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성 조현준의 민첩한 ‘수소비전’, 바이든 ‘인프라 예산’ 통과로 빠른 물살 타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역점을 둬온 인프라 예산 중 1조 달러 규모가 지난 10일(현지시간) 미 상원에서 통과됨에 따라 ‘글로벌 수소경제’가 탄력을 받을 것으로 관측된다.
민주당과 공화당 상원의원들이 초당적 협력을 통해 가결한 이번 예산에는 수소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대규모 예산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지난 2일 블룸버그 보도에 따르면 1조달러 인프라 예산(워싱턴포스트는 1조 2000억 달러로 보도)에는 4개 이상의 수소 허브를 설립하는 데 80억달러를 지원하는 내용이 포함됐다.
■ 바이든의 1조 달러 인프라 예산, 80억 달러의 수소 허브 예산과 87억 달러의 탄소포집활용 예산 포함돼
이에 따라 태양광, 풍력, 전기차, 친환경 원자력 등 다른 친환경 이슈에 비해 주목도가 떨어졌던 수소경제가 글로벌시장의 화두로 재부상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유진투자증권 한병화 연구원은 지난 5일 “바이든의 1조달러 예산에 따르면 4개 이상의 수소산업허브를 조성하기 위해 2022년~2026년까지 80억 달러의 연방정부 예산이 지원된다”면서 “이는 전기차 충전 인프라용 75억 달러보다 많은 금액”이라고 설명했다. “이번 수소 지원규모는 바이든 정부와 미 정치권이 수소산업을 얼마나 중요하게 인식하는지를 확인시켜줬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뿐만 아니다. 지난 4일 대한무역진흥공사(KOTRA)의 시카고무역관 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는 청정수소 기술 개발에 525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수소에너지 그 자체는 이산화탄소를 포함한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청정에너지이다. 발열량도 석유의 3배에 달한다. 하지만 현재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대량 발생시킨다.
따라서 바이든 행정부의 수소경제 지원의 핵심은 ‘청정수소’기술 개발 및 생산이라고해도 과언이 아니다. 미국은 고효율 에너지인 수소를 연간 1000만톤 정도 생산하고 있지만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 친환경에너지를 생산하기 위해서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딜레마인 것이다.
해결책은 있다. 수소는 크게 ‘그레이 수소’, ‘블루 수소’, ‘그린 수소’ 등으로 나뉘는데 그 중 후자의 2 종류만 생산하면 된다.
그레이 수소는 석유화학공정에서 부생물로 생성되는 부생수소나 천연가스에서 추출한 수소를 지칭한다. 상대적으로 생산비용이 낮지만 청정에너지를 만들기 위해서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배출한다는 자기모순을 갖고 있다.
블루 수소는 그레이 수소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뽑아내 지하에 저장하는 방식이다. 이는 ‘탄소포집저장(carbob capture and storage)기술’을 도입해야 하는데 고비용이라는 문제점이 있다. 그레이 수소보다 비용이 높아진다.
그린 수소는 재생에너지로 만든 전력을 이용함으로써 생산과정에서 탄소배출이 전혀 없도록 하는 에너지원이다. 가장 친환경적이다. 하지만 생산비용이 높아서 상용화가 어려운 실정이다.수전해 효율성을 높여서 생산비용을 줄이는 게 관건이다.
유진투자증권의 분석에 의하면, 바이든의 80억 달러의 수소지원 예산중 10억달러는 수전해장치 업그레이드 및 상용화에 투자된다. ‘그린수소’ 생산기술을 고도화하는 목적이라고 볼 수 있다.
또 80억 달러와 연계된 예산으로 87억 달러 규모의 탄소포집/활용 항목이 있다. 카본제거 35억달러, 카본스토리지밸리데이션과 테스팅 25억달러, 이산화탄소 운송인프라 파이낸싱 22억달러이다. 이런 항목들은 탄소포집저장(carbon capture and storage)기술을 고도화하기 위한 것이다. 부생수소 생산과정에서 나오는 이산화탄소를 뽑아내서 지하 등에 저장하기 위한 일련의 기술들이다. 즉 ‘블루 수소’ 생산기술들이다.
KOTRA에 따르면, 미국 에너지부가 집행하려는 5250만달러 규모의 청정수소 기술개발 지원금은 그린 수소 기술 개발에 집중된다. 물에 전력을 공급해 수소를 분리해 내는 ‘수전해 제조’기술 개선에 역점을 두고 있다.
