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투데이=문성후 ESG연구소 소장] ESG는 사회적 책임과 종종 겹친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1760년까지 거슬러 올라가 존 웨슬리(John Wesley)의 설교 한 구절이 인용되곤 한다. 그는 ‘돈의 사용(The Use of Moeny)’이라는 주제에서 ‘돈은 최대한 벌어라, 다만 양심을 팔거나, 네 이웃의 부나 건강, 우리가 사는 세상에 해를 끼치면서 돈을 벌어선 안 된다’라고 말하였다. 서양에서 자본주의의 해악은 한국이 경험한 것보다 훨씬 잔인하고 냉혹하다. ‘Cash is King’의 논리는 서양의 삶 곳곳에 스며들어 있다. 그들의 ‘자본주의’는 워낙 역사도 길고 부작용도 많다 보니 일찍부터 정반합의 논리로 사회적 책임이 제기되어왔다.
반면에 우리는 아직 자본주의 폐악을 서양만큼 깊이 인식하지 못한 상태이다. 그렇다고 반드시 끝까지 경험해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더 나빠지기 전에 유턴해서 균형 잡는 서양을 벤치마킹할 기회를 ESG는 한국에게 주고 있다. 아주 많이 아팠던 환자가 어떻게 건강을 되찾는지 보고, 아직 위 중증까지 이르지 않은 한국이 최악을 예방할 기회가 ESG이다.
역설적으로 ‘자본(資本)’ 아닌 ‘인본(人本)’이 가치관인 한국은 ESG의 수용과 실천이 더 쉬울 수 있다. ESG는 ‘인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ESG 경영이 워낙 열풍이다 보니 한국 기업들에게는 학습의 시간이 적었다. 해외 거대 기관투자가와 선진 기업들은 이미 오래전부터 물을 부글부글 데워 비등점에 도달했을 때 ESG 뚜껑을 열었다. 요리는 거의 다 됐고 이제 어떻게 각자 알아서 먹을지만 결정하면 되는 단계였다. 한국기업들은 그럴 틈도 없었다. ESG가 한국 언론에 많이 노출된 시기를 2020년 9월경으로 본다. 그전까지는 코로나 사태로 정신이 없었다. 한국기업들은 ESG라는 용어를 접한 게 1년 남짓한데 선진 기업들과 어깨를 맞대고 ESG 경영 전략 수립, 실행, 보고, 평가까지 완벽히 준비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거기에 K-ESG까지 욕심을 부리고 있다.
ESG는 우리가 시작한 게 아니다. 국제사회에서 UN을 중심으로 범국가적인 약속(commitment)을 하였고, 이미 그 단계에서 UN PRI 등에서 볼 수 있듯 서구 금융기관들부터 깊숙이 관여해왔다. 서구 ESG 전문가들은 말한다. 이미 오래전부터 ESG는 있었던 것이고, 이제 투자가들이 본격적으로 필요성을 느껴 강하게 드라이브를 걸고 있다라고 말이다. 우리는 도대체 ESG가 무언데 이렇게 난리냐고 서로 묻고 배우고 있는 형국이다.
한국기업들은 오랫동안 ‘빠른 추격자(Fast Follower)’ 전략을 추구해왔기 때문에 ESG도 그렇게 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틀렸다. ESG는 기초부터 단단히 내재화되어야 한다. 시간이 조금 걸려도 말이다. 당장 한두 해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평가 등급이 마음에 안 들 수 도 있다. 그러나 서구기업들은 이미 계획이 다 있다. 한 예로 기후 위기 대응을 두고 ‘카보노믹스(Carbonomics)’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ESG는 경제적 수익 관점에서 서양이 판을 짜고 있다.
급히 갈수록 남의 판에 걸려 넘어지기만 한다. ESG는 쉽게 카피하거나 따라잡을 수 있는 기능이나 기술이 아니다. 우리는 급히 쫓아갈 것이 아니라 잠시 숨을 돌리고 다시 한번 되돌아보자. 인도 속담에 ‘눕기 전에 앉아라’라는 말이 있다. 이럴 때일수록 기본에 충실하지.
ESG를 연구하고 있는 필자가 보기엔 ESG는 지금 세상 전부를 말하고 있다. 사람끼리 살면서 같이 사는 지구 환경을 보호하고 싸움 없이 갈등 없이 조화롭게 지내자는 것이 E와 S다. 사람끼리 살려면 서로 지켜야 하는 일정한 질서가 필요하고 그 질서를 어떻게 이룰지를 다루는 것이 G이다. ESG가 오래 갈 것이라고 보는 이유는 ESG란 빠짐도 없고, 겹침도 없이 전문가들에 의해 수십 년간 정련된 ‘공생원칙’이기 때문이다.
이 공생원칙을 어떻게 조그만 기업에까지 투영할 수 있을지 심호흡을 하고 한번 차근차근 들여다봐야 한다. 어차피 ESG는 100m 단거리가 아니고 마라톤이다. ESG를 하는 이유가 지속 가능한 기업 즉 마침표가 없는 기업을 만들기 위한 것이니 ESG도 완성점은 없다. 기업이 살아있는 한, 해야 하는 것이 ESG이다. 앞으로 새로운 용어들이 나와도 개의치 말자. ESG의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영어 단어들이 재조합될지언정 의미는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무결(無缺)한 공생원칙을 만들기 위해 ESG에 백 개가 넘는 커버리지를 담아 놓았기에 여기서 당분간 벗어나긴 어렵다. 새로운 경향에 너무 휘둘리지 말자.
농구에서 자유투는 무척 중요하다. 한 번에 넣어 득점해야 하기 때문이다. ESG 경영을 실천한다는 것은 매번 자유투를 넣는 것과 같다. 아무리 연습을 많이 했어도 자유투 백 퍼센트 성공은 확답할 수 없다.
예를 들면 환경 설비를 하나 갖다 붙여도 그게 바로 환경 저감이 될지 장담하지 못한다. 이론상 설계상 완벽하다 하더라도 대기(大氣)는 주변 지형·지세에서 어떤 영향을 받을지 모르는 노출 환경이기 때문이다. 지배구조를 예를 들면 스스로 아무리 건전한 지배구조라고 자신해도 갑자기 외국 행동주의 펀드가 나타날지 모른다. ESG는 생각한 대로 전부 통제되지 않는다.
ESG는 무얼 하나 해도 그 결과가 반드시 계획한 대로 오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신중해야 한다. 농구선수들은 자유투를 던지기 전에 심호흡하고 공도 한 두 번씩 튕겨본다. ESG를 잘하고 싶다면 잠시 숨을 고르자. ESG에도 쉼표가 필요하다.
◀문성후 소장의 프로필▶ ESG중심연구소 소장, 경영학박사, 미국변호사(뉴욕주), 산업정책연구원 연구교수. '부를 부르는 평판(한국경제신문 간)' 등 저서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