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봉 산업경제 전문기자 입력 : 2022.01.18 00:30 ㅣ 수정 : 2022.01.18 13:42
EU 집행위, 원자력과 천연가스의 녹색에너지 포함 여부 논의 시작 / 2050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원전과 천연가스 역할 필요 / 국내 녹색분류에는 천연가스조차 부분적으로만 포함 / 탈원전 추진과 우리가 경쟁력 보유한 소형 원전에 중요한 시사점 제공
[뉴스투데이=곽대종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2022년 1월 1일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EC)는 원전과 천연가스를 녹색활동에 편입시키는 것과 관련하여 「EU 녹색분류체계(EU Green Taxonomy)」의 초안을 두고 논의를 시작했다.
지난해 4월 EC의 승인을 거쳐 6월에 공표된 1차 EU 녹색분류체계에 기본적으로 원자력과 천연가스가 아예 배제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원자력은 ‘무해성(DNSH: do no significant harm)’과 관련하여 논의를 심화시킬 필요가 있었으며 천연가스 역시 경제의 탈탄소화 과정에서 어떤 역할을 부여할지에 대한 논의가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EU의 녹색분류체계가 중요한 이유는 경제활동이 과연 기후변화에 친화적이냐를 기준으로 공공과 민간을 불문하고 투자 결정 등에 근본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EU 녹색분류체계 개정안에 따르면 원전은 방사성 폐기물을 안전하게 처분할 부지, 자금 및 계획을 확보하고 있으며 2045년 이전 건설 허가를 받는 경우 전환적 녹색에너지원으로 분류된다.
또한 천연가스 역시 1kWh 발전에 온실가스(CO2 환산) 배출량이 270g 미만이고 천연가스보다 오염발생이 더 많은 화석연료 발전소를 대체하며 2030년 이전 건설 허가를 받는 경우 전환적 녹색에너지원에 포함된다.
• 원전 비중이 절대적인 프랑스가 화전 중심의 동유럽을 포섭한 것이 배경
동 개정 초안은 발전원 가운데 원전 비중이 약 72%로 절대적인 프랑스가 석탄 발전 비중이 높은 동유럽 국가를 자기 진영으로 끌어들이려는 정치적 과정의 산물로 해석되고 있다.
아울러 지난해 3월 EU 공동연구센터(JRC)가 원전을 친환경에너지로 분류한 것도 원전을 녹색분류로 편입시키는 논의에 간접적으로 기여했다.
그러나 독일 중심의 탈원전 추진 유럽 국가들은 원전과 천연가스는 녹색분류에서 제외될 것을 강력히 주장하고 있다. 이들 나라 가운데에는 EU에서 탈퇴한 영국을 비롯하여 역내 국가 중에서는 오스트리아, 스페인, 포르투갈, 덴마크, 아일랜드 및 룩셈부르크가 있다.
반면 폴란드, 체코, 핀란드 및 헝가리 등은 프랑스 편을 들고 있다.
• 향후 4~6개월 후 확정 예정으로 타협의 여지
물론 이러한 개정 초안대로 당장 EC의 승인을 얻고 발효에 들어갈 것이라고는 기대되지 않는다.
공식적인 법안 일정 상 1월 중순 나올 EU 전문가 그룹의 검토 의견이 EU 의회 및 이사회에 1월 말까지 제출되면 이를 바탕으로 EU 의회 및 이사회에서 향후 최소한 4개월 동안, 그리고 필요할 경우 2개월의 연장을 포함한 심의에 들어가게 되므로 개정안이 확정되는 것은 빨라야 5월 말 늦으면 7월 말이 될 것이다.
그리고 기후환경 대응을 주도하는 EU 국가들의 탈원전 추세로 볼 때 원전과 천연가스의 녹색분류 편입이 프랑스 의도대로 될 것이라 기대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부분적으로 타협된 형태로 조정될 가능성도 전혀 배제할 수는 없는데, 오히려 2050 탄소중립의 달성을 위해 불가피한 현실적 고려와 EU의 의사결정 프로세스 상 프랑스 및 동유럽 국가의 의견을 무조건 도외시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 탄소 중립 달성을 위해 원전과 천연가스의 과도기적 역할은 필요
그러나 1990년대 초반에 온실가스 정점에 도달한 대부분의 유럽 국가들과는 달리 우리나라가 비록 선진국일지라도 온실가스 배출량의 정점은 극히 최근인 2018년으로 추정되므로 우리로서는 남의 일이 아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철강, 시멘트 및 석유화학 등 온실가스 배출량이 절대적인 산업 비중이 높고 관련 설비의 에너지 효율이 최고 수준이랄 수 있는 최신 설비임을 감안할 때 더욱 그러하다.
따라서 2050년 탄소중립 목표 달성을 위한 중간 단계인 2030년 ‘2018년 배출량 대비 40%’라는 발등의 불을 감안하면 원전과 천연가스를 녹색분류에 편입시키는 논의는 우리로서도 심도있는 공론화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
참고로 환경부가 주도하여 지난해 말 완성한 「한국형 녹색분류체계 가이드라인」에 의하면 당연히 원전은 배제되어 있고 천연가스조차 단독이 아닌 혼합가스 기반 에너지 생산 항목에서 “바이오가스 수소, 암모니아 중 하나 이상과 부생가스 액화천연가스 중 하나 이상을 혼합한 가스”에 포함되어 있을 뿐이다.
• 특히 소형 원전 중심 수출 전략을 위해서도 공론화 필요
원전은 주로 방사성 폐기물 처리/처분 비용의 급격한 상승으로 말미암아 태양광 및 풍력 등 재생에너지 전력원에 비해 발전 단가면에서 매우 불리해 지고 있는 것은 전세계적 상황이다.
그러나 기존 가동 중인 원전까지 당장 폐쇄하는 급진적인 탈원전은 2050 탄소중립을 달성하는데 결코 도움이 될 수 없다.
결국 연착륙이 정답이지만 러시아를 비롯한 중국, 인도 등 전력 수요가 급증하고 있는 거대신흥국들은 물론 재생에너지의 간헐성 문제를 회피하는 대안으로 영국 등 선진국도 원전을 완전히 포기하지는 않은 입장이다.
무엇보다 1979년 쓰리마일(Three Mile island) 원전 사태를 겪은 미국은 지금까지 신규 원전 건설이 없었으나 이른바 소형 원전(SMR: Small Modular Reactor)의 전략적 가치를 중시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2018년에 독자적인 SMART(System-integrated Modular Advanced Reactor) 기술의 소형 원전을 세계 최초로 완성하고 사우디아라비아와 2기 이상을 건설하는 MOU를 체결한 바 있다.
따라서 기존 기술 기반의 대형 원전 신설은 곤란할지라도 2030년 온실가스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2050 탄소중립 중간 목표 달성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SMR 중심의 국내 설치 및 트랙 레코드 축적을 통한 해외 진출은 공론화의 과정을 거칠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