■ 청정수소 생산 기술 경쟁 격화...조현준 회장의 최대 경쟁자는 바이든 대통령 지원받는 미국 기업들?
미국이 움직이면 글로벌산업의 판도는 출렁이기 마련이다. 전기차 시대가 당초 예상보다 빠른 속도로 현실화되듯이 글로벌 수소경제 전쟁도 빠른 물살을 탈 가능성이 있다.
수소 생산에 관한한 국내 최대 강자는 효성그룹이다. 조현준 회장은 ‘수소 밸류체인’을 구축 중이다.
우선 효성중공업은 세계 최대 산업용 가스전문기업인 린데그룹과 손잡과 합작법인 린데하이드로젠을 설립, 효성화학 울산공장 내에 세계최대 액화수소 공장을 2023년초까지 완공할 예정이다. 그 때가 되면 연간 1만 3000톤의 액화수소 생산이 가능해진다. 이는 10만대의 수소 차량에 공급될 수 있는 규모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연간 3만9000톤까지 생산량을 늘려나갈 계획이다.
국내에 120여곳의 수소충전소도 설립한다. 효성중공업이 생산한 액화수소의 유통은 또 다른 합작법인 효성하이드로젠이 담당한다. 효성첨단소재는 세계최강의 탄소섬유 기술을 토대로 수소연료탱크를 생산한다.
물론 이 중에서 근본은 액화수소 생산이다. 경제성과 친환경성이 높은 액화수소를 대량생산할 수 있어야 수소차도 만들고, 수소충전소도 더 많이 필요해진다. 수소가 없는 데 충전소나 연료탱크를 만들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런데 수소경제가 2050탄소중립을 추구하는 글로벌 경제체제 속에서 강력한 대안 에너지로 부상하려면 청정액화수소를 대량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생산과정에서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그레이 수소는 화석연료 시대를 대체할 명분이 떨어지기 때문이다.
조현준 효성 회장은 지난 6월 울산에서 열린 액화수소 플랜트 기공식 및 비전 선포식에서 “수소 에너지는 인류의 미래를 바꿀 에너지 혁명의 근간이다”면서 “지속적인 투자를 통해 수소 에너지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이끌겠다”고 밝혔다.
조 회장의 이 같은 비전이 실현되려면 갈 길이 멀다. 효성중공업이 린데와 손잡고 양산하려는 수소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그레이 수소 계열이다. 이는 미국의 현실과도 비슷하다.
효성중공업이 액화수소 대량생산체제를 완비하고 나면, 블루 수소나 그린 수소 같은 청정수소 대량생산 기술을 개발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는 미국 기업들이 조 회장의 최대 경쟁자가 될 것이다.
■ 빌 게이츠는 수소의 경제성에 의문 제기하며 차세대 원자로에 몰두...조현준 비전은 게이츠가 지적한 경제성 한계 극복해야
그러나 블루 수소나 그린 수소를 대량생산하기 위해서는 기술적 난점뿐만 아니라 고비용 문제도 해결해야 한다.
빌 게이츠는 자신의 저서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에서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저렴한 수소를 양산하게 되면 전력 저장등과 관련된 다른 아이디어들을 쓸모없게 만들 것”이라면서도 “탄소를 배출하지 않고 수소를 만들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 단계에서 수소의 비용은 휘발유의 3배에 육박한다는 게 게이츠의 주장이다.
게이츠는 친환경 원자력 발전소를 대안이라고 본다. 기존 원자력 발전소에서 나오는 핵폐기물 처리 문제만 해결하면 원자력이 최고의 탈탄소 에너지원이 된다는 것이다. 그는 그 돌파구로 핵폐기물을 태워서 전기를 생산하는 차세대 원자로를 제시한다.
그리고 스스로 2008년 창업한 ‘테라파워’에서 이러한 차세대 원자로를 이론적으로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한다. 기존 원자로와 차세대 원자로가 공존하면 원자력 발전소는 핵폐기물이라는 유일한 공포를 제거하면서 청정 에너지를 생산하게 된다는 구상이다.
차세대 원자로라는 게이츠의 에너지 패러다임 전환이 실현될 경우, 수소경제는 상대적으로 약화될 수도 있다. 핵폐기물 공포없는 원자력 발전을 통해 전기를 양산하고 그 전기를 저장하는 배터리 기술을 고도화한다면, 전기차가 도로를 점령하는 시대가 올 수밖에 없다.
조현준의 수소비전과 게이츠의 테라파워 비전 중 어느 쪽이 경제성 논리를 극복해 시장을 선점해나갈지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인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