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기업 말고 최태원이 SK실트론 지분 매입한 게 ‘죄’되는 나라
[뉴스투데이=이태희 편집인]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원래는 딴 제목이었는데 잘 팔리지 않아서 출판사가 제목을 바꾼 뒤 불티나게 팔렸다. 내용보다는 제목의 힘이었다. 그만큼 칭찬이라는 단어는 매력적이다. 개인의 삶과 상호관계에서 긍정적 시너지를 발휘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이례적으로 대기업 칭찬을 한 게 눈길을 끈다. 6대 대기업 총수들을 초청해 청와대 오찬을 가진 자리에서 한 명도 빼지 않고 6명 모두에게 덕담을 했다. "삼성은 ‘인재 제일’이라는 창업주의 뜻을 이어 최고의 삼성인을 배출해왔다"고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을 치켜세웠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에 대해서는 "SK는 청년희망온 협약 이후에 향후 3년 간 5000개의 일자리를 추가로 창출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고 고마움을 표했다.
문 대통령은 박근혜 정부의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을 계기로 집권한 탓인지 임기 시작부터 유난히 ‘대기업과의 거리두기’에 안간힘을 써왔던 인물이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퇴임을 앞두고 국정철학이 변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 한국의 정치권력, 여전히 기업에게 칼을 휘둘러
하지만 경제현실을 돌이켜보면 실질적 변화는 없다. 한국의 정치권력은 여전히 기업을 향해 칼을 휘두르는 존재이다.
문재인 정부의 기업정책은 시종일관 규제와 징벌 일변도이다. 기업의 현실을 감안하기 보다는 시민단체의 강경론에 휘둘리는 경우가 많다. 삼성 경영정상화에 걸림돌이 되는 사법리스크인 삼성바이오로직스(삼바) 분식회계 혐의 재판만 해도 참여연대가 만들어낸 작품이다.
금융위원회 산하 증권선물위원회(증선위)는 박근혜 정부 시절에 삼바의 분식회계 혐의에 대해 무혐의 판정을 내린 바 있다. 하지만 현 정부 들어서 참여연대가 재차 문제를 제기하자 기왕에 내렸던 판정을 뒤집고 ‘분식회계’ 결론을 내렸다. 그 과정에서 3차례나 말바꾸기를 했다. 국정농단사건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던 이재용 부회장은 가석방으로 풀려났으나 앞으로 수년 간 삼바 재판에 시달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 공정위와 시민단체 주장 따르면 '실트론 지분 29.4%'는 중국기업에게 넘어가야 해
공정거래위원회(공정위)가 지난 22일 최태원 회장의 SK실트론 지분 매입 행위에 대해 공정거래법 위반이라며 과징금 16억원을 부과한 것도 어처구니 없는 일이다. 공정위가 시민단체의 주장을 수용하려고 ‘죄목 신설’까지 한 사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공정위 조사에 따르면, SK㈜ 2017년 1월 ㈜LG가 갖고 있던 실트론(반도체 웨이퍼 생산업체)의 경영권 지분 51%를 인수했다. 반도체 소재산업의 포트폴리오를 강화하려는 목적이었다. 나머지 지분은 우리은행 등 보고펀드 대주단(29.4%), KTB PE(19.6%)이 갖고 있었다. LG 지분 인수로 이미 경영권을 확보한 상태였지만 유력한 2대 주주 출현을 방지하기 위해 KTB PE(19.6%) 지분을 추가 매입했다. 이로써 SK㈜는 실트론 지분 70.6%를 확보했다. 나머지 보고펀드 대주단(29.4%) 지분은 최태원 회장이 인수했다.
시민단체인 경제개혁연대는 2017년 11월 최 회장의 실트론 지분 매입이 ‘총수 일가 사익편취’에 해당한다며 공정위에 조사를 요청했다. 공정위는 조사에 착수한 지 3년 만인 지난 22일 ‘위법성’을 인정하는 결론을 내렸다.
