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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스크 칼럼

'스위스 치즈' 구멍 메우는 해법 찾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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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구 기자
입력 : 2022.02.03 04:00 ㅣ 수정 : 2022.02.03 09:50

중대재해처벌법, 적당주의-안전불감증 타개 물꼬 기대
기업총수 수감 등 '오버킬' 적용 재검토 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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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투데이=김민구 기자] ‘화불단행(禍不單行:재앙이 겹쳐 온다)’이라는 우리 선조들의 옛말이 한마디도 틀리지 않았다.

 

새해 벽두부터 각종 붕괴 사고가 줄줄이 사탕처럼 우리 앞에 펼쳐지고 있기 때문이다.

 

잊을 만하면 터지는 사고에 마치 끊임없이 돌아가는 ‘메리 고 라운드(Merry-Go-Round:회전목마)’에 올라탄 것처럼 현기증이 날 지경이다.

 

국내총생산(GDP) 등 경제지표로 따지면 선진국 진입을 목전에 두고 있는 대한민국이 ‘사고 공화국’이라는 치욕스러운 꼬리표를 떼지 못하는 현실에 허탈함마저 밀려온다.

 

연이은 각종 안전사고는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안전불감증과 적당주의가 점철된 마이크로코즘(축소판)이다. 한국경제가 지난 70년간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초고속 압축성장을 일궈냈지만 안전에 대한 부재는 ‘머리 따로 몸 따로’의 이중구조를 보이고 있는 셈이다.

 

“개구리는 끓는 물이 담긴 냄비에 넣으면 재빨리 냄비 밖으로 뛰쳐나간다. 그러나 찬물에 넣고 조금씩 온도를 올리면 개구리가 위험을 알아차리지 못해 결국 뜨거운 물에 익혀 죽게 된다.”

 

미국 소설가 대니얼 퀸(Daniel Quinn)이 1992년 쓴 소설 ‘이시마엘(Ishmael)’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한국 사회가 위기 불감증에 빠져 서서히 뜨거워지는 물속 개구리처럼 ‘삶은 개구리 신드롬(The boiling frog syndrome)’에서 벗어나지 못한 게 아닌가 하는 두려움마저 든다.

 

최근 벌어지는 일련의 사고는 ‘스위스 치즈 모델(The Swiss Cheese Model)’을 떠오르게 만든다.

 

미국산 치즈는 제품에 구멍이 없이 단단하고 깔끔하지만 스위스 치즈로 불리는 ‘에멘탈(Emmental) 치즈’는 치즈 표면에 여기저기 구멍이 뚫려 있다.

 

그렇다고 스위스 치즈 제품에 문제가 있다는 것은 아니다. 스위스 에멘탈 지역에서 생우유를 가열하고 압착한 후 숙성시킨 이 치즈는 숙성과정에 발생한 곰팡이(프로피온산 세균)가 이산화탄소를 발생시키면서 치즈에 구멍이 생기기 때문이다.

 

구멍이 많은 스위스 치즈 여러 장을 겹쳐 놓으면 구멍이 메워지는 곳도 있지만 여러 장을 통과하는 구멍은 여전히 남는다. 이를 비유해 스위스 치즈 모델은 여러 단계를 거쳤지만 구멍(=문제나 허점)이 생겨 사고가 발생하는 것을 뜻한다.

 

제임스 T. 리즌(James T. Reason) 영국 맨체스터대학교 경영학 교수가 내놓은 이 이론은 결국 모든 형태의 사건 사고는 스위스 치즈처럼 여러 구멍 사이를 용케 빠져나간다는 점을 설명한다.

 

사고를 유발하는 결함(구멍)이 잠재해 있는데 이 결함들이 한꺼번에 나타날 때 대형사고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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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임즈 T. 리즌의 '스위스 치즈 모델'.  위험 요소를 철저하게 관리하지 못하면 결국 빈틈을 통과해 사고로 이어지게 마련이다. [자료=리서치오매틱(Researchomatic)]

 

이에 따라 정부가 최근 시행한 ‘중대재해기업처벌법(중대재해처벌법)’ 취지는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사고가 발생하면 경영책임자에 대한 형사처벌 규정을 만들어 실질적인 경영책임자가 근로자 안전과 작업환경 개선에 나서 산업현장의 잘못된 관행을 없애자는 게 중대재해처벌법이기 때문이다. 중대재해처벌법 시행으로 하루 평균 2∼3명이 소중한 목숨을 잃는 국내 산업현장 폐해를 없앨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맞이했다.

 

그런데 이 법규는 총론은 이해하지만 각론은 다른 나라에서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갈라파고스 규제’로 채워졌다. 중대재해처벌법으로 최고경영자(CEO)들이 매일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 불안 속에 산다면 이들이 지갑을 열어 고용 창출 등 국내 경제 발전에 기여해야 할 이유를 찾기가 힘들 것이다.

 

그렇다고 오해하지 말기 바란다. 기자가 CEO를 무조건 옹호할 생각은 손톱만큼도 없다.

 

그러나 건설 현장에서 빚어진 안전불감증과 관리 소홀, 공사근로자들의 안전의식 결여의 총집합체인 건설사고 총책임을 건설업체 총수로 지목하는 것은 좀처럼 공감하기 어렵다는 얘기다. 법규가 보편타당성에서 벗어난 ‘오버킬(overkill:과잉대응)’로 점철되면 공감이 아닌 반발의 목소리만 커진다.

 

국내에서 안전불감증이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 것은 ‘안전 최우선주의’라는 기본 철칙을 엄격하게 지키지 못하는 현장 건설감독자와 건설근로자의 부실도 없지는 않다.

 

우리나라 건설업은 건설공사를 발주하는 원청업체를 시작으로 ‘원청업체-하청업체-하하청업체’로 이뤄지는 특수구조를 띄고 있다.

 

이는 원청기업 못지않게 실제 공사를 하는 하청업체나 하하청업체가 건설현장 근로자의 안전의식을 철저하게 점검하고 이들을 감독하는 감리사의 직업윤리와 도덕적 책무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프랑스 종교개혁자 칼뱅은 직업을 '소명(calling:하늘의 부름)'으로 알고 자신 직업에 충실하는 것이 올바른 정신이라고 역설했다.

 

직업에 대한 이 같은 소명의식은 조직은 물론 사회를 건강하게 만드는 비타민이다. 한국 건설현장은 직업 소명의식 부족이라는 비용을 톡톡히 지불하고 있다.

 

이와 함께 최근 건설업이 ‘3D(어렵고, 더럽고, 위험한 일)업종’으로 폄훼되면서 한국인 근로자들이 기피해 건설현장에 외국인이 대거 투입되고 있는 현실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하청업체나 하하청업체가 현장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대상으로 건설 안전과 절차에 대한 철저한 의사소통과 교육이 이뤄져야 함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중대재해처벌법이 일반 국민은 물론 관련 기업으로부터 폭넓은 공감대를 형성하려면 현실에 맞는 법안 개정작업이 필요하다.

 

이번 법안이 스위스 치즈처럼 곳곳에 구멍이 뚫린 안전불감증을 해소할 수 있도록 철저한 공사현장 관리감독, 근로자 안전교육 강화, 그리고 건설업체의 안전설비 확충 등 3박자가 맞아 떨어져야 한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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