 2004년 코피 아난 전 유엔사무총장이 전 세계 50여 명의 CEO에게 보낸 편지에서 처음 표현된 용어였다. 당시 코피 아난 전 총장은 CEO들에게 ’지속 가능한 투자를 위한 지침을 개발해 달라‘고 주문했고, 이에 대한 CEO들의 화답이 ESG였다. E(Environment) 환경, S(Social) 사회, G(Governance) 지배구조가 지속가능경영의 핵심이라는 것이다. ESG는 기업이 환경을 보호하고, 사회적 활동을 소홀히 하지 않으며, 건전하고 투명한 지배구조를 견지하면 그 기업은 지속 가능하다는 논리다. 당연히 투자자들은 지속 가능한 기업에 자금을 제공할 것이고, 그 재원을 바탕으로 기업은 건강하게 성장하며, 생태계를 구축하는 선순환에 들어가게 된다. 아주 심플한 논리이다. ESG는 어려울 게 없다.
공부 잘하는 학생에게 학자금을 지원해 주면 그 학생은 돈 걱정 없이 더욱 공부에 전념하여 성적을 올리게 될 것이다. 우등생이 된 학생은 학업을 마친 후에 당연히 자신의 사회적 역할을 책임 있게 성실하게 해낼 것이고, 학자금을 빌려주었던 그 누군가는 원금 이상으로 유무형의 대가를 돌려받게 될 것이다.
그런데 될 성싶은 나무, 떡잎부터 다른 나무를 알아보는 안목과 기준은 무엇일까? 학생에겐 학교 성적이 될 수도 있고, 평소 인성이 될 수도 있고, 주변의 평판이 될 수도 있다. 담임선생님의 추천도 있을 수 있고, 표창장 받았던 기록도 될 수 있고, 친구들과의 교우관계도 기준이 될 수 있다. 당연히 기준을 잘 맞추어야 장학금도 받고, 학교 추천도 받고, 실력을 발휘할 수 있는 자리에 출전 기회가 생기니 학생은 스스로 더욱 열심히 하게 된다. 선순환에 들어가기 위해 당사자인 학생이 그 기준은 무엇인지 먼저 살펴보는 것은 당연하다. 그게 바로 기업에는 ESG이다. ESG란 모범생의 여러 기준을 기업이 얼마나 충족하는지 판단하는 기준표이다. ESG를 둘러싼 기업의 학습과 실행도 그 기준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ESG의 시작은 유엔에서 시작되었지만, 그리고 그 이론은 17년 전에 나온 이론이건만, 왜 갑자기 이렇게 1년 사이에 급부상한 것일까? 다시 학생 예로 돌아가 보면 2년 전까지는 학생들 각자가 알아서 기준을 찾아 좋은 학생이 되기 위해 노력했다면, 2019년 1월부터는 이미 모범생인 학생들이 스스로 모범생의 기준을 만들어 발표했기 때문이다. 자신들도 앞으로 이렇게 생활하고 공부하고 처신할 테니 다른 학생들도 그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말이다. 필자가 편의상 모범생이라는 비유를 썼지만, 모범생이라고 해서 반드시 학교 성적의 우등생만을 말하는 것은 아니다. 기업으로 치면 반드시 재무성과가 좋은 기업이 위대한 기업, 우량한 기업이 아니듯 말이다.
모범생 발표에 참여한 기업 모범생들의 면면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아마존, 애플, 뱅크오브아메리카, 보스턴컨설팅그룹, 시티그룹, 코카콜라, 델테크놀로지, 딜로이트, 엑손모빌, 이와이(EY), 포드, 페덱스, 제너럴모터스, 골드먼삭스, 아이비엠, 존슨앤드존슨, 제이피모건체이스, 케이피엠지, 메리어트인터내셔널, 모건스탠리, 오라클, 프록터앤드갬블, 펩시, 프라이스워터하우스쿠퍼스, 타겟, 월풀, 월마트, 제록스, 스리엠 등 세계 굴지의 기업들이다. 그 기업의 경영진들이 직접 나와서 모범생의 기준을 선포했고, 서명까지 했다. 애플에서는 팀 쿡(Tim Coook)이, 델테크놀로지에서는 마이클 델(Michael S. Dell)이 서명했다.
그들이 발표하고 서명한 모범생의 기준을 이해하려면 먼저 이전에 기업들이 삼았던 모범생의 기준을 알아야 한다. 필자가 미국에 MBA를 갔던 시기는 지금부터 20년도 더 된 때였다. 그 당시 동부에 자리잡은 보스턴대학교 경영대학원에서 교수들이 늘 강조하던 모범생의 기준은 딱 두 단어, ’이익과 확장(Profit and Expansion)’이었다. 기업 윤리(Business Ethic)가 과목으로 있긴 했지만, 비인기과목이었고, 잭 웰치가 한참 GE 회장으로 재직하며 우량기업의 역사를 다시 쓰던 시기였다.
기업의 목표는 돈을 벌어 우선 주주에게 최대한 많은 이익을 안겨주어야 한다는 ‘주주 제일주의(Shareholder Primacy)’가 각광받던 시기였다. 주주의 이익을 위해서는 다수 불법적이거나, 무리한 사업 경영도 용인되었다. 직원들을 과감히 구조 조정해서라도 조직은 살아남아 주주를 위해 확장하고 수익을 올려야 되던 시기였다.
그 후로도 한동안 기업 윤리 과목은 구석으로 밀렸고, 여전히 누가 더 재무적으로 강한 기업을 만들어 경쟁에서 승리하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적어도 2001년 엔론 사태가 터지기 전까지는 말이다. 모범생인 줄 알았던 기업이 성적도 속였고, 장학금을 주었던 투자자들도 속였고, 친우였던 아더 앤더슨까지 학교를 떠나도록 만들었던 그 사건 말이다. (계속)
◀문성후 소장의 프로필▶ ESG중심연구소 소장, 경영학박사, 미국변호사(뉴욕주), 산업정책연구원 연구교수. '부를 부르는 평판(한국경제신문 간)' 등 저서 다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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