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위산업,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교훈 얻어야
[뉴스투데이=장원준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지난 2월 24일 러시아의 전격적인 우크라이나 침공으로 전 세계가 좌불안석이다. 사실 러시아의 이번 우크라이나 침공은 전문가들 사이에선 충분히 예견돼 왔다. 미국 정보기관 및 CSIS 등 연구소들을 중심으로 지난해 하반기부터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인근 병력 증강과 침공 관련 최신 정보를 주기적으로 경고했다.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지난 10여년간 ‘구소련의 부활’을 목표로 대대적인 군 현대화를 추진해 왔다. 러시아는 ‘국가무장계획(State Armament Programme) 2020’을 통해 각 군 무기의 신형 교체 및 성능개량, 항공 및 우주방어, C4I 및 전자전 장비, 사이버, 핵 잠수함, 극초음속 미사일 등 전 무기체계의 70% 이상을 현대화했다. 이에 따라, 러시아는 2020년을 ‘군 현대화 완료의 해(2020 marks the end of a key period in Russia’s military modernization)’로 선언했다.
■ 미국, 중·러 군사력 증강 견제 못한데다 유럽·아시아 동시 전쟁 감당 어려워
푸틴 대통령은 분기별로 ‘방위산업위원회’를 주관하여 Su-35 Flanker M 최신예 전투기, Borey급 핵잠수함(SSBN), 킨잘, 지르콘 극초음속 미사일 등에 이르기까지 첨단 무기개발에 전력을 기울여 왔다. 특히 지난해 8월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수는 푸틴 대통령에게 2014년 크림반도 점령 이후 우크라이나 본토 침공에 대한 확신을 심어준 결정적 계기로 작용했다는 일각의 분석도 무시하기 힘들게 됐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의 원인 중 하나로 지난 20여년간 미국이 이라크·아프가니스탄에서 ‘테러와의 전쟁’에 몰두한 사이 중국과 러시아의 군사력 증강을 견제하지 못한 게 뼈아픈 패착이란 평가가 우세하다. 2015년 이후 미국이 ‘3차 상쇄전략’과 ‘강대국 패권경쟁’을 강조하며 군 현대화와 우방국간 협력 강화를 내세우는 이면에는 이런 속사정이 있다는 평가다. 게다가 북한까지 지난달 27일 올해 들어 8번째로 탄도미사일을 발사해 한반도도 안전지대가 아님을 각인시켰다.
향후 미국이 가장 우려하는 시나리오 중 하나는 유럽과 아시아에서 동시 전쟁 발발 가능성이다. 만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과 함께 중국의 대만 공격 또는 북한의 한국 도발 등이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될 경우, 미국으로서도 감당하기 어려운 군사적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실제로, 바이든 행정부는 코로나 19 팬데믹에 따른 물가 급등과 아프가니스탄 철수 등으로 국민 지지가 하향세로 돌아선 지 오래다.
지난해 말 버지니아 주 등에서 공화당에게 주지사 자리를 내어준 민주당 정부는 이런 추세라면 올해 11월 예정된 중간선거에서도 반전을 이루기 어렵다는 분석이 우세하다. 이렇듯 불안정한 글로벌 안보 환경 아래서 6·25 같은 군사적 분쟁이 한반도에서 발발할 경우 ‘한미 동맹’에만 기대어 미국의 전폭적인 군사 지원을 받아내긴 어렵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가 분명히 보여주었듯이, 과거 ‘안보 협정’은 유사시 한낱 ‘휴지 조각’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따라서 향후 북한과 중국 등 주변국들의 군사적 위협에 대응하여 자주국방 역량 강화를 위한 군 현대화와 국방 혁신, 우방국간 동맹 강화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해 나가야 할 시점이다. 제일 먼저,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에서 보여준 ‘전쟁 양상의 변화’에 적극 대비해 나가야 한다. 사실 러시아는 우크라이나 무력 침공 전부터 가짜 깃발(false flag), 사이버전, 여론전, 심리전, 기만전 등을 포함한 ‘하이브리드 전쟁(Hybrid War)’과 접경지역 훈련을 가장해 군대를 전진 배치하는 ‘회색지대 전략(Gray Zone Strategy)’으로 전쟁을 주도했다.
