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임승차냐? 이중청구냐?… '망 사용료' 둘러싼 넷플릭스·SKB 법적 다툼 2라운드, 전망은?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OTT(온라인동영상서비스) 시장에서 가장 많은 구독자를 보유하며 전세계 1위 가도를 달리고 있는 ‘넷플릭스’. 그 아성에 어울리지 않게 넷플릭스는 ‘망 이용료’(네트워크 서비스 이용료)를 둘러싸고 2년여간 국내 통신사업자인 ‘SK브로드밴드’(대표 최진환, 이하 SKB)와 치열한 법적 다툼을 이어가고 있다.
23일에는 넷플릭스와 SKB가 망 이용대를 놓고 펼치는 채무부존재 소송의 2라운드가 시작됐다. 이미 1심에서 완승을 거둔 SKB에게 유리한 상황인 가운데, 사면초가에 몰린 넷플릭스의 운명이 어떻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SKB와 넷플릭스간 분쟁의 시작은 지난 2019년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SKB는 넷플릭스 측에 국내에서 데이터 전송 시 이용하는 망에 대해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는 취지로 협상을 제안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그럴 의무가 없다고 주장하며 소송으로 맞불을 놨다.
그런데 최근 넷플릭스가 수세에 몰리는 모양새다.
정치권에서는 여야를 가리지 않고 망 이용에 대한 적절한 대가가 필요하다는데 뜻을 모으며, 망 이용료 지불에 관한 법안을 내놓고 있다. 최근 유럽 통신사들도 넷플릭스 등 글로벌 콘텐츠사업자(CP)에게 망 이용료를 지불해야 한다고 압박을 가하는 중이다.
■ '망 이용료'를 둘러싼 피 튀기는 전쟁
양사의 법정싸움은 SKB가 넷플릭스에게 '망 이용료' 협상을 요구한 데서 발발했다.
SKB는 넷플릭스 등 해외 CP사들이 자사가 구축하고 임차한 국내·외 데이터 전송망을 이용해 망 트래픽(데이터 전송량)에 대한 책임을 부담하지 않고 있다고 본다. 특히 국내에서 넷플릭스 가입자가 크게 증가하면서 트래픽도 크게 늘었고, 이에 따라 통신망 부담도 커졌다는 것.
SKB에 따르면 넷플릭스 트래픽이 2018년 5월 50Gbps 수준에서 올해 9월 1200Gbps 수준으로 폭증했으며, 이에 따른 회사 손실이 증가했다. 일부 CP사를 위해 망을 유지 보수하며, 수백만명 이상의 트래픽을 관리하는데 어려움이 있으므로, CP사가 망 이용에 대한 적정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는 게 SKB 측 주장의 요지다.
하지만 넷플릭스의 생각은 달랐다. 망 품질 관리 의무는 SKB처럼 개인이나 기업에게 인터넷 접속 서비스, 웹 사이트 구축 등을 제공하는 ISP(인터넷서비스사업자), 즉 통신사들에게 있으므로 망 사용 대가를 지불할 필요가 없다고 보고 있다. 또 이미 이용자들로부터 인터넷 이용료를 받기 때문에 CP사에게 망 이용료를 요구하는 것은 이중청구라고 선을 그었다.
또 ISP와의 상생을 고려해 자체 콘텐츠전송네트워크(CDN)를 제공함으로써 망 안정화에 힘쓰고 있다는 점도 이유로 들었다.
그간 국내 통신사들은 국내 CP사들로부터 당연하게 요금을 받아왔다. 하지만 전 세계 어느 ISP에도 망 이용료를 내지 않는다는 넷플리스와 이견을 좁히기는 쉽지 않았다.
결국 양사의 협상은 불발됐고 SKB는 2019년 11월 방송통신위원회에 협상 중재하는 취지의 재정을 요청했다. 하지만 넷플릭스는 이마저 받아들이지 않고 되레 지난해 4월 ‘망 이용대가를 낼 의무가 없다’는 취지의 민사 소송을 냈다.
하지만 지난 6월 1심 재판부는 ‘협상 의무가 없는 점’, ‘망 사용료를 제공할 의무가 없는 점’ 등을 확인해달라는 넷플릭스의 요청을 기각했다. 법원이 SKB 손을 들어줌으로써 넷플릭스 측의 망 사용료 의무가 가시화됐으나 넷플릭스는 1심 판결에 불복해 지난 7월 항소를 들어갔다.
