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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의 직업군인이야기(115)

군내 사조직 병폐소동의 진실 ②필자 동기회는 오히려 동기애 다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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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입력 : 2021.07.13 13:55 ㅣ 수정 : 2021.07.14 14:35

김영삼의 본격적인 숙군시 발각된 ‘알자회’는 규모가 작고 직급도 낮아 가벼운 근신 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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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필자가 1989년에 다니던 진해의 구 육군대학과 우측, 현재 자운대에 있는 육군대학 전경 [사진=정규 제45기 육군대학 졸업앨범/김희철]

 

[뉴스투데이=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나무위키 사전에 따르면 다음과 같이 알자회를 설명하고 있다.

 

알자회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992년 11월13일의 신문기사들이다. 그때 군당국의 발표에 따르면 알자회는 1983년 당시 대위였던 육사 34기생들이 결성하여 육사 44기생까지 기수별로 10여 명씩 모두 120여 명을 회원으로 두고 있다.

 

알자회가 외부에 드러나게 된 계기는 1992년 당시 육사39기생들이 알자회 회원들을 동기회에서 제명하고 상부에 인사조치를 건의한 것이다. 이어서 동월 16일에는 육사 40기생들이 알자회원들을 동기회에서 제명하였다.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한지 11일째인 1993년 3월8일부터 ’군내의 사조직 병폐 소동‘중에 가장 중심에 있던 ’하나회‘에 대한 본격적인 숙청에 들어갈 당시에 ‘알자회’도 거론되었다.

 

하지만 그 규모가 워낙에 작았고 회원들의 직급도 낮았기 때문에 근신 정도의 가벼운 처분이 내려지는 것으로 끝났다. 

 

당시 국방부의 공식적 입장은, “알자회는 이미 해체되었으며, 비선에 대한 인사개입은 존재하지도 않고, 일부 인원이 잔존하였으나 현재로선 문제가 없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군내 사조직을 결성하는 것은 심각한 위헌행위이며, 하나회가 어떤 병폐를 저질렀고, 어떤 과정을 통해 혁파되었는지를 본다면 알자회 역시 그 사태가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하나회 관련 내용은 다음편에서...)  

 

결국, 이 사건의 파문으로 인해 1993년육군이 최초로 진급심사과정을 공개하였고 군 차원에서 잔존 알자회 회원을 전원 숙청하기로 결정하여, 알자회 관련 장교들의 진급을 영구누락시키고 해당 계급에서 전역 조치 또는 진급이 어려운한직으로 배치하는 강수를 두었다.

 

허나 필자가 육군대학을 시끄럽게 만들었던 ’알자회‘같은 군내의 사조직 문제로 고민했던 시기는 이미 김영삼 정부의 ’하나회‘ 숙청 4년 전인 1989년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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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좌측 육군대학 마크와 기념코인, 우측은 필자가 다니던 육군대학 강당에서 학생장교들이 행사하는 모습 [사진=정규 제45기 육군대학 졸업앨범]

 

■  필자의 동기회는 사조직 병폐 소동으로 오히려 동기애를 다지는 계기

 

김영삼 대통령이 ’군내의 사조직 병폐 소동‘중 가장 중심에 있던 ’하나회‘에 대한 본격적인 숙청에 들어갈 때가 되어서야 필자는 그 사조직의 정확한 실체를 알게 되었다.

 

사실 하나회 숙청소동이 있었지만 그들의 면모를 살펴볼 때 부정적인 면만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그들 중 일부는 후배들에게서 무한한 존경을 받기도 했다. 

 

왜냐하면 그들은 차후 보직과 진급을 보장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부하들을 불필요하게 괴롭히거나 뇌물을 받는 행위도 없었고, 상급부대의 부당한 지시에 과감하게 이의를 제기하는 등 자신감 넘치는 탁월한 리더십으로 부대 발전에 기여한 면도 일부 있었다.

 

한편 육군대학에서는 새로운 인연을 쌓아가기 위해 같은 학급에서도 조별, 대각선, 열과 오 등 가능한 많은 사적모임을 만들었다. 

 

따라서 육군대학 교육과정에서도 상호 교류하며 새로운 사조직을 만들고 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에 1989년 육군대학에서 벌어진 군내의 사조직 병폐 소동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이러한 새로운 인연을 쌓아가기 위해 만나는 모임들을 볼 때 서울에서 들려온 선후배들의 사적모임 회원들을 동기회에서 제명을 했던 소식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생도시절 사관학교를 그만둔 사람들도 본인이 원하며 동기회에 포함시켜 막역지우(莫逆之友)의 정을 나누고 있는 데 꼭 이렇게 제명까지 필요한가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전체 동기회를 열기 전에 일부 동기들과 상의하며 의견도 수렴한 결과로 우리 동기회에서는 다른 선후배 기수처럼 제명까지는 안하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당시 동기회 간부직을 수행했던 필자에게 심각하게 언성을 높이며 제명을 강조했던 일부 동기생들을 설득하기 시작했다. 

 

가장 적절한 논리는 “같은 고향 선후배와 중고교 동창 등의 모임도 어떻게 보면 사조직이라고 할 수 있고, 게다가 모두가 알고 있는 럭비, 축구부 출신들의 모임은 오히려 더 심각한 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었다”고 이해를 시켰다.

 

불행 중 다행으로 사조직 명단을 확보하여 사조직에 포함된 동기들의 면모를 살펴보니 후배기수에서 “편파적인 인사를 통해 그들만의 혜택을 누리고 있다”는 격앙된 논쟁에 대상이 될 만한 사람은 전혀 없었다는 것이 설득력이 있었다.

 

결과적으로 군내의 사조직 병폐 소동은 심각하게 언성을 높이던 동기생부터 각개 격파식으로 이해를 시키자 점차 잠잠해지기 시작했고 전체 동기회도 개최할 필요 없이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상태를 돌이켜보면 격앙된 논쟁을 통해 사조직 동기생들을 제명시켰던 선후배 기수에서는 사조직에 해당된 사람이 4성 장군까지 진급하는 웃지 못할 일이 벌어져 당시의 제명 소동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반면에 필자의 동기들은 아직도 상호 교류를 친밀하게 나누며 각종 애경사에 적극 참여하는 등 40년의 우정을 나누고 있다. 

 

결국 군내의 사조직 병폐 소동의 진실은 아무것도 아니었고, 필자의 동기회는 이 소동을 통해 오히려 동기애를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다음편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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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철 한국안보협업연구소장 프로필▶ 군인공제회 관리부문 부이사장(2014~‘17년), 청와대 국가안보실 위기관리비서관(2013년 전역), 육군본부 정책실장(2011년 소장진급) / 주요 저서 : 충북지역전사(우리문화사, 2000), 비겁한 평화는 없다 (알에이치코리아,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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