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항 겪는 연구개발 주관기관 조정, 방사청·ADD 등 지원시스템 마련이 해법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업체로 주관기관 조정됐던 4개 사업 중 일부 사실상 원위치 고려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이 지난해 6월 하순부터 의욕적으로 추진했던 무기체계 연구개발 주관기관 조정이 사전 준비 부족 등으로 인해 국방과학연구소(ADD)에서 업체로 조정됐던 4개 사업 중 일부가 사실상 원위치를 고려하는 등 난항을 겪고 있는 것으로 5일 알려졌다.
이와 관련, 방산업계 한 관계자는 “방사청이 정책수립 과정에서 불확실한 요소를 관계기관과 충분히 협의한 후 주관기관 조정을 추진했더라면 좀 더 실현 가능성이 높았을 것”이라며 “사전 준비가 부족한 상태에서 무리하게 진행하다가 문제가 심각해지자 그나마 신속히 방향 전환을 시도하는 것이어서 바람직한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ADD에서 주관하던 사업 중 일부를 업체로 전환해 업체 주관 사업을 확대하는 정책은 옳은 방향이고 제대로만 실현되면 업체의 개발능력이 향상되는 등 장점도 크다”면서 “이런 취지를 살리기 위해서는 방사청과 ADD는 물론 소요군도 체계적으로 업체를 지원하는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편, 지난해 6월 26일 방사청은 보도자료를 통해 “국방 연구개발 수행체계의 재정립을 위해 ‘국방 연구개발사업 주관기관 조정방안’을 마련하고 제128회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 보고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2020년 착수 예정인 ADD 주관 무기체계 연구개발사업 중 4개 사업을 업체 주관으로 전환해 사업을 수행할 방침”이라고 설명했다.
당시 방사청은 “정부(ADD)는 연구개발, 민간(방산업체)은 제조·양산이라는 구조가 한계에 도달했다”면서 “4차 산업혁명의 급격한 기술 변화와 급변하는 안보환경으로 ADD의 연구역량을 신기술·핵심기술 연구 및 비닉 사업에 집중하는 국방 연구개발(R&D) 체계 개편은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긴급 현안이 되었다”며 주관기관 조정 필요성을 강조했다.
■ 준비 없이 업체로 조정해 우려 시선…관계기관 협의도 진전 없는 듯
방사청과 ADD는 2019년 9월부터 업계와 협의를 통해 2020년 착수 예정인 사업 중 8개를 조정대상으로 검토해왔고, 최종적으로 한국형수직발사체계(KVLS-2), 경어뢰 성능개발, 130㎜ 유도로켓-2, 장거리공대지유도탄 등 4개 사업의 주관기관을 ADD에서 업체로 조정했다. 이로 인해 사업기간이나 비용이 일정부분 증가하는 문제는 관계기관과 후속 협의를 통해 증가 소요를 최소화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이때부터 방산 전문가들은 4개 사업이 당초 목표대로 차질 없이 전력화될 수 있을지 우려의 시선으로 지켜보았다. 왜냐하면 2010년 이명박 정부에서도 국방 산업발전과 일자리 창출 전략의 일환으로 일반무기체계 연구개발을 업체 주관으로 추진했으나 관련 사업들이 원활히 진행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난해 5월 발표된 감사원의 ADD 감사 보고서에서도 ADD 주관 비중이 늘어나는 추세였다.
당시 예비역 장성 출신인 한 방산업체 대표는 “업체가 부족한 기술을 보완하기 위해 ADD로부터 어떻게 협력을 이끌어낼지가 관건이며, 시험평가 과정에서도 방사청, ADD, 소요군 등과 원활한 협조관계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즉 업체가 사업을 주관하더라도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내 일처럼 협력하고 지원할 수 있느냐에 성패가 걸려 있다는 얘기다.
유형곤 국방기술학회 정책연구센터장 또한 “업체 주관 사업을 확대하는 정책 방향은 맞지만 업체 주관 관점으로 획득제도 자체를 재편하지 않고 개별 사업만 급하게 업체 주관으로 전환해 추진할 경우 사업 위험도가 증가해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준비 없이 업체 주관 사업으로 전환하면 이해관계자 누구도 만족할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방사청은 지난해 6월 주관기관 조정 발표 이후 이런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 업체 주관으로 조정된 사업의 기간 연장과 비용 증가에 대한 관계기관(소요군, 기획재정부 등) 협의도 별다른 진전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사업을 맡게 될 업체가 상당한 어려움을 겪을 것이란 얘기가 나오던 시점에 ADD가 다시 개발한다는 소문이 전해져 방산업계는 다소 혼란스러운 분위기다.
■ “첨단무기 업체 조정 의미 없어”…“정치논리로 접근하면 악순환 반복”
원래 업체 주관(주도) 연구개발이란 용어는 1995년에 처음 등장했다. 이 분야를 연구한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최성빈 박사는 당시 연구개발의 수행 주체를 ADD와 업체로 구분하고, 사업관리도 ADD와 군으로 이원화하는 방안을 내놓았다. 그동안 연구개발 참여에 소극적이던 업체의 개발능력 향상과 사용자인 소요군이 연구개발과 생산의 주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취지였다.
하지만 방사청이 출범하고 사업관리를 주도하면서 소요군의 목소리는 더욱 드러나지 않았다. 일각에서는 이번 주관기관 조정 해프닝은 ADD가 하던 것을 업체로 이관하면 정부가 관심 갖는 일자리 창출이 될 것이란 단순한 생각에서 출발했다는 얘기도 들린다. 그런데 막상 추진하려다보니 상당한 추가비용과 기간 연장이란 어려움에 봉착해 방사청이 일부 사업의 원위치를 검토하면서 주관기관 조정이 좌초되는 것 같은 모양새다.
방산 전문가들은 “재래식 무기와 달리 첨단무기의 경우 주관기관 조정이 별다른 의미가 없다”고 주장한다. ADD와 업체가 모두 힘을 합쳐도 해결하기 어려운데 단지 주관기관 조정으로 어떤 효과를 얻겠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란 얘기다. 게다가 “탐색개발·체계개발 등 단계별로 경쟁을 시키니 업체는 내 사업이란 생각이 없어 장비·인력에 대한 선투자도 이뤄지지 않는 실정”이라고 말한다.
이명박 정부 당시에 이 업무에 관여했던 한 전문가는 “소요기획 단계부터 업체 참여가 가능해야 업체 주관이 의미가 있는데 현실적으로 불가능한데다, 개발 도중에 주관기관이 변경됨으로써 업체는 상당히 곤혹스러운데다 성과도 거의 없었다”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기체계 연구개발은 획득 프로세스의 산물인데 정치적 논리로 접근하면 악순환만 반복된다”고 지적했다.
결국 이번 주관기관 조정은 정책수립 과정부터 관계기관 간 충분한 협의가 부족했고 방사청의 노력도 미흡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개발 도중 주관기관 조정은 지양하되, 조정이 불가피할 경우 사전 충분한 준비와 함께 업체 전환 이후 개발단계마다 방사청, ADD, 소요군이 어떻게 협력하며 관련된 제도 개선을 추진할지 명확한 정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