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팍스 이준행 대표(2) "하버드 출신 역사학도라 비트코인의 가치 통찰할 수 있어"
뉴스투데이가 이병선 디지털미래정책연구소장과 함께 연중기획으로 MZ세대 CEO들을 만난다. 눈과 귀 그리고 가슴을 열고, 그들의 창업철학부터 사회개혁론까지 모든 것을 가감없이 전한다. <편집자 주>
[뉴스투데이=고은하 기자] 고팍스 이준행 대표는 이병선 디지털미래정책연구소장과의 인터뷰에서 화폐의 역사를 알고나면 오히려 가상자산의 진정한 가치와 문제점을 통찰해낼 수 있다는 입장을 보였다.
우선 이 소장이 “업계에선 이 대표님을 향해 하버드대 역사학을 전공한 학력으로 가상자산업계 블록체인 업체에 뛰어든 사람이어서 사람들이 주목하는 부분인 것 같다”고 운을 뗐다. “하버드에서 역사학을 전공했는데, 어떻게 가상화폐 비즈니스를 생각하게 됐는냐”는 질문이었다.
■ “화폐의 역사를 알면 비트코인의 진가를 이해하기 쉬워”/"화폐 시스템은 유한하고 진화가 숙명"
이준행 대표는 “오히려 역사학을 전공해서 비트코인이 가져다주는 사회적 함의와 임팩트를 쉽게 캐치할 수 있었다"면서 "화폐시스템, 화폐라는 것도 영원할 것 같지만, 영원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에 따르면, 화폐도 사회적 발명품이다. 기술의 발전에 따라서 화폐도 진화했다.
이런 맥락에서 봤을 때, 디지털 세상인 오픈소스 환경에서 자가 발현되는 ‘비트코인’ 같은 화폐, 돈의 실험은 충격적이다. 하지만, 요즘 트렌드와 잘 맞는다. 화폐의 비영속성을 역사적으로 통찰하면 비트코인과 같은 가상자산의 가치를 파악하기 쉽다는 논리이다.
이 대표는 “가치 있는 것들이 전부다 디지털로 넘어간다”며 "일반적인 세상에선 돈이란 건 세금을 지불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에, 화폐라는 것이 기능을 할 수 있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이 대표는 “화폐 시스템이라는 건 종교와 같은 믿음 체계를 가지고 있다. 일반 시민들이 경제활동을 할 때 지역간·세대간 협업을 할 수 있는 엄청나고 훌륭한 사회적 발명품이라고 생각한다며” “도구지만, 동시에 화폐가 만들어지고 관리되는 건 수익적인 권력관계에서만 해석이 됐는데 이 비트코인 같은 화폐는 완전히 스팸적인 인터넷에서 민주적인 방식으로 누구나 들어올 수 있다"고 말했다. 서로 사회적 합의를 통해 ‘자기발행’, ‘자가발전’을 한다는 가상화폐의 개념적 시도가 오히려 21세기와 잘 부합한다는 것이다.
"이 대표가 화폐의 역사를 공부했기 때문에, 오히려 비트코인이 나왔을 때 그 역사적 의미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보다 심취할 수 있지 않았겠냐“는 게 이병선 소장의 해석이다.
■ "발행인을 특정할 수 없는 비트코인은 정치권력으로부터 자유로와"
이 대표는 “증권이라는게 나왔을 때 정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발행을 하는 사람들과 유통한 사람들을 어느 정도 법으로 통제한다"면서 "이처럼 금융 권력을 국가가 민간하고 어느 정도 양분을 하는 경향이 있지만 비트코인은 발행인을 특정할 수 없다는 특징을 갖는다"고 말했다. 발행인을 특정할 수 없고 그냥 오픈소스에서 자가 발행되는 비트코인은 정치권력의 규제로부터 자유로와진다. 때문에, 새로운 자산군이 된다면 설명이다. "이는 어마어마한 큰 변혁"라는 설명이다.
이 소장은 “역사학자가 비트코인을 만나서 사랑에 빠진 것 아니냐”고 농담을 던졌고, 이 대표는 “사랑이라긴보단, ‘신묘함’인 것 같다”고 답했다.
■ "컨설팅 회사 다녔지만 보람 찾기 힘들었다" /"멋있어 보여서 하버드 대학 진학"
이 소장은 “큰 회사를 다니거나, 컨설팅을 하지 않고 창업을 시도한 이유가 뭐냐”고 물었다.
이 대표는 “사실, 컨설팅에 대한 좋은 경험을 가지고 있다. 마지막으로 ‘서울시 프로젝트’까지 한 적이 있다. 참 세상은 넓고, 할 일은 많다는 경험을 가졌다. 하지만, 체력이 뒷받침되지 않아서 힘들었다”고 대답했다. 물론 그래서 관둔건 아니다.
그는 “인수한 회사를 같이 개발하는 것에 동원됐고, 컨설팅 역할을 해봤다”면서 “중소기업들에 경쟁력이 되줄 것이라는 말에 일을 하게됐지만, 실제 고용주의 생리는 그렇지 않았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길게 보면, 직원, 주주, 나라 등에게 더 좋은 혜택을 주는 게 컨설팅이라고 생각했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았다는 이야기이다. 그래서 컨설팅 회사에서 퇴사했다.
