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어로 본 청년취업대란 (16)] 한국전력과 한수원은 '채용형 인턴' 늘리는데, 취준생은 ‘독서실 인턴’ 자조
공공기관 체험형 인턴 채용 규모 급증하지만 취준생의 자조 섞인 한탄만 높아져
[뉴스투데이=임종우 기자] 인턴은 취준생들이 생각하는 ‘주요 스펙’ 중 하나이다. 회사에 견습생으로 들어가 실무에 대한 교육을 받고, 업무에 대한 경험을 쌓는다. 회사의 입장에서는 완전히 모르는 신입사원보다 자사를 경험한 인턴을 채용하는 것이 더 안정적이기도 하다.
그러나 오늘날 인턴의 목적은 조금 달라진 것 같다. 취준생들 사이에서는 '백수'보다 '인턴'이 낫다는 자조적인 의식이 팽배해지고 있다. 이른바 ‘커피 인턴’, ‘티슈 인턴’이라는 신조어들은 이런 의식이 반영된 산물이다.
이들은 ‘커피 심부름이나 하다가 티슈처럼 쉽게 뽑아 쓰고 버려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인턴으로 채용된 뒤, 실무 경험은 못 쌓고 잡무만 하다가 ‘팽’당한다는 말이다. 갈수록 취업이 어려워지기 때문에 경력이나 전문성 제고에 도움되지 않는 인턴 자리라도 치열한 경쟁을 뚫고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다.
■ 공공기관은 체험형 인턴 뽑아 '실적' 쌓기, 인턴은 눈치껏 NCS, 한국사 등 개인 공부
하지만 이제는 ‘독서실 인턴’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이는 인턴 업무를 나가도 회사에서 신경 쓰지 않아서, 독서실에 간 것처럼 남는 시간에 눈치껏 NCS(국가직무능력표준)나 토익 등 개인 공부를 한다는 의미이다.
이런 현상은 특히 공기업, 공공기관 등 ‘공공부문’에서 많이 나타난다.
인터넷 취업 커뮤니티에 올라온 글들을 보면, “공기업 인턴 가면 뭐하냐”는 질문에 “돈주는 독서실이다” 혹은 “가면 개인 공부 많이 하니까 나쁘지 않다” 등의 ‘독서실 경험자’가 심심치 않게 보인다.
취준생 A씨는 "한국전력 같은 공기업을 목표로 삼아 공부하고 있는 데 체험형 인턴에 지원할지를 두고 고민했었다"면서 "하지만 체험형 인턴으로 들어가면 배우는 것도 별로 없고 정규직 전환 코스도 없다고 해서 포기했다"고 말했다. 그는 "직장인 익명앱 블라인드를 찾아보니 과거에는 한국전력 인턴이 되면 큰 하자가 없으면 정규직 전환이 됐다고 한다"면서 "하지만 최근에는 인턴 경력이 취업에 도움이 되지 않고 그 시간에 NCS 시험 공부를 하는 게 낫다는 조언이 많았다"고 전했다.
즉 공공부문 체험형 인턴 제도가 확대되면서 '독서실 인턴'이라는 신조어가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올 하반기에도 공공기관은 체험형 인턴을 대거 선발하고 있다. 한국전력(700명), 한국수력원자력(500명)이 선발 규모가 가장 크다. 다른 공공기관은 100명 안팎의 체험형 인턴을 선발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4월 공공기관 '청년인턴 채용계획'을 밝힌 바 있다. 이 계획에 따르면 △‘17년도 1.0만명 △’18년도 1.6만명 △’19년도 1.7만명 △’20년도 1.7만명 △’21년도 2.2만명 등으로 늘어난다. 올해에만 전년도 대비 5000명을 더 뽑는다. 4년만에 2배로 증가한 수치이다.
올 2분기까지 공공기관이 선발한 체험형 인턴은 9352명이다. 3,4분기동안 1만명 이상을 더 뽑아야 하는 실정이다.
공공기관은 채용 실적을 채우기 위해 채용을 늘리는 것 뿐 아니라, 채용 인원 수를 늘리기 위해 비교적 짧은 기간으로 모집하기도 한다. 한 에너지 공기업 관계자는 “6개월 한 명보다 3개월 두 명 뽑는 것이 실적을 채우는 데 더 유리하다”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11월 한국전력기술은 근무기간 ‘이틀’짜리 인턴 130명을 모집해 논란이 생긴 적이 있다. 견학 프로그램을 ‘인턴’으로 포장한 것이다.
공공기관들이 너도 나도 실적을 채우기 위해 ‘꼼수’로 ‘잉여 인턴’을 채용하면서, 정작 실무 경험을 쌓으러 간 청년들은 ‘자기 공부’만 하게 되는 기현상이 생긴 것이다.
■ 정규직 못가고 배우는 것 없는 '독서실 인턴'도 '금턴'
2020년 취업플랫폼 ‘사람인’이 기업 386개사를 대상으로 ‘인턴 채용 현황’에 대해 진행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조사 기업의 54.9%가 인턴을 채용했거나 계획이 있다고 밝혔다. 이는 2019년도 채용률(47.2%)보다 7.7%포인트 높아진 수치이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 비율은 평균 56.7%로, 2019년도의 전환 비율(70.2%)에 비해 무려 13.5%포인트나 줄어들어 정규직 전환이 더 어려워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정규직 전환 가능성이 낮은 ‘잡무’ 인턴이라도 경쟁률은 수십 대 일에 이른다. 붙는 것도 별따기인 ‘금턴’이라 불린다. 잡무만 보더라도 곁눈질로나마 현장이 어떻게 돌아가는 지 볼 수 있고,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적어 넣을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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