이에 SKB가 민사소송 중 피고가 원고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반소를 내면서 양사의 갈등은 극으로 치달았다.
■ 국내도, 해외도 주목하는 '망 이용료'
정부와 국회에서도 양사의 갈등에 주목했다. CP사도 국내 ISP와 함께 국내 이용자 보호를 위해 망 안정화에 투자해야 한다는 게 공통된 입장이다.
지난 10월8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부겸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글로벌 플랫폼은 그 규모에 맞게 책임을 다해야 한다. 합리적 망 사용료 부과와 더불어 플랫폼과 제작 업체 간 공정한 계약(표준계약서 등)에 대해서도 챙겨봐달라”고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회에서는 여야를 불문하고 관련법 입법에 힘쏟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전혜숙·김상희·이원욱 의원과 국민의힘 김영식 의원, 무소속 양정숙 의원 등이 해외 CP사의 망 이용료 계약 규정에 관한 전기통신사업법 일부개정법률안을, 이른바 ‘넷플릭스방지법’을 발의했다.
가장 최근 입법 대열에 합류한 양 의원은 “현재 대다수의 국내외 콘텐츠·플랫폼 사업자가 인터넷망 이용에 따른 대가를 제공하고 있는데 일부 대형 부가통신사업자가 협상력의 불균형을 이용해 정당한 망 이용대가를 거절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이용자 수, 트래픽 양 등이 대통령령에 따른 기준에 적합한 부가통신사업자의 정보통신망 이용·제공 계약 체결과 정당한 대가의 산정 등에 관한 사항을 규정해 인터넷망 이용 및 제공 관계에 있어 공정한 경쟁과 전기통신사업자 간의 상생·발전을 위한 기반 조성이 필요하다”고 입법 취지를 설명했다.
방송통신위원회도 23일 2022년 업무계획을 발표하며 공정한 망 이용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망 이용 관련 실태조사 근거 마련, 부당행위 금지 등의 내용을 전기통신사업법에 담아 개정을 추진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ISP에게 망 이용료를 지불하지 않고 있다던 넷플릭스의 주장이 무색하게 해외에서도 망 이용료를 촉구하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도이치텔레콤(독일)과 브리티시텔레콤(영국) 등 유럽 통신사 13곳이 공동 성명을 통해 CP사들이 과도한 데이터 트래픽에 따른 인터넷 망에 부담에 책임지고 유지·개발 비용 일부를 부담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냈다.
이들은 구체적인 대상을 언급하진 않았으나 넷플릭스, 구글, 유튜브, 메타(구 페이스북) 등이라는 추론이 우세하다.
서강대학교 조대근 겸임교수는 지난 3일 열린 ‘글로벌 OTT와 지속 가능한 ICT(정보통신기술) 생태계 상생 방안 모색’ 세미나에서 CP는 ISP의 망을 이용하고 있으므로 그에 따른 마땅한 정산을 하는 게 옳다는 견해를 내놨다.
조 교수는 “CP는 국내 전기통신사업법상 부가통신사업자이며 부가통신사업자는 이용자 범위에 포함된다. 규모가 크다고 해서 이용자의 법적 지위는 달라지지 않는다”며 “공중인터넷망은 각자가 이용자이므로 필요에 따라 각자 요금을 내야 한다. 어떤 이용자도 상대방을 위해 대답하지 않는다. 때문에 (넷플릭스의) 이중청구 주장은 납득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다만 지금처럼 망 이용료를 둘러싸고 계속되는 소모적인 분쟁을 막으려면 생산적인 논의가 필요하다고 지적하며 “용어의 정의 및 통일, 국내·외 제도 및 시장 연구 강화, 공론의 장 마련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는 최근 이통 3사가 국내 CP와 글로벌 CP에 대해 망 사용료를 차별적으로 지불 받고 있다는 취지의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신고에 대해 2차례 번복 끝에 결론을 내렸다.
공정위는 "통신사가 사용료를 차별한 게 아닌 세계적인 CP사의 우월적 지위로 인해 못 받은 것"이라고 판단했다. 이 또한 넷플릭스에 대한 압박으로 작용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