그 와중에 우연히 만난게 비트코인 세상이었고, "빠져버릴 수밖에 없었다"는 고백이다.
이 대표는 하버드대학 진학 동기에 대해 “나는 대원외고 출신이라면서, 해외 유학에 성공한 선배들의 강연을 보고 멋있어서 하버드에 도전하게 됐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 “한국에선 주류였는데 하버드에선 비주류, 비주류에 대한 공감능력 생겼다"
이 소장은 “대학생활은 어땠냐”고 질문했다.
이 대표는 “힘든 경험도, 값진 좋은 경험도 많았다"고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일단, 신기했던 건 미국에선 비주류가 됐다는 점이다. 한국 사회에 있으면 남자고, 공부를 못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말을 잘하니까 주류에 속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었다. 그러나 미국 대학에 가니까, 말도 잘 못하고 공부도 처음에 잘하지 못했다. 아시아의 외국인 남자다보니까 사회 내에서 비주류였다. 비주류 경험에 대한 감이 없었는데, 처음으로 비주류에 대한 공감 능력이 많이 생겼다. 그 결과 관점도 다양해졌다.
이 대표는 전공을 엄청 바꿨다. 다양한 전공에 대해서 시도를 했다. 그렇게 하다보니까, 나중에 주변 사람들이 걱정을 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돌이켜 보면 다양한 수업들을 통해 얻은 게 많았다.
이 대표는 “그런 것들이 창업을 할 때 자양분이 됐냐”는 질문에 대해 “잘 모르겠다. 어쨌든, 그런 것들이 조금 도움이 됐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 "2018년 가상화폐 광풍땐 사기성이라고 매도하는 시선이 고통스러웠다"/" 미국의 주류세력이 장려하는 현재 시선은 달라져"
이 대표는 의외의 고백을 했다. “2017년과 2018년에 가상화폐 광풍이 불었는데, 그때가 너무 힘들었다. 어떻게 보면, 천천히 우리 페이스대로 발전하면 되는데 갑자기 판이 커지면서 준비가 안된 상태에서 성장을 해야했기 때문에 힘들었다"는 것이다. 가상화폐 광풍을 즐긴게 아니라 힘들어했다는 설명이다.
그에 따르면, 성장하는 것도 성장통이 있다. 2018년에 정부에서 규제에 대한 기조가 상당히 강했다. 이해는 가지만, 업계 입장에선 역풍을 맞을 수밖에 없었다. 모든 사람들이 종사자들을 사기꾼으로 봤다.
물론 무혐의로 결론이 났지만, 온갖 조사를 다 받았다. 2019년도엔 인증된 벤처기업이었는데, 거래소에서 주로 매출이 발생하는 업체들은 유흥업소와 같은 업종으로 바꾸면서 벤처기업이 아닌 상태가 돼버렸다. 그 뜻은, 자금수혈(Fund Raising)을 할 때 굉장히 큰 어려움이 발생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당시에 튼튼한 인프라를 만들기 위해서 투자를 많이 했다. 나쁜 짓을 하면서 돈을 벌 생각은 없었다. 갑자기 벤처기업 인증이 취소되면서, 자금줄이 막혔다. 가상화폐 업종에 대해서 ‘사양성’, ‘사기’라고 보고 매도하는 시선이 고통스러웠다.
이 대표는 “지금도 그런 시선을 느끼느냐"는 물음에 대해 “지금, 시선이 많이 바뀌었다. 개인적으론, 페이스북에서 리브라고 해가지고 가상화폐를 만든다는 뉴스의 영향이 컸다"면서 "지난해나 올해에도 미국에서 사실상 주류 세력들이 장려를 하고 있다. 하나의 금융자산, 새로운 금융 시스템으로 개편하고 있다. 요즘엔 인식이 바뀌고 있다”고 평가했다.
■ “로스차일드가는 대영제국과 함께 발전, 나는 한국블록체인 금융과 함께 성장하고 싶어”
이 대표는 “향후 회사의 계획은 무엇이냐”는 질문을 받고 “옛날에 인터넷이 정보의 고속도로라는 말이 있었다"면서 "블록체인을 정보의 고속도로가 아닌 ‘가치의 고속도로’를 만들고 싶다"고 밝혔다. 정보고속도로 강국인 한국을 블록체인 금융 선진국으로 만드는 역할을 하고 싶다는 것이다.
오히려 기존 금융에선 선진국처럼 될 순 없지만, 블록체인 금융은 누구에게나 개방적이고,수평적인 네트워크기 때문에 오히려 가능성이 높다는 논리를 폈다.
이 대표는 “로스차일드 가문은 대영제국과 함께 발전했고, JP모건도 미국 산업화와 함께한 금융회사다"면서 "한국의 블록체인 금융과 혁신과 궤를 같이 하면서 함께 성장할 수 있는 그런 금융회사가 되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