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1.04.27 14:00 ㅣ 수정 : 2021.05.03 07:59
운영개념에 대한 군내 공감대 형성 우선돼야…추진 과정에서 생긴 오해 등 이견 해소가 관건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지난해 8월 발표된 ‘2021∼2025 국방중기계획’에서 해군의 경항공모함(이하 경항모) 확보가 본격화됐다. 하지만 12월초 국회 국방위원회는 국방부가 반영한 경항모 사업 예산 101억원 가운데 100억원을 삭감하고 용역연구비 1억원만 남겨놓았다. 2021년에 좀 더 필요성을 짚어보고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된 후 진행하자는 의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합동참모본부는 지난해 12월 30일 합동참모회의를 열고 해군이 요구한 경항모 전력의 중기소요 전환을 결정했다. 이에 따라 해군은 2030년대 초반까지 3만톤급 규모의 경항모를 도입할 수 있는 전기를 마련했다. 2018년 6월 해군이 장기 신규소요로 제기하여 2019년 6월 장기소요로 결정된 지 18개월 만에 이루어진 결과였다.
■ 합참이 합동성 고민하면서 정치권 및 언론 대응에 앞장서야
일반적으로 이렇게 빨리 사업이 진행된 사례는 드물다. 하지만 전혀 전례가 없는 것도 아니어서 절차를 지키면서 빠르게 진행한 것은 오히려 칭찬 받을 일이다. 진짜 문제는 이 기간 동안 합참이 합동성 차원에서 충분한 논의를 가졌고, 그 결과를 토대로 중기소요 전환을 결정했냐는 것이다. 이후 2개월 만에 사업추진기본전략이 마련된 것도 다소 이례적이다.
사정이 어떠하든 절차에 따라 지난 2월 22일 열린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경항모 사업추진기본전략이 심의·의결됐고, 예산 판단을 위한 사업타당성조사(이하 사타)도 곧 추진할 예정이었다. 그런데 신원식 의원을 필두로 일부 국회 국방위원들이 사타 진행에 제동을 걸었다. 해군과 방위사업청 관계자들은 3월부터 이들의 설득에 나섰지만 더 이상 진척은 없는 상태다.
이런 가운데 지난 16일 최초로 합참이 주관한 군 수뇌부의 경항모 전술토의가 있었다. 이 자리에서 해군은 경항모의 필요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했고, 타군 수뇌부도 경항모 도입을 전제로 논리 보강 차원에서 몇몇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합참의장은 소요 결정으로 필요성을 인정했으니 국방부와 합참이 같이 노력하자는 취지의 말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편,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3월 26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2033년 모습을 드러낼 3만톤급 경항공모함은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조선기술로 건조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이런 청와대의 분위기가 작용해 합참이 중기소요로 전환을 결정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하지만 합참이 육·해·공군과의 합동성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다면 당시의 결정을 연기했어야 한다.
그런 문제 제기 없이 합참이 중기소요로 전환을 결정해놓고 지금처럼 뒤로 물러나 있는 모습은 곤란하다. 지금까지는 소요를 제기한 해군만 전면에 나서서 정치권과 언론에 애타게 필요성을 외치는 모양새다. 합참이 나서지 않고 해군이 앞서니 오해만 쌓이고 문제만 부각된다. 이제라도 합참이 합동성 차원의 고민을 하면서 국회 설명과 언론 대응을 주도해 나갈 필요가 있다.
■ 해군, 경항모 필요성 충분히 논의하여 군내 공감대 형성해야
그동안 해군은 경항모 사업에 관한 내용을 합참 기획문서에 설득력 있게 반영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전략적 운용개념 정립보다 경항모 보유에만 관심 있는 것 아니냐는 의문을 갖기도 한다. 하지만 해군은 1996년 김영삼 정부에서 최초로 소형 항모 확보를 시도한 이후 2007년 해군전략기획서에서 강조했고, 2012년 국회 정책연구도 이뤄지는 등 일관되게 노력해왔다는 입장이다.