공정위는 두 가지 문제점을 지적했다. 첫째, SK㈜가 상당한 이익이 될 ‘실트론 지분 29.4%’를 최 회장에게 넘김으로써 ‘사업기회 포기’를 범했다는 것이다. 둘째, 최 회장의 실트론 지분 매입에 대한 이사회 승인 등 상법상 의사결정 절차도 준수되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하지만 공정위 논리는 중대한 결함이 있다. SK㈜는 KTB PE 지분을 인수함으로써 경영권 안정화를 위한 충분한 지분을 획득했다. 굳이 보고펀드 대주단 지분까지 매입해 100% 지분율을 구축할 필요는 없었다. 더 사면 '낭비'였다.
그렇다고 SK계열사를 동원할 수도 없었다. 경제개혁시민연대는 “실트론 인수주체는 지주회사인 SK㈜나 사업연관성이 있는 계열회사가 되는 것이 타당한 의사결정”이라고 주장했지만, 그럴 경우 공정거래법 위반이 된다. SK이노베이션, SK텔레콤 등 주요 계열사들은 투자여력이 있었지만 공정거래법 상 자회사가 아닌 주식을 5%이상 보유할 수 없다.
지주회사인 SK㈜는 충분한 지분을 확보했고, 주요 계열사들이 실트론 지분 29.4%를 매입하는 것은 공정거래법 위반이었다.
따라서 공정위와 경제개혁시민연대의 주장을 백프로 수용한다면 최 회장이 지분매입을 포기하는 것만이 유일한 선택지이다. 그렇게 했다면 실트론 지분 29.4%는 어떻게 됐을까.
중국 기업에게 넘어갔을 가능성이 높다. 최 회장이 2017년 실트론 지분 29.4% 공개입찰 경쟁에 나섰을 때, 중국기업 1곳만 응찰했던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이 같은 자기모순으로 인해 공정위는 과징금 액수를 정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고 한다. 그동안 재벌기업에 대해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사익편취) 혐의로 제재를 해왔는데, '총수에 대한 사업기회 제공(사익편취)'은 선례가 없었다는 점을 공정위도 인정했다. 공정위로서는 이번에 일종의 ‘죄목 신설’을 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검찰 고발 조치를 하지 않는 것도 SK㈜와 최 회장에 대한 봐주기가 아니다. 궁여지책으로 과징금만 매긴 사건이다.
이처럼 한국 기업 입장에서 보면, 정부는 시민단체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응징자'에 불과하다.
■ 바이든은 '인텔', 트럼프는 '애플'과 '한팀'으로 일해
반면에 선진국 정부들은 기업과 ‘한 팀’이다. 미국만 해도 조 바이든 대통령은 자국 기업 인텔의 파운드리 산업 진출을 권유하면서 초대형 보조금을 지원할 예정이다.
현재 미국 하원에는 520억 달러(한화 약 61조6000억원) 규모의 ‘반도체 제조 인센티브 법안(CHIPS for America Act)’이 계류돼 있다. 이 법안은 상원을 통과했으나 하원 처리과정에서 진통을 겪고 있다. 팻 겔싱어 인텔 최고경영자(CEO)는 반도체 보조금 지급 대상에서 글로벌 파운드리 시장의 1,2위인 대만기업 TSMC와 한국기업 삼성전자 등을 제외하자는 로비를 펼치고 있다.
전임자였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도 팀 쿡 애플 CEO의 로비를 받아 중국산 아이폰에 대한 ‘보복관세’를 면제해주는 조치를 취해 준 바 있다. 트럼프는 당시 “팀 쿡은 영리하다. 로비스트를 찾아갔으면 수백만 달러 이상이 들었을텐데 나는 공짜로 해줬다”는 식으로 자랑하기도 했다.
한국 시민단체들이 보면, 국정농단 사건을 뺨치는 ‘정경 유착’이다. 하지만 미국사회에서는 대통령이 인텔이라는 미국기업과 ‘한팀’을 이뤄서 국익을 도모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미국의 어떤 언론매체 혹은 시민단체도 정경유착이나 국정농단이라고 시비를 걸지 않는다.
한국처럼 때리면서 칭찬하면 더 아프다. 미국처럼 한 팀이 돼야 진짜 칭찬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