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점뉴스] 러시아, 한국 비우호국가 지정에 국내 기업 파장은?

전소영 기자 입력 : 2022.03.09 06:20 ㅣ 수정 : 2022.03.09 06:20

'러 TV·스마트폰 1위' 삼성전자, '세탁기·냉장고 정상권' LG전자 차질 불가피
러 車시장 점유율 2위 현대차, 車반도체 수급난이어 현지 생산도 주춤
루블화 가치 폭락에 따른 기업 수익성 악화도 '빨간 불'
조선 3사, 루블화 채무상환으로 대규모 손실 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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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의 폭격으로 처참하게 파괴된 우크라이나 키이우 외곽 아파트 모습 [사진 = 연합뉴스]

 

[뉴스투데이=전소영 기자] 러시아의 우크라니아 침공 사태 장기화로 각종 산업이 위기 국면에 놓였다. 이에 한국 기업들도 연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가운데 최근 러시아 정부가 자국에 비우호적인 국가에 대한 제재를 예고하면서 기업들 위기가 한층 더 고조됐다.

 

러시아 정부는 지난 7일(현지시간) 정부령을 통해 자국과 자국기업, 자국민 등에 비우호적인 행보를 보인 국가와 지역 명단을 공개적으로 발표했다. 한국도 미국, 영국, 호주, 일본, 유럽연합(EU) 회원국, 캐나다, 뉴질랜드, 노르웨이, 싱가포르, 대만, 우크라이나 등과 함께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비우호국가에 대해 외교 등에서 각종 제재가 예고되며 이에 따른 기업 타격이 불을 보듯 뻔하다. 러시아의 비우호국가 제재 조치는 과연 한국 기업에 어떠한 영향을 가져오게 될까.

 

■ 러시아 진출 韓 기업, 생산·수익 ‘겹겹 위기’ 

 

러시아에서 가전 분야 생산공장을 운영하는 삼성전자와 LG그룹은 비우호국 제재로 타격을 면하기 어려운 대표 기업이다. 삼성전자는 모스크바 인근 칼루가 지역 공장에서 TV를, LG전자는 모스크바 외곽 루자 지역 공장에서 가전과 TV를 각각 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 칼루가 공장은 이미 위기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삼성전자는 지난 5일 “현재 지정학적 상황으로 러시아행 선적이 멈춘 상태"라며 "현재 복잡한 상황을 면밀히 주시해 다음 단계를 결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는 러시아에 대한 서구 진영의 금융제재와 급격한 환율 변화 등으로 정상 거래가 어렵다고 판단한 데 따른 것이다.

 

당장은 제품 수출이 중단되더라도 러시아 현지 생산공장은 정상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러시아 정부 조치로 물류난 장기화는 더욱 심각한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예상된다.  이에 따라 주요 핵심 부품 공급이 어려워져 현지 공장 제품 생산 차질은 불가피하다.  

 

LG전자도 러시아 입항 문제로 공장으로 가는 부품 선적이 불가능한 상태로 알려져 삼성전자 처지와 크게 다를 게 없는 상황으로 풀이된다.  

 

이번 사태로 삼성전자와 LG전자 모두 러시아 사업 지속 가능성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공장 가동의 차질은 생산성 문제에 그치지 않고 곧장 수익성 악화로 직결되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러시아 TV시장에서 1위를 점유하고 있다. 또한 2007년부터 러시아 스마트폰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한 삼성전자의 시장점유율은 33.2%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됐다. LG전자도 세탁기·냉장고 등 생활가전 분야에서 삼성전자와 함께 점유율 1위를 다툰다. 

 

업계와 비즈니스 데이터 플랫폼 ‘스태티스타’ 등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두 회사의 러시아 법인 매출은 삼성전자 4조3963억원, LG전자는 1조6634억원이다. 각각 전체 매출의 1.86%, 2.63%를 차지한다. 

