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세 먹는 과학화경계시스템, 일부 업체들 배만 불려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이런 문제들을 심층적으로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현재 광망감지·케이블센서·장력감지 등 3가지 방식의 감지시스템 적용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전방지역 GOP 및 후방 중요시설에 구축된 과학화경계시스템이 오경보를 막기 위해 시스템을 인위적으로 조작하는 등 경계 목적과 달리 변칙 운용되고 있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져 주목된다.
또한 GOP과학화경계시스템의 개선 방향이 오경보가 발생하지 않는 새로운 감지 방식으로 교체하는 것이 아니라 기존 감지 방식을 정비하는 유지보수 사업으로 진행돼 국민의 혈세가 낭비되고 있다는 지적도 함께 제기되고 있다.
그동안 우리 군은 15년 가까이 전방지역의 경계용 철책에 GOP과학화경계시스템을 구축하면서 이와 병행하여 후방지역의 유도탄 부대 등 중요시설 울타리에 과학화경계시스템 공사를 꾸준히 추진해왔다.
과학화경계시스템은 센서로 작동하는 감지시스템, CCTV를 이용하는 감시시스템 그리고 이들 시스템을 관제하는 통제시스템으로 구성된다. 여기서 주 수단은 감지시스템이고, 감시시스템은 보조수단이다. 왜냐하면 센서에서 감지돼 신호가 울려야 CCTV가 확인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감지시스템에 어떤 방식을 사용하느냐가 대단히 중요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국방부가 보조수단인 CCTV를 보강하는 지능형 영상감시(AI) 경계시스템을 대단한 개선책인양 추진하고 있어 “문제의 핵심을 놓치고 실무선에서 우왕좌왕하는 것 같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와 유사한 AI 경계시스템은 이미 지난해 3월 제주 해군기지에 설치된 직후 민간인 무단 침입을 막지 못한 선례가 있었다.
지금까지 군에서 GOP 및 후방 중요시설 경계를 위해 사용한 감지시스템은 광망감지 방식, 케이블센서 방식, 장력감지 방식 등 3가지가 대다수를 차지한다. 이 가운데 어떤 방식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오경보율, 침입탐지율, 내구성, 유지보수 효율성, 설치 비용 등에서 차이가 많다.
■ 전방지역 위주 적용한 광망감지 방식 오경보 등 문제 많아 변칙 운용
전방지역에 적용된 ‘광망감지 방식’은 한 가닥의 광케이블로 그물망을 만들어 철책을 덮는 형태로서 강풍과 혹한에 취약하고 동물에 의한 훼손도 많아 오경보가 빈발하는데다 설치 후 2년 정도 경과하면 대부분 손상돼 제 기능이 발휘되지 않는다. 즉 경계 작전에 심각한 공백이 생기는 것이다.
그런데도 육군은 광망감지 방식으로 GOP과학화경계시스템을 구축해왔고,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부분적으로 정비해왔다. 그럼에도 계속 오경보가 빈발하자 평상시 아예 광망센서의 민감도를 오경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줄이는 변칙적인 운용 방법을 마련해 그동안 적용해온 사실이 최근 드러났다.
군의 과학화경계시스템 운용법을 기술해놓은 내부 자료를 보면, ‘광망 민감도는 오경보를 줄임과 동시에 작전적 기능을 발휘하기 위해 풍속에 따른 세부 설정을 통한 조절이 필요하다’면서 풍속 기준에 따라 광망 민감도를 설정하는 방법을 설명하며 전투실험에서 도출한 최적 설정값까지 제시하고 있다.
풍속에 따른 민감도 설정이 실제 필요했다면 애초에 감지시스템을 그렇게 개발해야 한다. 그러지 않은 상태에서 민감도를 임의로 줄일 경우 탐지율이 떨어져 실제 침투상황이 발생하면 경계 실패의 원인이 될 수도 있다. 게다가 실제로는 오경보를 막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작동하지 않을 정도로 줄여놓고 훈련 시에만 작동하게 조정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오경보 발생을 낮추려는 이유로 평시에 과학화경계시스템이 거의 작동하지 않도록 인위적으로 조작해 변칙 운용하는 실정이고, 심지어 그런 운용 방식에 일부 지휘관은 물론 운용을 담당한 실무자 중 누구도 의문을 품지 않고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는 상황이라고 한다.
■ 후방지역 케이블센서 방식도 변칙 운용…최근 장력감지 방식으로 교체
이런 문제는 케이블센서 방식을 사용한 후방 중요시설의 과학화경계시스템에서도 똑같이 확인되고 있다. 일례로 2005년부터 과학화경계시스템 구축 공사를 추진해온 육군 유도탄 부대의 경우, 대다수 공사를 케이블센서 방식으로 시공했다.
