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과 윤석열 중 누가 잡아도 고민할 재계의 '중대재해법' 개선 요구는?
[뉴스투데이=모도원 기자] 오는 9일 실시되는 제 20대 대통령 선거결과에 따라 출범할 새 정부는 '중대재해처벌법(이하 중대재해법)' 수정 및 보완이라는 과제를 안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재계와 노동계 모두 개정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요구의 방향은 서로 다르다.
노동계의 요구는 비교적 단순한다. 한 마디로 '확대 시행'이다. 지난 1월 27일 시행된 중대재해법은 안전·보건상의 위험이 방지되지 않은 사업장에서 노동자가 숨지는 ‘중대산업재해’가 발생할 경우 해당 사업주나 경영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 또는 10억원 이하 벌금으로 처벌하는 내용이다.
대상은 50인 이상 사업장과 공사금액 50억원 이상의 건설현장이다. 다만 50인 미만 사업장의 경우 영세 사업장의 어려움을 감안해 2024년 1월까지 적용이 유예됐고, 5인 미만 사업장은 법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노동계는 전체 산재 사망사고의 20%를 차지하는 5인미만 사업장에도 중대재해법을 확대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는 노동계 주장에 공감을 표명해왔다. 반면에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반대 입장이다. 누가 대선에서 승리하느냐에 따라 중대재해법의 확대 적용 여부가 달라질 전망이다.
재계는 중대재해법이 기업활동을 억누르는 신종 규제라는 입장이다. 정치권도 이 같은 문제의식에 일정 부분 공감을 표명하고 있다. 이재명 후보는 5인 미만 사업장에 대한 확대 적용을 신속히 추진할 것이라고 강조하면서도 "현장의 문제점을 분석해서 반영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하고 있다.
이와 관련해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지난 1일 "중대재해처벌법은 근로자 측과 회사 측 양쪽 다 불만을 표시하는 만큼 부족한 점을 보완해 나가도록 하겠다"고 언급, 주목된다. 시행 초반에 부각되고 있는 재계 불만도 개정작업에 반영하겠다는 대목이 인상적이다. 윤석열 후보도 "시행 초기인 중대재해법이 안착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따라서 누가 대선에서 승리해도 새 정부를 출범시킨 뒤, 중대재해법을 개선하라는 재계 요구를 검토하는 과정을 거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하다.
■ 손경식 경총회장, "높은 법인세와 중대재해법은 국가 경쟁력 약화시키는 반기업 입법" / "산재사고 처벌보다는 예방 중심으로 바꿔야"
손경식 한국경영자총협회 회장은 지난 2월 22일 취임식에서 새 정부 출범에 맞춰 기업들을 옥죄는 반기업 입법들을 바로잡겠다는 개혁 목표를 앞세웠다. 3번째 연임하는 자리였다.
손 회장은 “중대재해처벌법과 같이 기업들을 옥죄는 반기업 입법을 바로 잡고 기업들이 경영활동에 전념할 수 있는 경영환경 조성에 힘쓰겠다”고 말했다.
향후 2년간 손 회장이 이끌어갈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방향으로 ‘반 기업법’과의 싸움을 명확히 한 것이다.
앞서 손 회장은 지난해 10월부터 최근까지 주요 정당과 대선후보들에게 ‘20대 대선후보께 경영계가 건의드립니다’ 제하의 건의서에서도 "기업이 국가의 경쟁력"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중대재해법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손 회장은 “많은 나라들이 국가 경쟁력 강화와 팬데믹 이후 시장 선점의 골든타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미래산업 육성과 신기술 개발에 사활을 걸고 있는 만큼 우리도 국가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역량을 모아야 한다”며 “기업이 혁신하고 도전할 수 있도록 기업의 자율성을 저해하는 경영규제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새로운 성장동력 발굴이 필요한 시기에 중대재해처벌법과 높은 법인세 등 각종 규제들이 기업을 옥죄 국가 경쟁력 저하로 이어진다는 우려다.
