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을 야근지옥에 빠뜨리는 고정잔업대
[뉴스투데이/도쿄=김효진 통신원] 한국이든 일본이든 기본 근무시간을 초과한 직원에게는 사측이 반드시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해야 한다.
하지만 한국은 포괄임금제를 악용하여 공짜 야근을 시키는 경우가 있는데 일본의 경우는 연봉제 또는 고정잔업대라는 명칭은 조금 다르지만 비슷한 방식으로 직장인들에게 야근을 강요한다.
특히 일본 취업 시에 주의해야할 것은 고정잔업대다. 연봉제라는 표현은 한국 취준생들이 듣더라도 기본급과 수당 등을 모두 포함한 1년 치 급여를 책정하는 방식이라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에 오해의 소지가 적지만 고정잔업대는 일본 취준생들도 속는 사례가 있을 정도로 좀 더 교묘한 표현이다.
고정잔업대란 기업이 일정시간의 잔업발생을 미리 예상하고 월급에 고정수당을 포함시키는 대신 실제 근무한 잔업시간을 계산하지 않는 제도를 뜻한다.
즉, 기업은 고정잔업대만 지불하면 한 달에 몇 시간이든 법적 허용시간 내에서 마음껏 종업원에게 야근을 시킬 수 있게 된다.
때문에 일본 취준생들은 초과근무수당이 아닌 고정잔업대를 지급하는 기업들을 블랙기업으로 분류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사전정보가 부족한 해외 취준생들은 일본 기업들의 구인공고에서 고정잔업대를 간과하기 쉽기 때문에 모처럼의 해외취업이 야근지옥으로 변할 수 있다.
한 예로 작년 8월, 일본 NHK는 일본 취업에 성공했지만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는 외국인의 이야기를 기사로 소개했다.
당사자인 A씨는 도쿄 소재의 기업이 올린 ‘정규직, 하루 8시간 근무, 주 5일제, 월급 24만 엔부터’라는 조건을 보고 지원해서 합격했지만 구인공고 속에 포함되어 있던 ‘단, 고정잔업대 50시간 분을 포함한다’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유명 대기업들도 대졸 초임으로 월 20~25만 엔 정도를 지급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외국인이라서 24만 엔이라는 높은 월급을 받은 것일까? 전혀 그렇지 않다.
24만 엔은 기본 근무시간에 50시간의 야근까지 모두 포함한 금액이었고 이를 환산하면 시간당 1142엔 밖에 되지 않았다.
도쿄에서 아르바이트를 해도 시간당 1200엔 이상을 받을 수 있는데 정규직 직장인이 아르바이트보다 못한 셈이 되어버린 것이다.
하지만 이미 취업비자까지 받은 상황에서 바로 퇴사하고 귀국하거나 이직하기는 쉽지 않기 때문에 A씨는 속앓이만 하면서 도쿄생활을 이어가야 했다.
그렇다면 고정잔업대는 직원들을 싸게 부리려는 일부 기업들의 편법이라고 이해할 수 있겠지만 라쿠텐(楽天)이나 라인(ライン)같은 대기업들도 초과근무수당이 아닌 고정잔업대를 채택하고 있다.
라쿠텐의 채용페이지를 보면 대졸 초임으로 30만 1000엔 이상의 고액을 지급한다고 적혀있는데 이는 기본급 22만 8608엔에 40시간분의 고정잔업대 7만 2392엔을 더한 금액이다.
다행히 40시간을 초과한 근무에 대해서는 별도의 시간외 수당을 지급한다고 적혀있지만 가뜩이나 보수적인 일본 사회에서 초과근무를 곧이곧대로 신고하고 수당을 받는 신입사원은 상상하기 힘들다.
대형 IT기업인 라인(ライン)이나 카카오가 설립한 픽코마(ピッコマ)도 연봉제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세부내용에는 월 수십 시간의 수당을 미리 포함한 금액이라는 설명이 달려있어 고정잔업대와 다를 바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대로 추가로 일한 시간만큼 초과근무수당을 지급하는 기업들은 채용페이지에서 이를 별도로 명시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이들 기업에게 야근은 바로 인건비 부담으로 직결되기 때문에 가능한 야근을 시키지 않을뿐더러 부득이 야근이나 주말출근을 시키더라도 시간당 금액은 연봉제나 고정잔업대 회사들보다 고액을 지급하기 때문에 근로자로서는 불리할 것이 없다.
결국 고정잔업대의 유무는 직장생활의 질과 만족도를 좌우할 수 있는 만큼 취업활동 시에 이를 미리미리 체크하는 것은 필수라고 할 수 있겠다.