특히 2012년 국회 정책연구에서 수직이착륙기를 운용하는 대형수송함 1척의 필요성이 제기됐고, 이후 2015∼16년에도 경항모 운용개념 및 건조 가능성에 대한 다양한 연구가 수차례 진행됐다. 그리고 2017년 12월 합참의 ‘2020∼2050 장기무기체계 발전방향’에 다양한 종류의 항공기를 운용할 수 있는 대형수송함(LPH-Ⅱ) 확보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중기소요 전환을 결정하기까지 이런 과정을 거쳤지만 대부분이 해군 자체적으로 진행된 것이어서 군 내부적으로 공감대 형성이 부족했다. 결국 군 내부 설득에 소홀했던 해군이 그로 인해 타군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부정적인 얘기도 나오는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사업이 다소 늦어지더라도 군 내부 공감대 형성에 해군이 더 주력해야 한다”고 말한다.
즉 정치권과 언론에 대한 대응은 합참과 국방부에 맡기고 해군은 군 내부 공감대 형성을 위해 경항모 필요성에 대한 논의를 충분히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그동안 오해를 받고 있거나 잘못 알려진 내용들은 바로잡힐 수 있으며, 군에서 경항모 사업의 필요성이 인식되면 설사 정부가 바뀌어도 흔들림 없이 나아갈 수 있다. 일부에서 너무 서둘지 말라는 소리가 나오는 이유이기도 하다.
■ 합참과 해군, 역할 분담해 이견 해소하면서 서서히 추진해야
정치권과 군 일각에서 경항모 사업에 대한 부정적 반응이 제기되는 가운데 대표적인 오해는 세 가지 정도로 보인다. 또 해군력 ‘현시’에 대한 이해도 상당한 차이가 있는 듯하다. 합참과 해군은 서로 역할을 분담하되, 해군 상황과 사업 전반에 대한 이해 부족에서 제기되는 오해와 이견들을 적극적으로 해소하는데 역점을 둘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첫째는 경항모가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비에 투입될 예산을 빼앗는다는 주장이다. 하지만 경항모 건조 비용은 10여년에 걸쳐 분산 투자되며 호위전력 확보는 별개 사업으로 이미 가고 있다. 물론 사업 추진 간 신기술이 반영되고 운영개념이 달라져 추가예산이 소요될 가능성은 분명히 존재한다. 하지만 북한 핵·미사일에 대비한 전력 투자는 계획대로 잘 진행되고 있어 이와 연관 짓는 것은 지나친 우려라고 한다.
둘째는 경항모가 대함탄도미사일과 잠수함에 매우 취약하여 예산 낭비라는 주장이다. 경항모는 육상에서 멀리 떨어져 계속 이동하며 작전을 하는데다 해상의 곡률반경까지 작용해 위성이 없으면 정확한 위치 파악이 거의 불가능하다. 또한 요격미사일과 대잠능력을 보유한 구축함의 호위를 받아 대함탄도미사일로 공격하기 어려울 뿐만 아니라 잠수함의 접근도 쉽지 않다. 오히려 육상에 고정된 공군 및 미사일 기지가 더 위험하다.
셋째, 해군출신인 송영무 전 장관이 현 정부에서 무리하게 밀어붙인 사업이란 주장이다. 송영무 전 장관이 경항모에 많은 관심을 가졌을 것이란 합리적 추론은 가능하다. 하지만 특별히 지시해 절차를 생략하며 사업을 빠르게 진행한 흔적은 없으며, 오히려 오해 받을까 걱정했다는 얘기가 들린다. 실제로 중기소요 전환은 원인철 합참의장이, 사업추진기본전략 심의·의결은 서욱 장관 하에서 이루어졌다.
이와 같은 오해 외에도 해군과 타군의 가장 근원적인 이해 차이는 항모를 통한 해군력의 ‘현시’ 효과에 있다. 통상 국제정치학자들은 이를 전략적으로 중요하게 바라보나 타군과 일반인들은 큰 의미를 부여하지 않는 듯하다. 하지만 전쟁이 없으면 사용할 기회가 없는 육·공군 무기체계에 비해 해군 함정은 평시에도 경제·외교적 측면에서 군사력 현시를 통한 국익 창출이 가능하다고 한다.
결국 2033년께 한국의 안보상황과 국가이익을 군이 어떻게 상정하느냐에 따라 경항모의 전략적 운용개념이 정립되고, 이에 대한 정치권과 언론의 공감을 어떻게 끌어내느냐에 사업 추진 성공 가능성이 달려있다. 합참과 해군은 합동성 차원에서 운용개념을 더욱 보강해 군내 공감대 형성에 주력하면서 정치권과 언론 대응에 나서되 서두르지 말고 한 걸음씩 전진하는 지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