특히 ‘포지티브 규제’에서 ‘네거티브 규제’로의 패러다임 전환을 통해 신산업 진입 장벽 철폐와 대기업집단 규제 완화, 법인세 최고세율 인하 등을 단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중대재해법은 산업재해 예방에 근본 해법이 될 수 없기 때문에 과도한 처벌 기준을 완화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손 회장은 “산재사고를 줄이기 위해서는 산업안전 정책의 기조를 예방 중심으로 바꿔야 하고, 중대재해처벌법의 과도한 처벌 기준은 완화하는 방향으로 법을 재개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전경련, "중대재해법 적용대상 광범위하고 의무규정이 모호해" / 기업 현장에선 컨설팅 비용 들여서 대응전략 모색 중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입장문을 통해 산업재해법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점을 제기하고 개선을 위한 구체적인 접근 방법을 제시했다. 여기에는 허창수 회장의 인식과 판단이 반영된 것으로 풀이된다.
전경련은 중대재해처벌법이 시행된 1월 27일 입장문을 발표, “중대재해처벌법은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광범위하다”며 “이에 더불어 의무규정이 모호한 부분이 있다”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은 안전보건관리체계구축, 재해방지대책 수립 등과 같은 의무사항이 있지만 각 항목마다 실제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표준 가이드라인이 제시되지 않고 있다.
이에 기업들은 중대재해법을 어떻게 대응해야하는지 알 수 없어 스스로 컨설팅 비용을 들여 대형 로펌에서 법률 컨설팅을 받거나 막연한 안전교육만 실행하고 있는 실정이다.
전경련은 “법 시행을 계기로 산업현장의 목소리를 적극 반영한 제도 개선 논의를 본격화해 선진국처럼 사후 처벌보다 사전 예방 위주로 안전, 보건 체계를 확립하고 기업경영 위축 등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 "중대재해법은 형사처벌보다 경제적 패널티나 인센티브를 부과하는 방식으로 접근해야" / "부작용이나 역기능은 없는지 판단해봐야"
최태원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은 지난해 12월 서울 중구 대한상의회관에서 가진 출입기자단과의 인터뷰에서 중대재해법을 형사처벌로 접근하기보다 경제적 접근 방식으로의 선회를 강조했다..
최 회장은 이날 “경제인들에게 형사적 형태로 접근하기보다는 경제적 이야기로 가서 얘기하는 것이 훨씬 더 말이 된다”며 “경제 문제는 경제적으로 접근해 해결하는 것이 좋다”고 말했다.
산업재해에 대한 책임을 고의성이 명확한 형사사건과 달리 과징금 등 경제적 패널티를 부과하거나 인센티브를 제공해 기업이 자율적으로 움직이도록 해야 한다는 뜻이다.
최 회장은 이어 “국회에서 제정되고 통과됐으니 따라야 한다”면서도 “부작용이나 역기능은 없는지 판단해보는 것이 꼭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미 재계 곳곳에서는 중대재해처벌법의 과잉처벌 우려로 실질적인 안전망 구축보다 법을 회피하기 위한 꼼수가 연이어 감지되고 있다.
지난 8일에는 요진건설산업이 시공을 맡은 경기 성남시 판교 제2테크노밸리 건축현장에서 승강기 설비업체 소속 근로자 2명이 승강기 추락사고로 사망한 사건이 발생했다.
요진건설사업은 490억원의 공사금액으로 처벌 대상이지만 법 시행 전 창업자 최준명 회장의 아들인 최은상 부회장이 갑작스레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인 송선호 사장이 새 대표이사로 선임됐다.
요진건설산업뿐만 아니라 한림건설과 한신공영, IS동서 등 다른 중견건설사도 중대재해처벌법 제정 전 오너 일가가 경영에서 물러나고 전문경영인이 대표이사로 선임돼 일각에선 오너 대신 전문경영인을 내세워 법을 회피하려는 꼼수가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