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57)] 방사청, 방산업체 현실 도외시한 ‘표준원가’ 제도 보완작업 필요

김한경 안보전문기자 입력 : 2021.10.27 16:08 ㅣ 수정 : 2021.10.27 16:08

원가 절감하면 더 많은 이윤 가져가게 한다는 제도 취지에 부합하도록 방산원가구조 개선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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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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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은호 방위사업청장(왼쪽)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방위원회의 방위사업청 국정감사에서 선서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방산업체 원가 절감하면 이윤 감소…방사청, 방산원가 제도 개선 추진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민간 영역에서 원가는 절감의 대상이지만 방위산업 영역에서는 원가를 절감하면 오히려 업체의 매출과 이윤이 감소된다. 왜냐하면 민간 영역의 제품은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나, 방위산업 제품은 정부가 인정하는 원가에 일정 이윤을 더해 가격을 결정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방산업체는 원가를 절감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이런 문제를 개선하기 위해 지난 2019년 3월부터 방위사업청(이하 방사청)은 ‘방산원가구조 개선 TF’를 발족해 지난 45년 동안 유지해왔던 방산원가 제도의 개선에 나섰다. 그래서 나온 것이 원가자료를 기업 규모와 업종별 객관적으로 지표화한 ‘표준원가’ 개념이다. 이 개념은 방산업체가 자구적으로 원가 절감 노력을 기울이면 더 많은 이윤을 가져가게 한다는 취지다. 

 

또한 복잡한 원가산정 과정을 단순화해 원가 부풀리기나 부당 감액 시도를 원천적으로 제거함으로써 상호 신뢰를 구축하자는 의도도 깔려 있다. 표준원가는 다른 정부계약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도입해 적용하고 있는 제도이다. 하지만 여타 산업군에 비해 업무 환경이 다르고 업체 수도 적은 방산 분야에 적용하는 것이 타당한 것인지에 대한 의문은 있었다. 

 

지난 11일 더불어민주당 안규백 의원이 제출받은 방사청 자료를 통해 내년부터 시행될 표준원가 제도의 모습이 드러났다. 국내 방산업체들을 매출액, 자산규모에 따라 대기업, 중견기업, 중소기업(A/B) 등 4개 기업군으로 구분하고 13개 업종별로 다시 분류해 총 52개 그룹으로 나눈 뒤, 해당 그룹에 속한 업체들의 인건비(노임) 평균값을 내는 방식이었다. 

 

그러나 이 방식은 해당 그룹 내에서 실질노임단가가 높은 업체는 손해인 반면, 실질노임단가가 낮은 업체는 추가 수익이 발생하는 모순된 구조를 갖게 된다. 이에 대해 방산업계는 87곳에 불과한 국내 방산업체들의 인건비를 이렇게 표준화하는 게 적절치 않다고 주장한다. 한 그룹으로 묶인 업체가 3∼4곳에 불과하고, 어떤 그룹은 업체가 1곳인 경우도 있었다. 

 

연구용역 통해 ‘표준원가’ 도입 준비…문제점 제기돼 개선 필요성 대두

 

업체가 1곳인 그룹은 실제 발생 비용이 그대로 인정되는 상황이고, 체계업체와 협력업체가 구분되지 않아 서로 원가절감 경쟁을 하게 되며, 탄약 업체가 무인·인공지능 등 첨단무기체계를 개발해도 원래 속한 그룹의 낮은 노임단가가 적용된다. 안 의원은 “방사청이 정밀한 연구보다 업체 원가를 단순 평균 내는 방법을 선택했다”며 업계와 학계의 의견을 수렴한 제도 보완을 주문했다.

 

이와 관련, 지난 7월 한국방위산업학회지에 최기일 상지대 교수의 ‘방산원가구조 개선 제도 발전방안에 관한 연구’란 제목의 논문이 게재됐다. 원가업무와 계약 분야의 권위자인 최 교수는 이 논문에서 방사청이 현재 추진 중인 방산원가구조 개선 관련 문제점과 발전방안을 최초로 제기하고 개선 필요성을 역설해 당시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한편, 방산업계는 방사청이 방산원가구조 개선 연구용역을 진행하면서 업체들의 의견을 제한적으로 수용해 왔다고 지적했다. 표준원가 제도와 관련한 방사청의 연구용역은 그동안 한 차례의 발표회만 가졌을 뿐 지금까지 연구결과가 외부에 공개되지 않고 있다. 게다가 방사청 자체 분석결과, 표준원가를 도입하더라도 예산 절감 효과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문제의 핵심은 표준원가 적용을 위해 만들어진 52개 그룹의 기준이 얼마나 타당한 것이며, 그 기준이 ‘원가 절감 노력을 기울이면 더 많은 이윤을 갖는다’는 제도 취지에 얼마나 부합되느냐이다. 이 과정에 방위산업의 특별한 상황이 얼마나 고려됐는지가 관건이다. 방사청은 일단 내년부터 시행하면서 보완해 나가겠다는 입장인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방사청이 주장하는 표준원가 적용 시 방위산업 육성이라는 순기능적 기대효과와는 정반대로 산업 발전을 위축시키고 연구개발 풍토를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까지 나온다. 일부 체계업체 임원들은 “현행처럼 실제 발생한 노임단가를 그대로 적용하거나, 그룹이 아닌 업체별 표준노임단가를 산정해 적용하는 방안이 더 현실적일 것”이란 의견을 제기했다.

 

‘성실성 추정 제도’ 도입도 문제…“원점에서 전면 재검토 요구” 나와

 

방산원가구조 개선 작업의 일환인 ‘성실성 추정 제도’ 도입 또한 문제이다. 이 제도는 일정 요건을 충족한 방산업체가 제출한 원가자료는 성실하고 진실하게 작성·제출된 것으로 보고 해당 업체의 계약절차를 단축해 주겠다는 것이다. 현행 정부 주도의 사후적·적발적 통제에서 업체 주도의 자율적·예방적 통제로의 대전환이라고 방사청은 의미를 내세운다. 

 

그런데 성실하고 진실하게 작성·제출된 원가자료로 인정받으려면 방산업체는 내부통제제도 도입, 외부감사, 방산원가관리체계 인증 등 3가지 요건을 모두 충족해야 한다. 이 중 내부통제제도 도입만 하더라도 상장기업의 내부회계관리제도와 유사한 수준이어서 상장기업이 34%에 불과한 방산업계에서는 업무 부담이 가중된다는 우려가 나온다.

 

이 기준을 맞추려면 별도 전산시스템 도입, 전담인력 운영 등 상당한 투자와 노력이 수반되지 않고는 어려워 소규모 방산업체가 이행하기에는 부담이 크다. 이로 인해 성실성 추정 제도는 “방위산업 생태계에 대한 경영 환경, 제반 여건을 무시한 채 정부의 우월적 지위를 앞세운 일방적 결정사항으로 원점에서 전면 재검토가 요구된다”는 주장에 직면한 상태다.  

 

이외에도 이윤항목 중 도급재료비 이윤 축소를 비롯한 여러 가지 소소한 문제들이 드러나고 있다. 이제라도 방사청은 업체들과 적극 소통하면서 방산 현실을 반영한 제도 보완 노력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필요시 내년으로 계획된 표준원가 도입 시기를 다소 연기해서라도 방산업계가 진정으로 공감하는 제도를 마련한 후 시행해야 한다는 의견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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