■ 전 주기 사이버역량 강화 시급…예산 확보하고 신속시범획득에 포함돼야
특히, 전격적인 사이버전 수행으로 우크라이나 군 지휘 통제체계를 마비시켜 초기 전장 주도권을 장악했으며, 서방 우주정보 감시체계를 무력화하기 위한 GPS 재밍과 스푸핑 등을 병행함으로써 수일 내 수도인 키이우(키예프)를 함락시켜 ‘제2의 크림반도’ 같은 합병을 도모하려 했다는 분석이 다수다. 향후 한반도에서 이와 유사한 군사적 위기가 도래할 경우, 적대국의 ‘하이브리드 전쟁’ 과 ‘회색지대 전략’ 수행 방식에 우리는 어느 정도 준비돼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특히, 사이버우주(cyber space)를 포함한 ‘사이버 군사 역량’은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 적대국의 군 주요시설 또는 방산업체 해킹에 대해 신속한 식별과 복원 및 추적, 더 나아가 사이버 공격 역량을 확보하고 있는지 등에 대한 실태 점검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주지하다시피, 수년 전부터 북한으로 의심되는 적대국의 사이버 공격에 국내 방산업체를 포함하여 여러 차례 큰 피해를 보아 온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사이버 공격의 피해 최소화를 위한 전 주기적 사이버 역량 강화가 시급하다. 이를 위해서는 적정 규모의 사이버 방위력개선사업 예산 확보가 요구된다. 미 국방부의 사이버 작전 관련 예산(2021년 기준)은 11조원(98억 달러)을 상회하는 반면, 우리나라는 같은 기준 640억원 규모(국방부 정보화기획관실)에 그치고 있다. 특히 2022년 기준 200여개가 넘는 방위력개선사업 중 사이버 무기체계 관련사업은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조속히 관련예산 편성과 방사청 내 사이버 관련 사업부서 신설, 사이버우주(cyber space)를 포함한 사이버 방어, 사이버 공격 및 사이버 훈련, 분석 체계 마련이 시급하다. 또한, 비교적 단기간 내 개발이 가능토록 신속획득시범사업에 사이버 분야를 포함시켜야 한다. 미국 폴 나카소네 사이버사령관(US Cybercom)은 “국방혁신센터(DIU)를 통해 민간의 혁신기술을 활용한 사이버 무기체계의 신속 전력화가 가능했다”는 점을 강조했다.
사이버 감시체계(cyberspace deception)로부터 사이버 자산관리체계(cyber asset inventory management)등에 이르기까지 불과 2~3년 만에 시제품 개발 및 전력화를 미국이 추진하고 있음을 타산지석으로 삼을 필요가 있다. 아울러, 북한의 사이버 전사 양성 및 영웅적 혜택 부여는 아닐지라도 이에 상응하는 사이버사령부 확대 개편과 우수 사이버 인력 양성, 적정 보직 및 활용 등을 통해 미래 사이버 위협에 적극 대응해 나가야 할 것이다.
■ 주요무기체계 전투준비태세 점검하고 ‘군 현대화’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두 번째로 주요 무기체계를 중심으로 전투준비태세를 점검하고 이에 따른 ‘군 현대화’를 속도감 있게 추진해야 한다. 푸틴 대통령의 우크라이나 침공에 대한 자신감은 지난 10여년간 지속된 ‘군 현대화’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Military Balance 2021에 따르면, 러시아는 ‘국가무장계획 2020’에 따라 2010년대 말까지 핵 잠수함(Borey-A class SSBN)을 포함한 전차(T-72B3M), 장갑차(BMP-3s), Su-3S 첨단 전투기, 이스칸데르 M 미사일 등을 대부분 전력화했다.
우리는 과연 북한 등 주변국 위협에 대응할 군사적 역량을 충분히 갖추고 있는지 끊임없이 자문해 보아야 한다. 지난 1월 국방부에서 발표한 수십여개 ‘국방개혁 2.0’ 과제에 대한 추진 진도가 ‘목표 대비 87%’라고 해서 하루아침에 ‘군 현대화’가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현 시점에서 북한과의 군사적 대응역량을 냉정히 검토하고 부족한 무기체계 분야를 중심으로 빠른 시간 내 군사적 불균형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준비를 서둘러야 할 것이다.