후방지역에 적용된 ‘케이블센서 방식’은 한 가닥의 케이블을 울타리에 부착하여 자력 또는 전자펄스를 흘리다가 진동으로 자력선이나 펄스가 변형되는 것을 감지하는 방식인데, 공사비는 매우 저렴하지만 기상 환경이나 동·식물에 의한 오경보가 가장 많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케이블센서 방식으로 시공된 대다수 유도탄 부대들은 GOP와 유사하게 평상시 감지시스템의 민감도 설정을 낮추어 오경보가 나지 않을 정도로 운영하고 훈련 시에만 정상 작동되도록 민감도를 유지해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렇게 변칙 운용을 하면서도 오경보의 심각성을 인지한 육군은 2018년부터 유도탄 부대의 과학화경계시스템 구축 시 현장성능평가(BMT)를 거쳐 기존의 케이블센서 방식을 오경보가 없는 장력감지 방식으로 바꾸어 시공하고 있다. 현재까지 장력감지 방식으로 시공한 부대들은 오경보가 없는 상태다.
‘장력감지 방식’은 철책에 지지대를 세우고 가로로 설치한 장력선마다 센서를 부착하는 형태여서 감지능력이 뛰어나고 튼튼해 강풍이나 혹한에 잘 견디며 동·식물에 의한 훼손도 없다. 게다가 일정한 힘을 가해 끊거나 벌어져야만 경보가 울려 오경보가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 단지 장력선이 많이 소요돼 광망감지 및 케이블센서 방식에 비해 공사비가 다소 비싸다.
■ 전방지역, 근원적 해법보다 기존 감지 방식 유지보수 사업에 치중
군은 뒤늦게 기존의 감지 방식들이 문제가 있음을 일부부서에서 인지했지만 그동안 변칙 운용을 통해 해결하려는 잘못된 접근을 해왔고 전·후방 지역에서 그런 모습은 만연돼 있는 것 같다. 게다가 22사단 경계 실패에서 문제가 재차 부각되자 새로운 감지 방식을 적용해 교체하는 근원적 해법보다는 기존 감지 방식을 유지보수하는 주먹구구식 처방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과거에 GOP과학화경계시스템 공사를 부실하게 했던 업체들이 다시 광망 유지보수 사업 때문에 돈을 버는 기회를 잡는 해프닝이 벌어지고 있다고 한다. 군이 GOP과학화경계시스템 유지보수 사업의 입찰 참가자격을 광망감지 방식의 정비 또는 유지보수 경험이 있는 업체로 못 박았기 때문이다.
기존의 GOP과학화경계시스템이 광망감지 방식 적용으로 오경보가 심해 변칙 운용되거나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경계에 실패했음에도 거의 60억원이 들어가는 유지보수 사업에 광망감지 방식을 해본 업체에게만 입찰 참가자격을 주는 행위가 버젓이 벌어지고 있다.
이로 인해 최초로 이 분야 공사를 담당했던 모 업체는 관련 조직을 모두 해체했다가 최근 다시 만들고 있다는 소문이 들린다. 왜냐하면 광망감지 방식의 유지보수 사업이 계속 나오기 때문이다. 장력감지 방식으로 1개 사단을 교체할 경우 약 100억원이면 가능한데 오경보를 줄일 수 없는 광망감지 방식의 유지보수에 60억원 가까운 엄청난 돈을 쏟아 붓고 있는 것이다.
■ 변칙 운용 사실 확인하고, 군 요구사항 충족하는 감지 방식 도입해야
게다가 최근 유도탄 부대는 예산 부족을 빌미로 또 다시 성능은 부족해도 가격이 저렴한 기존의 케이블센서 방식을 도입하려는 조짐이 보인다. 전문가들은 “오경보율은 장비 신뢰성과 연관돼 최소한의 기준이 만들어져 있지만 성능보다 예산에 맞는 제품을 선택하다보면 이 기준이 무시되고 저가 제품이 들어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말한다.
예산이 부족하면 사업타당성검토를 통해 추가예산 확보에 주력해야 하는데 오히려 성능이 떨어져도 가격에 맞춰 사업을 하겠다는 심산이다. 이렇게 가격 위주로 선택된 저가 제품이 군에 도입되면 오경보 문제로 매년 소요되는 유지보수 비용이 커서 고가의 좋은 제품을 도입하는 것에 비해 성능 저하는 물론 예산 절약 효과도 별로 없다.
군은 이제라도 전방지역 GOP와 유도탄 부대를 포함한 후방지역 중요시설의 과학화경계시스템에서 그동안 변칙 운용돼온 광망감지 방식과 케이블센서 방식의 문제를 정밀 점검하고, 변칙 운용이 사실로 확인되면 군의 요구조건을 충족하는 제대로 된 감지시스템으로 교체 시공하는 실질적인 개선책 강구에 적극 나서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