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울한 은성수 금융위원장, 코인광풍 문제점 지적했다고 2030 ‘공적’돼
[뉴스투데이=이채원] 은성수 금융위원장이 가상화폐 광풍과 관련해 ‘경제원론’에 가까운 발언을 했다가 2030세대의 ‘공적’으로 찍히는 사태가 발생했다. 은 위원장으로서는 억울한 일이다. 하지만 부동산 급등, 취업난 등으로 꿈을 꾸기 어려운 청년층이 ‘코인투자’를 유일한 돌파구로 삼고 있다는 사실을 배려하지 못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은 위원장의 입장은 원칙적으로는 옳지만 한국이 처한 정치사회적 상황을 고려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반면에 이번 사태로 인해 내년 대선을 앞두고 출렁이고 있는 2030표심이 주요 금융정책마저 좌지우지할 우려가 커졌다는 관측도 적지 않다.
문제가 된 은 위원장의 발언은 지난 22일 국회 정무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나왔다. 은 위원장은 이날 암호화폐 시장의 과열에 대한 의원들의 질문과 관련, “내재가치가 없는 가상화폐는 인정할 수 없는 화폐”라면서 “가상자산 투자자들을 정부가 보호할 수는 없다”고 밝혔다. 이는 지극히 상식적인 답변이었다. 정부가 제도권 밖에 있는 암호화폐 투자자들을 보호할 법적 의무는 전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암호화폐 시장이 비이성적으로 과열되는 것에 대해 금융정책을 책임지는 기관의 수장으로서는 당연히 경고할 수 있는 상황이었다는 평가이다.
미국 연준(Fed)의 제롬 파월 의장과 재닛 옐런 재무장관, 유럽중앙은행(ECB)의 크리스틴 라가르드 총재는 물론 한국은행의 이주열 총재까지 각국 중앙은행장이나 정부 금융 관료들은 거의 모두 코인 투자의 위험성을 경고한 바 있다. 주요 국가 금융정책을 책임지는 인물들의 입장과 은 위원장의 발언은 일맥상통하고 있다.
그러나 화근은 있었다. 은 위원장은 “청년들이 잘못된 길을 가고 있다고 어른들이 지금 얘기해 줘야 된다”면서 “"9월까지 등록이 안 되면 200여개의 가상화폐거래소가 다 폐쇄될 수 있다”고 단언했다.
그 다음 날인 23일 주요 코인 거래소에서 가상화폐들은 20~30%씩 폭락했다. 코인시장의 주력부대인 2030청년층은 격분했다. 기성세대인 당신들은 부동산 투기로 떼 돈을 벌어놓고 이제는 대출마저 규제하면서 그나마 가상화폐라는 새로운 가치에 투자하는 것을 투기로 규정, 판을 깨고 있다는 분노였다.
하지만 은 위원장은 팩트 전달자였다. 정부는 개정 특정금융정보법을 지난달 25일 시행하면서 가상화폐거래소들에 9월까지 은행으로부터 반드시 실명을 확인할 수 있는 입출금계좌를 받아 신고해야만 영업을 할 수 있다고 공지한 상태이다. 실명계좌를 받아서 신고하지 못한 거래소들은 폐쇄될 수밖에 없는 운명이다.
물론 빗썸, 업비트, 코인원, 코빗 등 전체 가상화폐 거래의 90%를 차지하고 있는 주요 거래소들은 현재 은행들과 실명계좌를 트고 영업하고 있어 폐업 가능성은 희박하다. 문제는 군소 거래소들이다.
지난 23일 청와대 국민소통 게시판에 올라온 '은성수 금융위원장의 자진사퇴를 촉구합니다'라는 청원에는 25일까지 12만명 가까이 동의했다. 상당히 빠른 속도다. 청와대 답변 기준인 청원 동의 20만명 돌파는 시간문제인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지난 2018년 1월 박상기 당시 법무부 장관이 "가상화폐거래소 폐지 법안을 만들겠다"고 한 발언으로 시장이 폭락하면서 청년층이 격렬하게 반발했던 사태를 연상시킨다. 문제는 당시보다 청년층의 반발이 훨씬 거세다는 점에 있다.
■ 이광재 의원 등 여권 일각선 '청년 표심' 다독이기 나서
여권 일각에서는 청년층을 다독이기 위해서 가상화폐 제도화의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그 대표 주자가 이광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26일 이 의원은 이날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와의 인터뷰에서 “암호화폐에는 위험과 미래가 공존하고 있다”면서 “위험은 줄이고 미래는 열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의원은 “자산 가치가 없다면서 정부가 세금을 걷겠다고 하면 받아들이기 어렵다”면서 “빨리 제도를 만들고 민관하고 과학자들이 함께 모여서 이제는 시스템을 짤 때라고 생각한다”고 지적했다.
가상화폐 광풍을 경제원론에 입각해 대응해야 할지 아니면, 청년층 민심을 다독이는 데 무게를 둬야 할지가 금융당국의 새로운 고민거리로 굳어지고 있는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