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투분석] 뒤늦게 반도체 시장에 뛰어들려는 한화…승부수는 '증착 장비'
반도체 장비 진출은 국내 대기업 중 유일 /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 의중 작용한 듯 / 이미 반도체 분야 전문가들 채용 진행 중 / 대기업간 '新 반도체 협력구조' 구축 기대
[뉴스투데이=김보영 기자] 한화그룹이 글로벌 반도체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이미 삼성, SK, LG 등 국내 주요 그룹과 글로벌 강자들이 치열한 접전을 벌이는 가운데 한화가 후발주자로 나선 것이다. 승부수는 바로 반도체 장비다.
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한화는 반도체 장비 중 증착 공정과 관련한 장비 사업 진출을 놓고 복잡한 계산기를 두드리고 있다. 증착은 반도체 원재료인 실리콘 웨이퍼에 분자 또는 원자 단위의 아주 얇은 박막을 균일하게 입히는 과정이다.
한화 관계자는 "구체적 시기는 정해지지 않았으나 반도체 장비 관련 사업을 검토 중"이라며 "아직 초기 단계"라고 했다.
이같은 설명과 달리 내부에서는 이미 반도체 장비 관련 사업 진출을 위한 인재 확보에 나선 상황이다. 그룹 핵심 계열사인 한화솔루션은 첨단소재·케미칼 분야 내 NxMD(Next Generation Materials & Devices) 부서에서 반도체 기술검토 및 사업개발 인력을 모집 중이다. NXMD는 한화솔루션에서 차세대 전자 재료와 부품 분야의 신사업을 발굴·추진하는 조직으로, 현재 반도체 분야에 5년 이상 몸 담은 전문가들을 채용하고 있다.
이처럼 한화가 빠르게 반도체 장비 사업을 진행하려는 데엔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의 장남인 김동관 한화솔루션 대표의 의중이 많이 반영됐을 것이란 게 업계의 시각이다.
김 대표는 한화솔루션의 대표이자 그룹 지주사인 ㈜한화의 전략부문장을 겸직하며 미래먹거리 발굴을 위한 과감한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그런 만큼 이번 신사업 진출에도 김 대표의 적극적인 의견 개진이 있었을 것이란 분석이다.
한화의 반도체 시장 진출이 주목되는 이유 중 하나는 장비이기 때문이다.
현재 국내 주요 대기업들 중 반도체 장비로 산업군에 진출한 곳은 없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종합반도체기업(IDM)이고, 실리콘웍스는 팹리스(반도체 설계 전문기업), DB하이텍은 파운드리(반도체 제조·생산 전문기업)다. 중견기업을 중심으로 장비제조 기업이 있으나 대기업 중에서는 한화의 이번 진출이 유일하다.
한화는 장비 산업 진출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한화가 계획하고 있는 장비는 증착 공정에 쓰일 장비인데, 이 공정에 사용되는 질산을 이미 생산하고 있다. 게다가 지난 4월 질산 생산량을 대폭 늘리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한화는 오는 2023년까지 전남 여수지역에 질산 공장을 건설해 질산생산량을 현재 12만t(톤)에서 52만t으로 크게 확대한다. 이는 질산의 수요 증가 이유도 있지만 한화가 본격적으로 반도체 장비 사업을 단행하겠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업계에서는 질산 생산을 확대하면서 단순히 생산량이 늘어나는 것뿐만 아니라 반도체 장비 공정에 쓰일 자체적인 소비량을 확보하게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궁극적으로는 한화가 만들어 낼 장비를 삼성과 SK에서 사용할 수 있을지 관심을 모으고 있다. 반도체 제조 기업들이 국내 기업이 공급하는 장비를 사용한다면 국내 반도체 밸류체인 구축을 더 공고히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지난달 13일 ‘K반도체 전략 보고’에서 삼성과 SK가 글로벌 반도체 패권경쟁을 위한 대규모 투자를 예고한 상태다. 오는 2030년까지 삼성과 SK는 각각 171조원, 150조원을 반도체 산업을 위해서 투자할 예정이다. 글로벌 반도체 제조기업들 역시 천문학적인 금액의 투자계획을 밝힌 상태로, 이 중 대부분 투자가 반도체 인프라, 설비를 위해 투입되면서 글로벌 장비업계의 호황도 예상된다.
국제반도체장비재료협회(SEMI)의 세계 반도체 장비시장 통계(WWSEMS)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반도체 장비 매출액은 712억달러(한화 약 79조4592억원)로, 전년 598억달러 대비 19% 증가했다.
그러나 현재 반도체 장비는 대부분 해외에 의존하는 실정이다. 반도체 시장 조사기관 VLSI 리서치 자료에 따르면 세계 반도체 장비 시장에서 가장 높은 점유율을 차지하고 있는 기업은 미국 어플라이즈머티어리얼즈(Applied Materials)이며, 네덜란드 ASML와 일본 도쿄일렉트론, 미국 램리서치 등이 그 뒤를 바짝 쫓고 있다.
노광공정 장비를 제작하는 ASML을 제외하면 나머지 3개의 기업이 증착 공정 장비의 대부분을 생산한다. 반도체 전공정에서 증착 장비는 다소 활발하게 국산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여전히 어플라이즈머티어리얼즈 등 4개 기업이 전 세계 반도체 장비 공급의 60% 이상을 차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일각에서는 한화가 기술력을 바탕으로 반도체 증착 장비를 만들어 낸다면 충분히 국내 반도체기업들에 공급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한다.
한 반도체 전문가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국내 대기업 중 한 곳인 한화가 반도체 장비 시장에 도전한다는 것 자체가 의미있다"며 "국내 장비시장의 경쟁력이 한단계 올라갈 것"이라고 했다.
이어 "한화가 실제로 장비를 생산하게 되면 언젠가는 국내 주요 반도체 업계에도 공급할 수도 있을 것으로 보고있다"며 "대기업간 새로운 반도체 협력구조를 구축할 수 있다"고 기대를 드러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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