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희의 심호흡] 일산대교 무료화의 본질은 경기서북지역이 겪는 ‘불공정성’ 해소

이태희 입력 : 2021.11.19 19:32 ㅣ 수정 : 2021.11.20 10:29

'공공의 이익'을 둘러싼 ‘벤담의 공리주의’와 ‘롤스의 정의론’ 간 대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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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국민연금공단은 태생적인 리스크를 안고 있다. 스스로 ‘정의’를 독점하고 있다는 착각을 하기 쉽고, 사회는 그 착각을 공인해 줄 가능성이 높다. 어떤 행위를 해도 수익을 극대화하기 위한 선택임을 입증만 한다면 지지를 받을 수 있다. 전 국민의 노후를 책임진다는 국민연금의 ‘탄생신화’ 덕분이다.

 

하지만 다수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라면 소수 국민이 희생할 수도 있다는 논리는 위험하다. 과거의 유물이 된지 오래이다. 19세기 공리주의자 철학자 제레미 벤담이 주장한 정의(正義)론에 불과하다. 

 

■ '최대다수의 최대이익’과 ‘최소수혜자의 최대이익’ 중 무엇이 정의로운가   

 

벤담은 정의의 기준으로 ‘최대다수의 최대이익’이라는 단순 명제를 제시했다. 그에 따르면, 어떤 행위나 제도가 정의에 부합하기 위해서는 행복총량이 고통총량보다 크면 된다. 예컨대 브레이크가 고장 난 기관차가 질주해오는 철도 선로에 서 있는 5명의 인부를 구하기 위해 1명의 뚱뚱한 인간을 밀어 죽여서 열차를 세울 수 있다면, 그것은 정의로운 행위가 된다. 1명의 죽음은 1개의 고통에 해당되고 5명의 생존은 5개의 행복이다. 총량을 계산하면 4개 행복의 증가이다. 

 

그러나 20세기 정치철학자인 존 롤스는 벤담의 공리주의를 ‘그릇된 정의관’이라고 단언한다. 전체 이익을 위해 상대적으로 열악한 계층의 이익을 희생한다면 자본주의 사회의 양극화를 심화시킨다고 본 것이다. 따라서 ‘최소수혜자의 최대이익’을 새로운 정의의 원칙으로 제시한다.

 

그 핵심원리는 두 가지이다. 첫째, ‘기본적 자유의 평등원칙’이다. 모든 사회적 재화와 가치는 기본적으로 평등하게 배분돼야 한다. 둘째, ‘차등의 원칙’이다. 불평등한 배분은 반드시 한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유리한 경우에만 정의롭다는 주장이다. 예를 들면 서장훈과 같은 고액소득자에게 많은 세금을 걷는 행위는 불평등하다. 반면에 그 세금을 걷어서 빈곤층 복지를 위해서 사용한다면 불평등한 세금징수는 정의로운 제도가 된다.

 

현실사회에서 벤담의 공리주의와 롤스의 정의론이 충돌하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일산대교 무료화 ‘공익처분’을 둘러싼 한국사회의 논쟁은 앞으로 그 대표적인 사례로 기록될 전망이다.  

 

■ 20% 고금리 ‘셀프대출’로 수익극대화한 국민연금의 논거='최대다수의 최대이익’

 

국민연금을 포함해서 무료화를 반대하는 측은 공리주의 입장에 서 있다. 이에 맞서 공익처분을 통해서라도 무료화를 추진하려는 경기도와 김포시·고양시·파주시 등 경기서북부 3개 시는 롤스의 정의론을 주장하고 있다.

 

2008년 1월 개통된 일산대교는 민간투자방식으로 건설됐다. 28개의 한강 다리 중 최북단에 위치해 있다. 김포시 걸포동과 고양시 법곳동, 이산포 분기점을 연결하는 사회간접자본(SOC)이다. 

 

국민연금은 운영사업법인 ㈜일산대교의 지분 100%를 인수했다. ㈜일산대교는 2038년까지 30년 동안 통행료를 받는다는 계약을 경기도와 체결했다. 길이 1.8km의 왕복6차선 도로인 일산대교 통행료는 현재 승용차 기준 편도 1200원이다. 

 

통행료 수익이 커질수록 국민연금의 수익이 극대화되는 구조이다. 국민연금의 수익이 극대화되면 다수 국민의 노후 행복이 증진된다. 벤담이 말한 ‘최대다수의 최대이익’이 실현되는 것이다. 국민연금은 무료화를 할 경우 ‘배임 문제’가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통행료를 징수함으로써 최대다수의 최대이익을 실현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인 셈이다. 

 

더욱이 국민연금은 최대다수의 최대이익을 위해서 ‘폭리’를 취함으로써 공리주의 철학을 극단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경기도 김홍국 대변인에 따르면, 국민연금은 ㈜일산대교에게 고리 대출을 해왔다. 후순위채의 경우 금리가 20%에 달한다고 한다. 현행법이 허용한 대부업의 최고금리 18%를 훌쩍 넘는다.

 

대기업이 자회사에게 이런 식의 셀프대출을 통해 이익을 극대화했다면, 공정거래위의 철퇴를 맞았을 상황이다. 국민연금은 이처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최대다수의 최대이익을 도모하고 있지만 정의롭다고 말하기에는 거북하다.   

 

■ 28개 한강다리 중 일산대교만 유료화한 게 ‘불공정’하다는 경기도 논거=‘최소수혜자의 최대이익’   

 

이에 맞서 경기도와 3개시는 일산대교 무료화의 논거로 2가지를 주장해왔다. 이 2가지 논거는 정확하게 롤스의 정의론과 일치한다. 

