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적지 답사에서 만난 전쟁영웅들 ⑥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백선엽 장군의 요청으로 증원된 마이캘리스 대령의 미 27연대는 인민군의 전차 접근로인 진목정 북쪽에 배치되어 18일에는 남하하는 T-34 전차 2대와 SU-76 자주포를 파괴하고 100여명을 사살하는 전과를 올렸다.
또한 21일에는 야간침투를 시도하는 북한군 105땅크사단의 전차 7대와 자주포 3대, 기타 차량들을 모든 화포와 전차를 총동원한 끝에 격파하여 5시간만에 격퇴시켰다.
당시 미군은 북한군이 오리라 추정되는 길목에 지뢰를 묻지 않고 보란 듯이 땅위에 올려놓았는데, 이들의 예측대로 이곳으로 온 북한군 전차 행렬 중 선두 전차가 지뢰제거를 위해 정지한 틈을 타 3.5인치 바주카 및 전차포로 총공격을 가했다.
특히 전날 투항한 북한군 포병대대장 정봉욱 중좌(훗날 논산훈련소장, 초대 3사관학교장, 7사단장 역임, 소장예편)가 적부대의 위치를 알려준 덕에 더욱 효과적인 공격이 가능했다. 미 8포병대대도 약 1600발의 포탄을 사격했고 이외에도 약 2500발의 박격포탄 사격이 실시되었다.
이날 목숨을 걸고 도로 양쪽의 참호에서 치열한 저지전을 펴며 전차전을 볼 수 있었던 참전자들은 북한군 T-34전차 및 SU-76과 미군 27연대를 지원하던 73전차대대 C중대의 M26 퍼싱이 야간에 맞교환한 포탄들이 마치 볼링장 핀을 향해 질주하는 볼링공을 연상시켜 '볼링장 전투'로 불렀는데, 이는 한국전쟁 초반에 일어난 가장 유명한 전차전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의 중요성은 북한 인민군 역시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필사적으로 넘어오려고 하였다. 때문에 자연스레 전선이 피아 혼재되었고, 전투 양상도 굉장히 치열하게 전개되었다.
백선엽 장군은 다부동 전지역에서 피아 백병전은 기본이었고, 소총을 쏘기도 어려워 상호간에 수류탄을 주고 받는 수류탄전도 수시로 치루어졌다고 말했다. 나중엔 대인수류탄이 모자라서 대전차용까지 던졌으니 당연히 병력 손실이 많을 수 밖에 없었다.
전투가 끝난 후 피해상황 집계결과, 고지전에서만 아군은 2300명, 적군은 5690명의 전사자가 났고, 치열했던 다부동 전투 전체로 종합하면 유엔군은 1만명, 북한국은 2만4000여명이나 전사상자가 발생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선엽 장군은 강의를 끝내며 “우리는 당시 얼마나 시체가 많았는지 국군 1사단이 미군에 다부동지역을 인계하고 이동하게 되었을 때, 미군 병사들이 ‘저 위에 있는 시체들을 모두 파묻기 전엔 지역을 인수하지 않겠다’라 말해 당황했었다”라고 한마디를 덧붙였다.
또한 백 장군은 다부동 전투 승리에 대한 자긍심에 차 있었지만, 그때 운명을 달리한 우리 전쟁영웅들의 명복을 빌며 체험담 강의를 마무리했다. (다음편 계속)
◀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