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성후 소장 입력 : 2021.08.23 10:16 ㅣ 수정 : 2021.08.30 09:57
팬오션은 국내 해운업체 최초로 ESG 채권을 발행해 인기몰이
[뉴스투데이=문성후 ESG중심연구소 소장]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하는 산업 중 하나가 운송산업이다. 운송산업은 화석연료를 사용하고 이를 배출하며 장거리를 이동하는 산업이다. 그래서 운송 기업들은 온실가스 배출을 감소하기 위하여 다양한 방안을 모색 중이다. 육상 운송의 경우 온실가스 저감을 위하여 대체 연료 또는 전기 차량의 사용, 최신 저공해 차량 사용, 경로 최적화, 시설의 에너지 절약 및 재활용 등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육상 운송과 해상 운송은 매우 다르다. 해상 운송은 운송 거리와 화물 규모가 워낙 거대하여 육상 운송보다 ESG 우려가 크다. ESG 리스크의 크기가 육상 운송과는 비교되지 않을 정도이다. 단순히 온실가스 저감을 뛰어넘는 리스크들이다.
기업들이 ESG를 도입하게 된 이유 중 사례로 종종 거론되는 사건이 1989년 엑손(Exxon) 발데스호 사건이다. 1989년 3월, 유조선 엑손 발데스호는 약 2억ℓ의 원유를 싣고 발데스 석유 터미널을 출항, 워싱턴으로 향하였다. 3시간 뒤 엑손 발데스호는 암초에 부딪혀 좌초되었고, 자그마치 4,200만ℓ나 되는 원유가 프린스 윌리엄 해협에 유출되었다. 엑손 측은 기름을 태워 없애거나 오일펜스를 설치하여 기름의 확산을 막았다.
그러나 며칠 후 폭풍이 불어, 그 바람에 엄청난 양의 기름이 외딴 해안으로 밀려갔다. 결국 바다 새와 수백 마리의 바다표범이 몰살됐고, 인근 해양 생태계는 파괴되었다. 지역 어업이 입은 손실은 측정 불가능한 정도였다. 환경오염, 생태계 훼손, 지역 사회 파괴 등 해운 사고가 가져다준 폐해는 이루 말할 수 없이 거대했다. 해운 산업이 ESG를 다른 어떤 산업보다 강화해야 하는 이유는 리스크 관리 때문이라는 점이 이미 30여 년 전에 입증되었다.
2019년 글로벌 금융기관들은 ‘포세이돈 원칙(Poseidon Principles)’이라는 프레임워크를 제정하였다. 포세이돈 원칙은 세계 금융기관이 선박 금융 포트폴리오를 책임 있는 환경 행동과 연계하고 국제 해운의 탈탄소화를 장려하기 위한 금융 원칙이다. 본 원칙은 네 가지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기후 정렬의 평가(Assessment of climate alignment)’이다. 본 원칙에 동의하고 서명한 금융기관들은 연간 기준으로 운송 포트폴리오의 탄소 집약도를 측정하고, 확립된 탈탄소화 궤적과 관련된 기후 정렬을 평가해야 한다. 둘째, 책임 의식(Accountability)이다. 서명 금융기관들은 선급 협회 등의 편견 없는 정보를 신뢰해야 한다. 셋째, ‘실행 (Enforcement)‘이다. 서명 금융기관들은 비즈니스 활동에서 포세이돈 원칙을 계약으로써 준수함을 약속해야 한다. 그들은 표준화된 계약 조항을 사용하고 이 요구 사항을 충족하기 위해 고객 및 파트너와 협력해야 한다. 넷째, ’투명성(Transparency)’이다. 서명 금융기관들은 매년 포트폴리오 정렬 점수를 보고해야 한다. 포세이돈 원칙의 핵심도 결국은 엄격한 점검과 규칙 준수를 통한 해운 산업의 리스크 관리이다.
해운업의 리스크들은 ESG 측면에서 보면 가장 심각한 건강과 생명에 관련된 이슈들이었다. 선박이 나포되거나 압류되었을 때, 선박 안에 억류된 선원들의 건강과 안전은 단순히 돈으로 해결되거나 보상될 문제가 아니었다. 지체된 화물 운송은 때로는 촌각을 다투는 중요한 전쟁 구호품일 수도 있었고, 전염병을 진정시킬 백신일 수도 있었다. 흔히 ESG를 착한 경영이라고 하는데 필자가 수차례 강조했듯 ESG는 착한 경영이 아니다.
그 시작은 기업 처지에서는 방어해야 하는 리스크들이었기에 ESG를 때로는 계륵이라고 부르기도 했을 정도이다. ESG는 어떤 산업이든 리스크로 나타나기 시작한다. 해운사들에게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ESG 이전부터 해운 산업은 기후에 의한 영향을 무척 많이 받는 산업이었다. 해운 산업은 태풍, 해일, 낙뢰, 폭설 등 이상 기후에 가장 민감한 산업이었다. 그런데도 그간 해운업은 국내의 ESG 열풍 속에서 비교적 대응이 늦은 편이었다.
리스크도 크고 기후 변화에 지대한 영향을 받는 해운 산업이 이제 ESG에 눈을 뜨기 시작하였다. 한국에서는 팬오션이 선두주자로 나섰다. 팬오션은 2021년 반기사업보고서에 ESG 경영방침을 설명하였다. 동 방침에 따르면 팬오션은 환경경영 시스템(ISO 14001)인증을 유지하며, 육·해상 모든 직원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하고 긴급 상황 대응 능력을 배양하고 있다. 기후 변화 대응 측면에서는 온실가스 측정과 관리를 체계화하고 있고, 대체 연료 적용기술을 도입하며, 저유황 연료유를 사용하고, 질소 산화물 저감 설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팬오션은 국내 해운업체 최초로 ESG 채권을 발행했고, 발행 규모 500억원의 8배가 넘는 매수주문이 몰렸다. 팬오션은 조달한 자금 500억 원 중 273억 원은 친환경 LNG 보급선 도입에 사용하고, 227억 원은 선박 평형수 처리장치 설치에 사용할 계획이라고 한다. 팬오션은 앞으로 ESG 경영의 일환으로 액화천연가스(LNG) 사업 등을 확대하겠다고도 밝혔다. (팬오션의 지난 2·4분기 영업이익은 작년 동기 대비 74.3% 증가했고, 매출은 65.3% 증가하였다)
해운 산업은 리스크 대응과 기후 변화 측면에서 ESG의 첨병 산업이다. 이제라도 팬오션이 ESG 경영을 본격으로 선언하고 나선 것은 한국 해운 산업의 경쟁력을 위해서 진심으로 박수를 보낼 일이다. 다른 해운사들도 높은 운임지수로 호황을 누리는 바로 지금, ESG 경영을 시작해야 한다.
◀문성후 소장의 프로필▶ ESG중심연구소 소장, 경영학박사, 미국변호사(뉴욕주), 산업정책연구원 연구교수. '부를 부르는 평판(한국경제신문 간)' 등 저서 다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