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는 충격적인 일이다. 왜냐하면 ESG경영 평가는 ‘투자의 핵심기준’으로 주목받고 있기 때문이다. ESG경영이 단순한 윤리경영이나 사회적 가치경영의 확장판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기업의 이익을 증진시키는 경영전략이 될 것이라는 게 글로벌 화두이다.
따라서 삼성전자가 B등급이라는 것은 장기적으로 이익을 증진시키기 어려운 기업이고, 투자자들에게도 매력 없는 대상이라고 공언한 것이나 다름없다.
현실은 다르다. 삼성전자는 자타가 공인하는 전도유망한 글로벌 톱 랭커에 포함된다. 메모리 반도체의 글로벌 최강자이면서 애플이나 TSMC와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다.
메모리 분야뿐만 아니라 시스템반도체와 같은 비메모리분야에서도 막대한 미래투자를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가 전도유망하다는 ‘가치판단’은 시장전문가는 물론이고 ‘주린이’도 공유하는 ‘글로벌 상식’이다.
하지만 국내에서 가장 신뢰할만한 ESG평가기관으로 알려진 기업지배구조원이 정면으로 반기를 든 셈이다. 투자가치가 없다고.
■ 기관투자자들의 요청으로 ESG 평가를 연간 4회로 늘려...그 결과, 반년 만에 삼성전자 등급은 폭락
기업지배구조원의 설명을 들어보면 그 심각성을 실감할 수 있다.
기업지배구조원 관계자는 본지와의 통화에서 “ESG평가를 분기별로 하는 이유가 뭐냐”는 질문에 대해 “원래 연 2회 평가를 했으나 재작년부터 연 4회(분기별) 평가로 변경됐다”면서 “상·하반기 두 차례의 등급산출로는 투자의사 판단이 지체된다는 투자자들의 의견을 반영해서 평가 빈도를 늘렸다”고 밝혔다.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와 같은 기관투자자들이 평가빈도를 늘려달라고 주문했다는 설명인 것이다.
기업지배구조원이 1년에 4차례 발표하는 ESG 등급이 기관투자자들의 선택에 갈수록 중요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추측할 수 있다. 그러니까 평가 횟수를 늘려달라고 한 것이다.
하지만 기관투자자나 외국인들이 이번 삼성전자의 ESG등급을 투자기준으로 삼을 가능성은 희박해 보인다. 그렇다면 삼성전자 사례는 기업지배구조원의 평가 신뢰도를 갉아먹는 요소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시장현실을 봐도 그렇다. 삼성전자 주식의 외국인 보유율은 14일 기준으로 53.46%이다. 외국인이 매도하는 추세이지만, ESG평가 때문이라는 분석은 없다.
코로나19 위기가 해소국면에 접어들면서 IT수혜주였던 삼성전자에서 관광 등 서비스업종 주식으로 빠져나간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해석이다. 삼성전자의 본원적 매력은 감소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더욱이 배당성향이 강한 삼성전자우는 외국인 보유율이 여전히 90%안팎에 달한다.
■ ESG평가가 왜 시장과 따로 놀지?...G(지배구조)부문 가중치가 원인
그렇다면 왜 기업지배구조원은 이처럼 시장과 따로 노는 평가결과를 도출했을까.
통합등급은 환경(E), 사회(S), 지배구조(G) 등급을 합산해서 산출한다. 삼성전자의 경우 E는 A등급, S는 A+등급, G는 C등급을 받았다. 수치로 환산하면 3등급, 2등급, 5등급을 받은 셈이다. 이를 단순 산술평균하면 3.7등급 정도이다. 통합등급은 A 혹은 B+ 정도로 나오는 게 맞다.
하지만 5등급에 해당되는 B로 평가됐다. 그 이유는 가중치에 있다.
기업지배구조원 관계자는 “우리 평가모델에서 E,S,G는 동일하게 반영되지 않고 G의 가중치가 가장 높다”면서 “G가 낮으면 E,S가 높아도 불리해진다”고 말했다. 그는 “또 업종별로 G의 가중치가 변한다”면서 “업종별 G의 가중치는 공개할 수 없는 사항”이라고 설명했다.
결국 삼성전자가 굴욕적인 통합 B등급(5등급)을 받게 만든 화근은 G부문의 C등급(6등급)이다.
■ G부문 평가는 누가 좌우?...사법부와 관료권력의 ‘가치판단’이 상당한 영향력 행사
그 G는 누가 좌우하는 것일까. 1차적으로는 최고경영자(CEO)와 임직원의 책임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정치권력, 사법권력, 관료권력 등의 ‘가치판단’의 영향력 아래 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기업지배구조원은 지난 4월 발표한 올 1분기 등급 평가에서 삼성전자의 G부문 등급을 기존의 B+에서 B로 한 단계 하향 조정했다. 지난 1월 최순실 국정농단 항소심 재판에서 이재용 부회장이 뇌물 공여 등의 혐의로 징역 2년6개월을 선고받아 법정 구속된 데 따른 조정으로 알려졌다. 실형을 선고받은 게 치명타가 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는 역으로 재판부가 집행유예를 선고했다면 G부문 등급이 하락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박근혜 정부 당시 이 부회장의 뇌물공여 혐의는 수년 동안 지속돼온 G부문의 리스크였지만, 지배구조원은 B등급을 주지 않았다. 이 부회장이 2심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았던 시기에 삼성전자의 G부문 등급은 B+였다.
사법부의 가치판단이 삼성전자의 G부문 등급에 직접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셈이다.
지난 13일 발표된 올 2분기 평가에서 삼성전자의 G부문 등급은 B에서 C로 또 다시 한 계단 내려갔다. 공정거래위원회가 지난달 24일 삼성전자·삼성디스플레이·삼성전기·삼성SDI 등 전자 계열사 4곳과 삼성웰스토리에 과징금 2349억원을 부과하고 최지성 전 삼성 미래전략실장을 검찰에 고발한 데 따른 G 부문 조정이다. 삼성전자와 주요 계열사가 삼성웰스토리에 사내급식 일감을 몰아줬다는 게 죄목이다.
하지만 여론은 엇갈린다. 삼성 측은 직원들에게 최상의 급식을 제공하기 위해 삼성웰스토리를 선택했다고 항변하고 있다. 블라인드와 같은 직장인 익명앱에서는 “삼성 구내식당 식사가 최고”라는 여론이 더 많이 발견된다. 삼성웰스토리가 다른 급식회사보다 양질의 식사를 제공한다는 이야기이다.
따라서 공정거래위의 ‘가치판단’이 삼성전자의 G부문 등급 추가하락에 결정적 변수가 됐다.
중요한 것은 사법부나 관료시스템은 삼성전자 ESG평가와 글로벌 시장이 따로 논다고 해서 타격받을 일이 없다는 점이다. ESG평가기관만 곤란해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