특히, 상대적으로 취약한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증강에 대응한 다층적 미사일 방어체계 조기 확보, 우주를 포함한 정보감시자산 확보 등에 집중하고 재래식 무기체계 중 노후도, 가용도(availability) 분석 등을 통한 우선순위 식별과 신속한 성능개량 사업을 서두를 필요가 있다. 미국은 2018년 ‘육군 현대화(Army Modernization)’를 위해 미래사령부(AFC)를 신설하고 장거리화력체계, 차세대 전투차량, 미래형 헬기 등 8개 분야에 5년간 300억 달러를 투자했다.
그 결과, 미 육군은 신속획득사업(Middle Tier Acquisition)을 통해 불과 4~5년만인 내년도(2023년)까지 장거리 극초음속 미사일을 포함한 35개 무기체계를 현대화해 전력화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우리나라도 차제에 미국의 ‘육군 현대화’, 러시아의 ‘국가무장계획’ 등을 벤치마킹하여 주요 무기체계 위주의 ‘군 현대화’ 계획을 체계적으로 수립하고 이를 적극 추진함으로써 주변국 위협에 조속히 대응할 수 있는 군사적 역량을 갖추어 나가야 할 것이다.
■ 신속획득 위한 법령 마련하고 국계법 개정해 개발자 후속사업 우선권 부여해야
마지막으로, 군 현대화를 위한 ‘무기획득시스템의 전면적 혁신’이 전제되어야 한다. 미국의 2022년 국방예산은 무려 7680억 달러(921조원)로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같은 해 우리나라 국방예산(54조원)보다 17배 이상 높다. 이러한 미국의 높은 국방예산 투자에도 불구하고, 2018년 ‘국가국방전략(National Defense Strategy)’의 핵심은 군 현대화를 위한 군사력 건설을 위해 동맹국과의 협력 강화와 무기획득시스템을 포함한 국방혁신이 전제돼야 함을 분명히 적시하고 있다.
실제로 2018년 ‘맞춤형 무기획득시스템(AAF, Adaptive Acquisition Framework)’을 정립한 미국은 전차, 장갑차, 극초음속 유도무기, 미래형 헬기 등 주요 무기체계에 대한 신속획득사업을 대폭 확대하고 있다. 미 CSIS에 따르면, 2020년 미 신속획득예산은 19조원(162억 달러)을 넘어 2015년 대비 20.3배 급증했다. 올해만 MQ-9 무인기, 소형전술차량 등에 인공지능(AI)을 접목하기 위한 680여개 사업을 대부분 신속획득방식으로 추진 중이라고 미 국방부는 밝혔다.
반면, 우리나라는 2020년 도입한 신속획득시범사업도 초기단계 군 소요와의 연계 미흡, 예산 부족(300여억원), 시제품 개발에 성공해도 후속 양산이 불가한 현행 관련법령의 제약 등에 따라 기존의 전통적 무기획득시스템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이라는 평가다. 게다가 기존 무기체계의 성능개량도 일부 경미한 성능개량을 제외하고는 기존의 무기획득방식을 고수하고 있어 몇 가지 부품 교체에도 10~15년이 걸리는 사업이 허다한 실정이다.
이러한 기존 방식의 대폭적 혁신 없이는 아무리 국방예산을 증액하더라도 선진국의 ‘군 현대화’ 수준을 따라잡기 어렵다. 이번 우크라이나 사태를 반면교사로 삼아 미국의 ‘신속무기획득법(OTA, Other Transactional Authority)’ 같이 무기체계의 신속한 개발과 성능개량을 위한 별도의 법령 마련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다. 또한, 국가계약법에 국가안보를 위해 시급히 필요한 무기체계 개발 시 시제품 개발자에게 후속사업의 우선권을 부여하는 규정 개정도 요구된다.
결론적으로, 이번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유사한 안보 환경을 가진 우리나라에 중요한 군사적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 즉 사이버전 수행 능력 구비를 위한 투자 확대, 주요 무기체계에 대한 전투준비태세 점검 및 우선순위를 고려한 군 현대화, 이를 신속히 추진하기 위한 무기획득시스템의 전면적 혁신 등에 국가적 역량이 집중돼야 할 것이다. ‘자유는 거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Freedom is not Free)’라는 문구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보아야 할 때다.
◀ 장원준 프로필 ▶ 산업연구원 연구위원, 한국방위산업학회 이사, 국방산업발전협의회 자문위원, 前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객원연구원, 前 국방대학교 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