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년 끌어온 '게임사·게이머 냉전', 게임협 '자율규제 강령'으로 종식될까
[뉴스투데이=이지민 기자] 지난 18년간 베일에 꽁꽁 싸여있던 '확률형 아이템(게임 내부에서 특정 캐릭터나 무기 등을 정가에 판매하는 대신 뽑기 방식으로 판매하는 아이템)'이 드디어 본 모습을 드러낸다. 한국게임산업협회(이하 게임협)가 지난 27일 발표한 '건강한 게임문화 조성을 위한 자율규제 강령 개정안(이하 자율규제 강령)' 영향이다.
대형 게임사인 3N(넥슨, 넷마블, 엔씨소프트) 등 국내 게임사들도 게임협의 자율규제 강령 개정안에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어, 늦어도 오는 12월까지는 캡슐형뿐 아니라 강화형과 합성형 등 모든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이 공개될 것으로 전망된다. 그런만큼 그동안 확률 공개 여부를 놓고, 게임사와 게이머간 벌이던 신경전도 어느 정도 사그라들 것으로 보인다.
28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확률형 아이템을 세계 최초로 선보인 건 국내 1위 게임사인 넥슨이다. 지난 2003년 내놓은 MMORPG(다중접속역할수행게임) '메이플스토리'에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후 다른 게임사들도 받아들이기 시작하면서 주요 수익모델로 자리잡았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확률 조작과 사행성 조장 논란이 끊임 없이 불거졌고, 게임사와 게이머간 냉전도 시작됐다. 올해들어서도 넥슨이 서비스 중인 온라인게임 ‘마비노기’를 즐기던 게이머들은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을 투명하게 공개하고 제도를 개선하라"며 트럭 시위를 펼치기도 했다.
게임사와 게이머간 신경전이 극단으로 치닫자 게임업계를 대표하는 게임협이 나섰다. 기존보다 확률형 아이템의 확률정보 공개 범위를 확대한 '자율규제 강령'을 내놓은 것이다. '자율규제 강령'에 따르면 확률공개 대상이 기존 '아이템'에서 효과와 성능을 포함한 '콘텐츠'로 넓어진다. 확률공개 범위도 확장됐다. 캡슐형에 한정됐던 것을 강화형과 합성형도 포함시켰다.
확률도 백분율이 아닌 이용자가 직관적으로 인지할 수 있는 방식으로 공개토록 했다. 유료와 무료 요소가 결합된 경우에는 개별 확률을 명확하게 알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번 자율규제 강령은 올해 12월1일부터 시행되며, 사후관리는 기존처럼 자율규제평가위원회가 맡는다.
이번 '자율규제 강령'에 대형 게임사인 3N이 앞장서 화답했다. 넥슨과 넷마블은 자사 게임안에 '자율규제 강령'을 적용하고 있고, 엔씨소프트도 올해 12월 이전까지 모든 게임에 반영키로 했다.
이런 가운데 게이머들은 커뮤니티를 통해 "어차피 낮은 확률을 공개하는 건 의미가 없다", "가챠(랜덤박스형 아이템 뽑기 시스템)를 버리려야 할 때"라며 게임사들에게 확률형 아이템이 아닌 새로운 수익 모델 창출을 주문하고 있다.
전문가들도 "게임업계가 콘텐츠의 본질에 집중하면서도 새로운 수익모델에 대한 꾸준한 고민이 필요한 때"라고 조언한다.
김정태 동양대 게임학부 교수는 뉴스투데이와의 통화에서 "뒤늦은 감은 있지만 게임협의 자율규제 강령은 꼭 필요한 조치"라면서 "자율규제 강령에 담긴 내용이 그대로 실행된다는 전제 하에 이번 조치는 게임사와 게이머간 신뢰 회복을 위한 첫걸음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평했다.
이어 "새로운 소재를 발견해 비즈니스 모델 다변화 시도에 꾸준히 투자해야 한다"면서 "이용자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이상적 스토리 라인을 만들고 플랫폼과 장르 다변화를 꾀해야 한다. 웹소설, 웹툰, 드라마 등 다양한 미디어 콘텐츠와의 융합을 통해 수익 창출을 꾀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덧붙였다.
김영진 청강대 게임학과 교수는 "이번 자율규제 강령 발표를 기점으로 오랜 기간 영업 비밀 등을 이유로 들며 정보 공개를 회피하던 게임사들이 얼마나 구체적이고 실질적인 후속 조치를 내놓을 지에 주목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확률형 아이템 논란의 본질은 국내 게임 산업의 핵심 비즈니스 모델이 여전히 이십여 년 전에 머물러 있다는 점"이라면서 "게임을 무료로 보급하고 아이템을 통해 수익을 얻는 모델로 몸집을 불려온 과거를 청산해야 한다"고 짚었다.
김 교수는 또 "하루가 다르게 진화하는 게임 시장 자체와 이용자들의 기대치를 고려해 끊임없이 새로운 시도를 해야 할 때"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