 

첫째, 28개 한강다리 중 일산대교만 통행료를 받는 것은 불평등한 사태라는 것이다. 이는 롤스의 ‘기본적 자유의 평등 원칙’에 어긋난다. 한강의 남과 북을 오갈 수 있는 교량이라는 SOC는 모든 국민이 평등하게 향유할 수 있어야 하는 게 정의이다. 무료화를 하면 ‘평등의 원칙’이 충족된다.

 

둘째, 무료화를 해야 경기서북지역이 겪고 있는 불공정성을 해소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사실 일산대교 이용 지역은 아파트 가격, SOC 혜택 면에서 불이익을 받아온 대표적 지역으로 꼽혀왔다. 경기남부 지역에 비해 서울로 진입할 수 있는 도로가 제한적이다. 일산대교 이외의 대체도로가 없다. 롤스가 말하는 ‘최소수혜자’이다. 

 

따라서 ‘차등의 원칙’에 따르면 강남권 한강 다리는 유료화하고 일산대교를 무료화하는 게 정의롭다. 최소수혜자의 최대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차별정책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은 거꾸로 돼 있다. 28개의 한강다리 이용자 중 SOC혜택을 가장 적게받는 ‘최소 수혜자’인 일산대교 이용 주민들이 차별을 받고 있다. ‘차등의 원칙’이 거꾸로 적용되는 상황이다. 롤스의 관점에서 보면 ‘최악의 부정의(不正義)’이다. 이 부정의 상태를 바로잡으려면 ‘평등의 원칙’을 실현해야한다는 게 무료화 측의 논리이다. 

 

■ 일산대교 이용 주민만 통행료 내고 그 돈 모아 국민노후 풍요롭게 하는 게 정의롭다고?

 

일산대교 사태에서 충돌한 ‘최대다수의 최대이익’과 ‘최소수혜자의 최대이익’간의 타협점은 있다. 경기도측이 해법을 이미 제안했다. 국민연금이 무슨 이유인지 적극적인 협상에 나서지 않고 있을 뿐이다. 

 

쟁점은 ㈜일산대교 ‘인수비용’이다. 일산대교 건설을 위한 차입금은 지난 2009년 기준으로 1832억원이다. 민자사업으로 추진한 30년간 이자비용은 3462억원에 달한다.

 

국민연금이 ㈜일산대교 측에 고금리로 셀프대출을 해준 탓이다. 경기도 측은 무료화 공익처분을 하면 ㈜일산대교의 차입금을 재정사업으로 전환해 이자비용을 절반 수준으로 줄이겠다는 입장이다. 지방채를 발행해 인수비용을 조달하면 30년간 이자비용은 1763억원으로 감소된다. 그 차액은 1699억원이다. 

 

따라서 부풀려진 이자비용을 기준으로 인수비용을 요구하는 국민연금측 태도에는 문제가 있다. 더욱이 경기도는 지난 2일 “본안 소송에서 법원이 정하는 대로 정당한 보상금을 지급할 것”이라며 “전체 인수금액 중 일부는 선지급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우선 경기도 등은 무료화 조치에 따른 통행료 손실분 보전방안을 국민연금 측에 제안했다. 올해는 60억원, 내년에는 200억원 정도를 선지급하는 방안인 것으로 알려져있다. 즉 무료화해도 국민연금이 당장 손해를 보지는 않는다. 

 

즉 국민연금이 국민의 노후라는 ‘최대다수의 최대이익’을 확보하면서 ‘최소수혜자의 최대이익’이 실현될 수 있도록 협조할 수 있는 길이 있다.  

 

하지만 현실은 혼란스럽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지난 10월 26일 경기도지사직을 사퇴하면서 마지막으로 일산대교 무료화 공익처분에 서명했다. 다음 날인 27일 정오부터 일산대교 통행은 전면 무료화됐다. 그러나 ㈜일산대교는 공익처분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을 냈고, 법원이 지난 15일 인용결정을 내렸다. 일산대교 통행료는 다시 징수되고 있다.

 

결국 국민연금은 ‘배임문제’를 차단하기 위해 본안소송까지 끌고 가겠다는 전략인 것으로 보인다. 사법부는 어떤 판단을 내릴까. 예단은 어렵다. 

 

분명한 것은 이재명 후보가 밀어붙였다고 해서 ‘특정지역 민원 해결’ 혹은 ‘선심성 정책’ 정도로 폄하한다면 본질의 왜곡이라는 점이다. SOC 혜택면에서 최소수혜자인 경기서북부 지역 주민들이 겪고 있는 ‘불공정성’을 해결해주는 정책적 노력으로 평가하는 게 정확한 진단이다. 

 

경기도가 공익처분의 근거로 삼은 민간투자법 제 47조에는 “공익을 위한 처분은 사회기반시설의 상황 변경이나 효율적 운영 등 '공공의 이익'을 위하여 필요한 경우”라고 명시하고 있다. 일산대교 무료화 공익처분을 통해 실현되는 공공의 이익은 ‘최소수혜자의 최대이익’이다. 일산대교 공익처분에 대한 본안소송의 최대 쟁점은 제 47조가 명시한 '공공의 이익'이 무엇인지가 될 것이다. 

 

벤담과 롤스가 충돌하는 소송에서 미국의 판사들이 벤담의 공리주의를 판결근거로 삼은 판례는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다수를 위해 열악한 소수는 희생될 수 있다는 법철학은 현대인의 상식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한국법정에서도 판사는 롤스의 손을 들어줄 가능성이 높다. 일산대교 이용 주민들만 한강다리 통행료를 내고, 그 돈을 모아서 국민노후를 풍요롭게하는 데 사용하는 게 정의롭다고 판결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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