 

전체 매출 대비 큰 비중은 아니지만 러시아 시장 성장 가능성이 크고 러시아 공장에서 생산한 제품이 독립국가연합(CIS) 등 유럽 국가에도 수출되는 점을 고려하면 간과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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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단부터) 현대차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장, 삼성전자 칼루가 공장에서 생산되는 LED TV [사진 = 연합뉴스]

 

완성차업계 상황도 비슷하다. 현대차그룹은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지역에서 생산공장을 운영하고 있는데 이 공장에서는 연간 20만대 차량을 생산한다. 안 그래도 최근 차량용 반도체 수급이 힘든 상황에서 러시아 사태로 현대차 부품 조달은 더욱 어려워지게 됐다. 

 

이에 따라 현대차는 결국 지난 1~5일 현지 공장 가동을 멈췄다. 오는 9일 생산을 재개하려고 했지만 이달 말까지 대량 생산을 중단할 방침이다. 그러나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현지 공장 재가동 시점을 장담하기 어렵다는 게 업계 시각이다. 

 

러시아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 2위를 기록하는 현대차 입지도 장담할 수 없게 됐다. 지난해 기준 현대·기아차는 러시아 시장에서 약 37만8000대가 판매됐는데 이는 전체 판매량의 약 5.8%다. 전쟁 국면이 지속되면 자동차 수요도 줄어들 수 있어 올해도 이 같은 성적을 거둘 수 있을지 미지수다. 

 

■ ‘루블화 채무상환’, 대금 회수는 어쩌나 

 

러시아 정부에 따르면 이번 정부령은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지난 5일 지시한 ‘일부 외국 채권자에 대한 한시적 의무 이행 절차에 관한 대통령령’을 기반으로 마련됐다. 

 

대통령령에 따르면 비우호국가 목록에 포함된 외국 채권자에 대해 외화 채무가 있는 러시아 정부나 기업, 지방정부, 개인 등은 해당 채무를 러시아 통화 루블화로 상환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쉽게 말하면 빚을 러시아 통화인 루블화로 갚겠다는 얘기다.

 

7일 기준 1달러당 루블화는 155루블까지 올라서며 루블화 가치는 연초 이후 미국 달러화 대비 90% 폭락했다. 루블화 가치가 역대 최저로 떨어진 상황에서 루블화 채무상환은 기업 수익성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밖에 없다. 사실상 비우호국가에 대한 러시아 제재 조치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앞서 언급한 것처럼 물류난과 공장 가동 중단 가능성, 수요 감소 등이 우려되는 삼성, LG, 현대차 입장에서는 달러로 받던 대금까지 루블화로 상환한다면 적잖은 피해를 염두에 둬야 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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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거제시에 소재한 빅3 조선소 중 한 곳의 전경 [사진 = 연합뉴스 ]

 

조선업계도 루블화 채무상환 영향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현재 한국조선해양과 대우조선해양, 삼성중공업 등 국내 조선3사들이 2020년 이후 러시아에서 수주한 선박에 따라 수금해야 할 계약 대금은 약 8조원(계약 당시 기준)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조선3사가 수주한 선박은 대부분 액화천연가스(LNG) 운반선이다. 특히 삼성중공업은 LNG 운반선 2400억원의 LNG 운반선 1척과 쇄빙 LNG선 건조를 위한 5조1000억원 상당의 설비 공급 계약을 체결하는 등 러시아와 맺은 계약 규모가 3사 중 가장 커 어려움이 가중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러시아에 대한 금융 제재가 장기화될 경우 선박 대금 회수가 달러가 아닌 루블화로 이뤄지거나 혹은 아예 불가능해지는 상황까지 우려하고 있다. 

 

하지만 조선업계는 아직 예단하기 이르다는 시각이다. 업계 특성상 수주와 건조까지 상당한 시간이 걸리며 통상적으로 선수금을 받은 후 각 건조 단계에 따라 대금을 받는 구조이기 때문에 당장 회수해야 할 대금이 없어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 않을 거라 보고 있다.

 

러시아의 ‘국가부도 시계’는 점점 빨라지고 있다. 서구진영의 고강도 경제 제재 압박이 계속되며 경제적 고립에 빠진 러시아가 자칫 채무불이행(디폴트)을 선언할 수도 있다는 예측까지 나온다. 사안이 사안이니만큼 한치 앞도 섣불리 판단하기 조심스러운 가운데 한국 기업들의 말못할 시름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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