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산 이슈 진단 (60)] 방산 우주산업 발전하려면 기존업체 ‘독점 구조’ 타파해야
핵심기술과제 제안서 평가기준 보완하고 소재·부품·장비 수입의존도 낮추는 등 특단의 조치 필요
한국의 방위산업이 새로운 활로를 찾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방위산업이 처한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함께 법규 제·개정도 추진 중이다. 그럼에도 방위사업 전반에 다양한 문제들이 작용해 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 뉴스투데이는 제도개선 효과와 함께 이런 문제들을 심층 진단하는 [방산 이슈 진단] 시리즈를 시작한다. <편집자 주>
■ 방사청, 신규업체 참여 유도하지만 현실은 특정업체가 독점하는 구조
[뉴스투데이=김한경 안보전문기자] 강은호 방위사업청장은 최근 한 언론 기고를 통해 “우주·항공 분야는 2040년 기준으로 시장 규모가 1조 달러, 즉 우리나라 국내총생산(GDP)의 63%에 달할 만큼 잠재력이 충분한 영역”이라면서 “우주를 놓고 경쟁을 벌이는 뉴스페이스 시대가 열린 것이고, ‘스페이스-K’ 탄생의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 기고에서 “미래 먹거리를 창출해내는 신성장 동력이라는 관점으로 방위산업을 바라봐야 한다”고 말하면서 “누리호 발사를 통해 세계 정상급 발사체 기술 수준을 보여주면서 우주 공간이 더 이상 일부 국가의 전유물이 아님을 일깨워줬다”라고도 말했다. 즉 방위산업에서 다져진 유도무기 기술이 누리호 발사체에 적용됐음을 시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와 같이 우주 분야는 미래 먹거리로 인식되고 있고 정부도 우주 산업 활성화를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방위사업청은 ‘우주산업 발전 전담팀’을 만들고 향후 기술력 있는 업체들의 참여를 유도할 계획이다. 하지만 방위산업에서 이 분야는 지금까지 비닉 사업이란 이유로 특정 업체가 개발과 생산을 거의 전담해왔다.
일각에서는 이와 같은 독점적 구조가 지속되어서는 우주 분야의 방위산업이 더 이상 발전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제기된다. 왜냐하면 독점적 위치를 이미 점유한 기존업체의 경우 더 이상 기술 발전이나 가격 인하를 위한 원가 절감을 고민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비닉 사업이라도 한 업체가 장기간 독점적 구조를 유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국내 방위산업 역량이 한계가 있는 분야라면 어쩔 수 없겠지만 역량을 가진 신규업체가 있음에도 과거의 사업수행 실적만으로 특정 업체가 계속 독점적 지위를 갖게 만드는 것은 합당하지 않으며 국가예산의 낭비도 우려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 제안서 평가기준, 사업수행 실적 높이 평가해 신규업체 진입 불가능
현재 드러난 가장 큰 문제는 핵심기술과제 시제업체 제안서 평가기준에 있다. 최근 변경된 평가기준을 보면 기존업체의 과거 사업수행 실적이 높이 평가돼 신규업체는 원천적으로 진입이 어려운데다, 신규업체가 제안한 신기술이 가격경쟁력이 있더라도 가격 평가 점수는 변별력이 없어 경쟁에서 기존업체를 이길 수 없다.
즉 평가요소 중 하나인 ‘국산화추진실적 또는 유사제품 생산실적’은 이전보다 배점이 높아져 기존업체가 절대적으로 유리하며, 가격평가 점수는 예정가의 95%이하만 제시하면 모두 동일하게 평가한다. 게다가 핵심기술과제 시제업체가 체계개발 및 양산까지 독점하게 돼 가격 경쟁은 원천적으로 불가하다. 즉 타 사업들이 최저가 경쟁임에 비해 이 분야는 가격의 변별력이 없는 상태다.
일례로 최근 발사체 개발 사업과 관련해 3개사가 제안서를 제출했다. 제안서 평가가 끝나고 탈락한 업체들이 디브리핑을 요청해 알게 된 사실은 과거 실적 점수 차이는 현저히 큰데 비해 가격 평가는 예정가의 94%를 제시하든 50%를 제시하든 점수가 동일했다. 반면 불량률을 줄이거나 원가를 절감하는 신기술 제안은 평가를 제대로 받을 수 있는 기준이 아니었다.
비닉 사업이 이렇게 흘러온 데에는 최초 기술 개발 당시 국내 상황에 기인한다. 그 때 업계 환경이 너무 열악해 정부로서는 그나마 역량 있는 한 업체를 선택해 개발을 추진해야 성공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세월이 수십 년 지나면서 당시 선택받은 업체 외에는 누구도 진입하기 어려운 환경이 조성됐다.
하지만 이런 관계는 독점한 업체가 제시하는 원가를 기준으로 가격이 결정되고 업체는 매출이 높아야 이윤이 많아지는 방위산업 구조로 인해 제품 개발 및 생산비용이 높아지기 마련이다. 따라서 독점이 유지되는 국내에선 통하겠지만 글로벌 시장에서의 경쟁력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게다가 경쟁이 없으니 신기술을 개발하거나 혁신적 공정을 적용할 이유도 없다.
■ 대체 업체 없어 공급 리스크 상존…신규업체 진입 위한 제도적 노력 필요
더 큰 문제는 제품 공급을 대체할 수 있는 업체가 없기 때문에 사소한 부품·소재·장비 조달에 문제가 생기면 공급에 차질을 빚는 등 리스크가 상존한다. 부품·소재·장비 조달을 해외에 의존할 경우 이 문제는 더욱 커진다. 최근 벌어진 요소수 대란이 좋은 사례이며, 미국 국방부도 올해 방위산업 공급망을 검토해 수입의존도를 줄이는 등 만일의 사태에 적극 대비하고 있다.
게다가 이와 같은 독점적 구조 하에서는 해당 업체가 부정당업자 제재를 받더라도 그 기간 중에 제품 공급을 위해 수의계약을 체결할 수 있고, 가처분 신청을 통해 입찰시기를 조정하는 등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수 있다. 실제로 박근혜 정부 당시 시험성적서 위조 건으로 부정당업자 제재를 받았던 업체가 수의계약을 한 사례가 있었고 최근 가처분 신청을 통해 입찰시기를 조정하는 사례도 나타났다.
따라서 방위산업에서 우주 분야가 발전하려면 최우선적 조치로 독점적 구조를 타파해야 한다. 그런데 현재의 제안서 평가기준으로는 신규업체가 기존업체를 도저히 이길 수 없다. 따라서 개발 능력과 의지가 있는 신규업체에게 진입할 기회를 주는 제도적 노력이 필요하다. 예를 들면 발사체 기술 중 일부를 신규업체만 대상으로 제안하게 하거나 개발 초기에 복수업체를 참여시켜 경험을 쌓게 한 후 다음 단계에서 경쟁시키는 방안도 있다.
이렇게 신규업체끼리 경쟁해 실적을 쌓으면서 기술력을 가진 업체가 나오고 기존업체와 선의의 경쟁 구도를 만들면 기술 발전과 가격경쟁력 구비가 가능해진다. 이를 위해 시제업체 제안서 평가기준도 적절히 보완할 필요가 있고, 소재·부품·장비의 수입의존도 또한 낮추는 등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관련 업계를 중심으로 설득력을 얻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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